계통적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암기한 테크니컬한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새어 나가서 어딘가에 그렇죠, 지식의 무덤 같은 어슴푸레한 곳에 빨려 들어 지워져갑니다. 그런 것의 대부분은 언제까지고 기억에 담아둘 만큼의 필연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보다는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고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죠. 하지만 그런종류의 지식에는 그다지 즉효성은 없습니다. 그런 지식이 진가를 발휘하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립니다. - P209

나는 그런 네거티브한 일을 맞닥뜨릴 때마다 거기에 관여한사람들의 모습이나 언행을 세밀히 관찰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어차피 난감한 일을 겪어야 한다면 거기서 뭔가 도움이될 만한 것이라도 건져야지요(아무튼 본전이라도 뽑자, 라는.
당연히 그때는 나름대로 상처를 받고 우울해지기도 했지만, 그런 체험은 소설가인 나에게는 무척 자양분이 가득한 것이었구나, 그런 느낌을 이제는 갖고 있습니다. 물론 멋지고 즐거운 일도 상당히 많았을 텐데, 지금까지도 또렷이 기억나는 건 왠지네거티브한 체험 쪽입니다. 다시 떠올려서 즐거운 일보다 오히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이 떠올라요. 결국은그런 일에서 오히려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았다는 얘기인지도모릅니다. - P239

새로운 과제를 달성하고 지금까지 못 해본 것을 해내면서 나 자신이 조금씩 작가로서 성장한다는 구체적인 실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단 한 단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는 것처럼, 소설가의 좋은 점은 설령 쉰 살이 되더라도, 예순살이 되더라도, 그런 발전과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연령제한이라는 게 별로 없습니다. - P245

그리고 무엇보다 멋진 것은 나 자신이 ‘거의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인칭으로 글을 쓸 때도 ‘거의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감각은 있었지만 삼인칭이 되자 그 선택지가 훨씬 더 넓어졌습니다. - P245

일인칭 소설을 쓸 때, 많은 경우 나는 주인공인(혹은 화자인)
‘나‘를 대략 ‘넓은 의미에서 가능성으로서의 나 자신‘으로 인식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실제의 나‘는 아니지만 장소나 시간이 바뀐다면 어쩌면 이렇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나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런 형태로 가지를 쳐나가면서 나는 나 자신을 분할하고 있었다는 얘기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분할하고 스토리 안에 던져 넣는 것을 통해 나라는 인간을 검증하고 나와 타자와의—혹은 세계와의—접점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 P246

그렇게 해서 나는 나 자신을 분할하는 것과 동시에 나를 타자에 투영할 수 있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분할한 나 자신을 타자에 위탁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조합combination의 가능성이 큰 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 P248

소설가는 현실감이 있고 그러면서도 흥미롭고, 언동에 적당히 예측 불가능한 면이 있는 인물을 작품의 중심에—혹은 중심 근처에— 앉혀야만 합니다. - P249

내가 말하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소설가는 소설을 창작하는 것과 동시에 소설에 의해 스스로 어떤 부분에서는 창작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P253

그러면 나는 그때그때 주어진 구두를 신고 거기에 내 발 사이즈를 맞춰 행동에 들어갑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발 사이즈에 구두를 맞추는 게 아니라 구두 사이즈에 발을 맞추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일단 안 될 일이지만 소설가로 오래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 가능해집니다. 왜냐하면 그건 가공의 일이니까. 그리고 가공의 일이란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똑같은 것이니까. 꿈이란-그것이 자면서 꾸는 꿈이건 깨어서 꾸는 꿈이건-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지요. 나는 기본적으로 그 흐름에 따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한, 온갖 ‘안 될 일‘이 자유롭게 가능해집니다. 그것이 바로 소설 쓰는 일의 큰 기쁨입니다. - P255

아울러 거기에는 아마 ‘자기 치유’적인 의미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창작 행위에는 많든 적든 스스로를 보정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을 상대화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지금 존재하는 것과는 다른 형식에 끼워 맞추는 것을 통해, 살아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다양한 모순이나 뒤틀림, 일그러짐 등을 해소해나간다—혹은 승화해나간다—는 것입니다. 그게 잘되면 그런 작용을 독자와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 P2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가의 기본은 이야기를 하는 것 tell a story 입니다. 그리고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말을 바꾸면 의식의 하부에 스스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속 어두운 밑바닥으로 하강한다는 것입니다. 큼직한 이야기를 하려고 할수록 작가는 좀 더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큼직한 빌딩을 지으려면 기초가 되는 지하부분도 깊숙이 파 들어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치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할수록 그 지하의 어둠은 더욱더 무겁고 두툼해집니다. - P188

작가는 그 지하의 어둠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즉 소설에 필요한 양분—을 찾아내 손에 들고 의식의 상부 영역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리고 그것을 형태와 의미를 가진 문장으로 전환해나갑니다. - P189

물론 그 강함이란 신체적 강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타인과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지금 상태를 최선의 모양새로 유지하기 위한 강함을 말합니다. - P191

카프카의 경우는 트롤럽 씨와는 다르게 그런 반듯한 생활 태도가 오히려 훌륭한 장점으로 평가되는 면이 있습니다. 어디서 그런 차이가 생겼는지, 좀 신기하지요. 사람들의 훼예포폄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입니다. - P194

내가 생각건대, 혼돈이란 어느 누구의 마음속에나 존재합니다. 내 안에도 있고 당신 안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실생활에서 일일이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형태로, 외부를 향해 드러내야 할 종류의 것은 아닙니다. "이거 봐, 내가 떠안은 혼돈이이렇게나 크다니까" 하고 남들 앞에 자랑스럽게 내보일 만한 것은 아니다, 라는 얘기입니다. - P194

자신의 내적인 혼돈을 마주하고싶다면 입 꾹 다물고 자신의 의식 밑바닥에 혼자 내려가면 되는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해야만 할 혼돈은, 정면으로 마주할 만한가치가 있는 참된 혼돈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당신의 발밑에 깊숙이 잠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 P195

행운이란 말하자면 무료입장권 같은 것입니다. - P197

하지만 동시에 거기에는 직업적인 소설가라는 한 가지 점에 관해서 말하자면 개별적인 상이점을 꿰뚫는, 뭔가 그 근저에서부터 통하는 게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정신의 ‘터프함‘이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망설임을 헤쳐나가고, 엄격한 비판 세례를 받고, 친한사람에게 배반을 당하고, 생각지도 못한 실수를 하고, 어느 때는 자신감을 잃고 어느 때는 자신감이 지나쳐 실패를 하고, 아무튼 온갖 현실적인 장애를 맞닥뜨리면서도 그래도 어떻게든 소설이라는 것을 계속 쓰려고 하는 의지의 견고함입니다. - P198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즉 당신이 (안타깝지만) 희유의 천재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많든 적든 한정된) 재능을 시간을 들여 조금이라도 높이고 힘찬 것으로 만들어가기를 희망한다면,
내 이론은 나름대로 유효성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지를 최대한 강고하게 할 것, 또한 동시에 그 의지의 본거지인 신체를 최대한 건강하게, 최대한 튼튼하게, 최대한 지장 없는 상태로 정비하고 유지할 것 그것은 곧 당신의 삶의 방식 그 자체의 퀄리티를 종합적으로 균형 있게 위로 끌어올리는 일로 이어집니다. - P2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서 나는 내 작품이 간행되고 그것이 설령 혹독한생각도 못할 만큼 혹독한-비판을 받는다고 해도 ‘뭐, 어쩔 수 없지‘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할 만큼은 했다‘는 실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전 작업에도 양생에도 진득하게시간을 들였고, 망치질에도 충분히 시간을 들였다는. 그래서 아무리 혹독한 비판을 받아도 그것 때문에 위축되거나 자신감을잃는 일은 일단 없습니다. 물론 약간 불쾌해지는 정도의 일은가끔 있지만,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시간에 의해 쟁취해낸것은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면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만일 그러한 확신이 내 안에 없었다면 아무리 배짱 좋고태평한 나라도 어쩌면 침울해졌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해야 할일은 똑 부러지게 했다‘는 확실한 실감만 있으면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습니다. 그다음은 시간의 손에 맡기면 됩니다. - P167

시간을 소중하게, 신중하게, 예의바르게 대하는 것은 곧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 P168

결국 우리가 무덤까지 가져갈 것은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 힘껏 일했다는 노동의 증거, 그것뿐이다. - P168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실감‘을 믿기로 하십시다. - P171

그리고 그 계기가 어떤 것이든 일단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소설가는 외톨이가 됩니다. 아무도 그/그녀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리서처가 붙는 일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역할은 단지 자료나 재료를 수집하는 것뿐입니다. 아무도 그/그녀의 머릿속을 정리해주지 않고 아무도 적합한 단어를 어딘가에서 찾아와주지 않습니다. 일단 스스로 시작한 일은 스스로 추진해나가고 스스로 완성해내야 합니다. - P178

소설가의 경우, 불펜에 대기 선수 따위는 없습니다. - P178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게 다가오는 날들을 하루하루 꾸준히 끌어당겨 자꾸자꾸 뒤로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 P180

자신의 몸을 한편으로 만들 것. - P1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득하게 재운 작품은 나에게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전에는 보이지않던 결점도 아주 또렷하게 보입니다. 깊이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이 됩니다. 작품이 ‘양생‘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내 머리도 다시 멋지게 ‘양생‘이 된 것입니다. - P155

하지만 그런 ‘제삼자 도입‘ 과정에서 내게는 한 가지 개인적인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트집 잡힌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어찌 됐건 고친다‘는 것입니다. 비판을 수긍할 수 없더라도 어쨌든 지적받은 부분이 있으면 그곳을 처음부터 다시 고쳐 씁니다. 지적에 동의할수 없는 경우에는 상대의 조언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고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방향성이야 어찌 됐든,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그 부분을 고쳐 쓴 다음에 원고를 재차 읽어보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생각건대, 읽은 사람이 어떤 부분에 대해 지적할 때, 지적의 방향성은 어찌 됐건, 거기에는 뭔가 문제가 내포된 경우가 많습니다. - P157

본인이 아무리 ‘잘 썼다‘ ‘완벽하다‘라고 생각해도 거기에는 좀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 P160

즉 중요한 것은 뜯어고친다는 행위 그 자체입니다. 작가가 ‘이곳을 좀 더 잘 고쳐보자‘라고 결심하고 책상 앞에 앉아 문장을 손질한다, 라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어떻게 수정하느냐‘라는 방향성 따위는 오히려 이차적인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많은 경우, 작가의 본능이나 직감은 논리성이 아니라 결심에 의해 좀 더 유효하게 이끌려 나옵니다. 숲을 몽둥이로 두드려 안에 숨은 새를 날아오르게 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어떤 몽둥이로 두드리든, 어떤 식으로 두드리든, 그 결과에 큰 차이는 없습니다. 새들의 움직임의 역동성이 고정되어가던 시야를 뒤흔듭니다. - P161

시간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매우 소중한 요소입니다. 특히 장편소설에서는 ‘사전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내 안에서 나와야 할 소설의 싹을 틔우고 통통하게 키워가는 ‘침묵의 기간‘입니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기분을 내 안에 서서히 만들어갑니다. - P1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로서는 일이 그렇게 된 것에 대해 그저 솔직히 감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자격을 - 마치 상처 입은 비둘기를 지켜주듯이 - 소중히 지켜나가면서 지금도 이렇게 소설을 계속 쓸 수 있다는 것을 일단 기뻐하고 싶습니다. 그다음 일은 또 그다음 일입니다. - P58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많은 경우, 구체적인 형태에 의한 게 아니면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 또한 진실입니다. 문학작품의 질은 어디까지나 무형의 것이지만, 상이든 메달이든 그런 것이 주어지면 거기에 구체적인 형태가 붙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형태‘에 눈길을 던질 수 있습니다. - P73

창조성에는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특징이 있으며 강고한 아이덴티티와 개인적인 스타일이 있어서 그것이 재능에 반영되고 녹아들어 개인적인 몸과 형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성이란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 기존의 견해를 타파하고 상상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날갯짓하면서 마음속으로 완전한 세계를 수없이 다시 만들고, 나아가 그것을 항상 비판적인 내적 시선으로 감시하는 것을 말한다. - P88

지금도 역시 거기에서는 시대를 뛰어넘는 신선함과 박력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체감은 하나의 중요한 ‘참조 사항reference‘으로서 사람들의 정신에 편입됩니다. - P91

그것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들의 그림이 오리지낼리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감각이 그 오리지낼리티에 동화하고 그것을 ‘레퍼런스‘로서 자연스럽게 체내에 흡수했기때문입니다. - P94

그 스타일의 질을 논하기 이전에 어느 정도 몸집을 가진 실제 사례를 남기지 않고서는 ‘검증 대상에 오르지도 못하게‘ 됩니다. 여러 개의 샘플을 펼쳐놓고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지 않고서는 그 표현자의 오리지낼리티가 입체적으로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 P99

무엇이 오리지널이고 무엇이 오리지널이 아닌가, 그 판단은 작품을 받아들이는 사람=독자와 ‘합당한 만큼 경과한 시간‘의 공동 작업에 일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작품이 적어도 연대기적인 ‘실제 사례‘로 남겨질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즉 납득할 만한 작품을 하나라도 더 많이 쌓아 올려 의미 있는 몸집을 만들고 자기 나름의 ‘작품 계열‘을 입체적으로 구축하는 것입니다. - P100

소설가의 일에는 많든 적든 마술사illusionist 같은 부분이 있으니까 ‘사기꾼‘이라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역설적인 상찬인지도 모릅니다. - P101

‘아직은 잘 쓰지 못하지만 나중에 실력이 붙기시작하면 사실은 이러저러한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합당한 내 모습이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그 이미지가 항상 하늘 한복판에 북극성처럼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냥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됩니다. - P105

이것도 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말하자면, 매우 단순한 얘기지만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즐거운가‘라는 것이 한 가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뭔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데 만일 거기서 자연 발생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걸 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나 조화롭지 못한 것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즐거움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부품, 부자연스러운 요소를 깨끗이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 P106

다양한 표현 작업의 근간에는 늘 풍성하고 자발적인 기쁨이 있어야만 합니다. 오리지낼리티는 바로 그러한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제약 없는 기쁨을,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생생한 그대로 전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와 충동이 몰고 온 결과적인 형체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 P109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만일 당신이 뭔가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원래 어떤 것인가‘를, 그런 본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 P110

생각해보면, 굳이 자기표현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사람은 보통으로, 당연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뭔가 표현하기를 원한다. 그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자연스러운 문맥 속에서 우리는 의외로 자신의 본모습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P110

오늘이라는 날 속에 또 다른 새로운 날이 생겨난 것 같은, 그런 상쾌한 기분입니다. - P113

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에 내 몸을 통과시킬 것. 수많은 뛰어난 문장을 만날 것. 때로는 뛰어나지 않은 문장을 만날 것. - P119

중요한 것은 명쾌한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니라 그 일의 원래 모습을 소재=material로서 최대한 현상現狀에 가까운 형태로 머릿속에 생생하게 담아두는 것입니다. - P120

소설가로 적합한 사람은 이를테면 ‘이건 이렇다‘라는 결론이 머릿속에서 내려지더라도, 혹은 자칫 내려질 것 같더라도, ‘아니,
잠깐, 어쩌면 이건 나 혼자만의 억측일 수도 있어‘라고 멈춰 서서 다시 생각해보는 사람입니다. ‘세상일이란 그리 쉽게 결정할수 있는 게 아니지. 나중에 뭔가 새로운 요소가 불쑥 튀어나오면 얘기가 백팔십도 달라질지도 모르잖아‘라는 식으로. - P120

그것은 어떠한 세부인가. ‘어라?‘ 하는 생각이 드는, 구체적이고도 흥미로운 세부입니다. 가능하면 잘 설명되지 않는 것이더 좋습니다. 이론에 맞지 않거나 줄거리가 미묘하게 어긋나거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거나 미스터리하다면 두말할 것 없이좋습니다. 그런 것들을 채집해서 간단한 라벨(날짜, 장소, 상황)같은 걸 딱 붙여 머릿속에 보관해둡니다. 말하자면 그곳에 있는 개인 캐비닛의 서랍에 넣어두는 것입니다. 물론 전용 노트를 만들어 거기에 써두는 것도 좋지만, 나는 그보다는 머릿속에 담아두는 쪽을 좋아합니다. 노트를 항상 들고 다니기도 번거롭고, 일단 문자로 적어두면 그걸로 안심하고 싹 잊어버리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에 다양한 것을 그대로 척척 넣어두면 사라질 것은 사라지고 남을 것은 남습니다. 나는 그런 기억의 자연도태를 선호하는 것입니다.
(중략) 게다가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한번 머릿속에 들어가면 그리 쉽게는 잊히지 않는 법입니다. - P123

제임스 조이스는 ‘상상력imagination이란 기억이다‘라고 실로간결하게 정의했습니다.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임스조이스, 완전 정답입니다. 상상력이란 그야말로 맥락 없는 단편적인 기억의 조합combination을 말합니다. - P125

단어의 의미상으로는 좀 모순된 표현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유효하게 조합된 맥락없는 기억‘은 그 자체의 직관을 갖고 예견성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스토리의 올바른 동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P126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세대에게는 새로운 세대만의 소설적 소재가 있고, 그 소재의 형태나 무게로부터 역산해서 그것을 실어 나를 비이클의 형태나 기능이 설정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소재와 비이클과의 상관성에서, 그 접면接의 바람직한 자세에서, 소설적 리얼리티라는 것이 탄생합니다.
어떤 시대에도 어떤 세대에도 각각 고유의 리얼리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소설가에게는 스토리에 필요한 소재를 꼼꼼히 수집하고 축적하는 작업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사실은 아마 어떤 시대에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십시오라는 것이 이번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합니다. 소설가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멋진 것은 그런 게 기본적으로 공짜라는 점입니다. 당신이 올바른 한 쌍의 눈만 갖고있다면 그런 귀중한 원석은 무엇이든 선택 무제한, 채집 무제한입니다.
이런 멋진 직업, 이거 말고는 별로 없는 거 아닌가요? - P1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