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통적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암기한 테크니컬한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새어 나가서 어딘가에 그렇죠, 지식의 무덤 같은 어슴푸레한 곳에 빨려 들어 지워져갑니다. 그런 것의 대부분은 언제까지고 기억에 담아둘 만큼의 필연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보다는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고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죠. 하지만 그런종류의 지식에는 그다지 즉효성은 없습니다. 그런 지식이 진가를 발휘하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립니다. - P209
나는 그런 네거티브한 일을 맞닥뜨릴 때마다 거기에 관여한사람들의 모습이나 언행을 세밀히 관찰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어차피 난감한 일을 겪어야 한다면 거기서 뭔가 도움이될 만한 것이라도 건져야지요(아무튼 본전이라도 뽑자, 라는. 당연히 그때는 나름대로 상처를 받고 우울해지기도 했지만, 그런 체험은 소설가인 나에게는 무척 자양분이 가득한 것이었구나, 그런 느낌을 이제는 갖고 있습니다. 물론 멋지고 즐거운 일도 상당히 많았을 텐데, 지금까지도 또렷이 기억나는 건 왠지네거티브한 체험 쪽입니다. 다시 떠올려서 즐거운 일보다 오히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이 떠올라요. 결국은그런 일에서 오히려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았다는 얘기인지도모릅니다. - P239
새로운 과제를 달성하고 지금까지 못 해본 것을 해내면서 나 자신이 조금씩 작가로서 성장한다는 구체적인 실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단 한 단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는 것처럼, 소설가의 좋은 점은 설령 쉰 살이 되더라도, 예순살이 되더라도, 그런 발전과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연령제한이라는 게 별로 없습니다. - P245
그리고 무엇보다 멋진 것은 나 자신이 ‘거의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인칭으로 글을 쓸 때도 ‘거의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감각은 있었지만 삼인칭이 되자 그 선택지가 훨씬 더 넓어졌습니다. - P245
일인칭 소설을 쓸 때, 많은 경우 나는 주인공인(혹은 화자인) ‘나‘를 대략 ‘넓은 의미에서 가능성으로서의 나 자신‘으로 인식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실제의 나‘는 아니지만 장소나 시간이 바뀐다면 어쩌면 이렇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나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런 형태로 가지를 쳐나가면서 나는 나 자신을 분할하고 있었다는 얘기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분할하고 스토리 안에 던져 넣는 것을 통해 나라는 인간을 검증하고 나와 타자와의—혹은 세계와의—접점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 P246
그렇게 해서 나는 나 자신을 분할하는 것과 동시에 나를 타자에 투영할 수 있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분할한 나 자신을 타자에 위탁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조합combination의 가능성이 큰 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 P248
소설가는 현실감이 있고 그러면서도 흥미롭고, 언동에 적당히 예측 불가능한 면이 있는 인물을 작품의 중심에—혹은 중심 근처에— 앉혀야만 합니다. - P249
내가 말하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소설가는 소설을 창작하는 것과 동시에 소설에 의해 스스로 어떤 부분에서는 창작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P253
그러면 나는 그때그때 주어진 구두를 신고 거기에 내 발 사이즈를 맞춰 행동에 들어갑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발 사이즈에 구두를 맞추는 게 아니라 구두 사이즈에 발을 맞추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일단 안 될 일이지만 소설가로 오래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 가능해집니다. 왜냐하면 그건 가공의 일이니까. 그리고 가공의 일이란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똑같은 것이니까. 꿈이란-그것이 자면서 꾸는 꿈이건 깨어서 꾸는 꿈이건-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지요. 나는 기본적으로 그 흐름에 따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한, 온갖 ‘안 될 일‘이 자유롭게 가능해집니다. 그것이 바로 소설 쓰는 일의 큰 기쁨입니다. - P255
아울러 거기에는 아마 ‘자기 치유’적인 의미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창작 행위에는 많든 적든 스스로를 보정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을 상대화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지금 존재하는 것과는 다른 형식에 끼워 맞추는 것을 통해, 살아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다양한 모순이나 뒤틀림, 일그러짐 등을 해소해나간다—혹은 승화해나간다—는 것입니다. 그게 잘되면 그런 작용을 독자와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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