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여기에 기자들의 책임이 있다. 기자들은 현실과 가능한 한 일치하고, 진실과 가능한 한 가까운 이미지를 창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임과 임무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기자들은 인간이며, 본디 인간은 범주와 고정관념이라는 틀로 생각한다. 진화는 이런 사고방식을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렸다. - P90

기자들은 보도하기 전에 취재하는 게 기자의 직업이라고 배운다. 기자들은 전문적인 편견 제거자가 되어야 한다고 배운다. 취재는 접촉과 다르지 않다. 단순하게 말하면, 기자는 보도하려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이 누구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야 한다. 독자와 시청자를 대표하여 기자는 스스로의 편견을 파괴해야 한다. - P92

기자들에게 ‘모든 모순‘과 ‘다른 의견‘은 ‘하나의 진보‘이다. 모든 역설, 양보, 대립은 또 다른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가게 한다. 자신의 세계관을 이렇게 재조정하는 일, 이 일이야말로 내가 보기에 우리 직업의 핵심이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보도 대상에 노출할 때에만 이런 상황에 도달할 수 있다. - P93

이 상황은 개별 신문사나 개별 기자의 문제가 아니다. 다지털 세계의 법칙은 하루에 기초한 저널리즘을 분 단위에 기초한 저널리즘으로 가속화했다. 치열한 경쟁, 더 빨리 되려는 욕심, 첫 번째 푸시 알림이 되기 위한 경주는 종종 최소한의 취재만을 허락한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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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회적 삶은 인종주의 편견에 기초한다. 즈벤이 갑자기 아프리카인들이 열등하지 않다고 주장하면, 그는 계속해서 그 주장을 정당화해야 한다. 그의 이웃과 친구, 동료는 물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없어? 이전에는 편안한 일치가 지배했던 곳이 싸움터가 될 것이다.
이처럼 편견을 거부하는 일은 삶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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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완전히 정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더 많은 시간을보낼수록 서로를 더 미워했다. 접촉가설에 모순된다.
그러나 실제로 이 만남은 접촉가설의 기능을 보여 주는 대표 사례이다. 더욱이 이 만남은 본질적이지만, 가끔은 간과하는 측면을 묘사해 주고 있다. 근접은 고정관념을 파괴한다. 부정적인 고정관념뿐 아니라, 긍정적인 고정관념도 마찬가지다. - P74

백인, 미국인, 기자인데 어떻게 친구가 안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헤르메스 부부처럼 파드노스와 슈리어도 틀렸다. 그들은 고정관념 안에서 생각했고, 그 생각 안에서 스스로 속았다.
감방의 일상은 각자의 얼굴에서 전형성이라는 마스크를 강제로 벗겨 냈다. 그 뒤에 나타난 모습은 기대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감옥 안에서 문화적 특성은 제거되었고 각자의 인성으로 돌아가면서 현실이 새롭게 배열되었다. 갑자기 뉴욕의 젊은이와 모로코에서 온 지하디스트가 미국인보다 더 비슷해졌다.
미국인 두 사람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았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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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를 동반한 어떤 분석보다 그 서술에 손열매는 상처 받았다. 위생 상태 등은 양호하였으며, 오디션 결과를 알 수 있느냐며 제작사에 전화를 돌리면서도 생각했다. 위생 상태 등은 양호하였으며, 산책하는 동네 강아지들에게 시선을 주면서도 생각했다. 위생 상태 등은 양호하였으며, 요즘 우울증은 다들 한 번씩 감기처럼 앓고 가니까요, 하는 유튜브 의사들을 지켜보면서도 떠올렸다. 위생 상태 등은 양호하였으며. - P18

손열매는 집으로 돌아가다 말고 한강 다리에 서서 밤물결을 내려다보았다. 밤의 한강은 광활한 우주처럼 고요하고 아주 검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이상한 얘기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조차 없을 것 같았고 말할 입과 들어야 하는 귀도 없고 자기 자신은 완전히 압축되어 티끌처럼 사라져 있을 것 같았다. 열매는 차가운 난간 너머로 몸을 기울여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 P20

그러다 발끝을 들어 고수미의 가방들을 모두 강 속으로 던져 버렸다.
너울이 일어나 표면이 흔들렸고 그 안으로 끌어당겨지던 손열매의 어떤 마음, 그냥 이대로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막막함도 멈췄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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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의 지도가 생각난다. 당시 지도 제도사는 지도에 종종 바다에 사는 괴물을 그렸다. 수도원 작업실에서 한 수도자가 지도를 그리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 수도자는 자신이 지금 그리려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믿을 만한 아무 정보도 없으면서 그는 확신에 찬 모습으로 잉크를 적신 깃털 펜으로 거대한 뱀과 사자 얼굴, 그리고 번쩍이는 이빨에 팔이 여러 개 달린 괴물을 그려 넣는다. 우리의 정치 논쟁도 이런 바다 괴물로 가득차 있다.
중세의 수도자에게 필요했던 건, 수도원 작업실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는 작업할 때마다 해안선을 여행하고 배를 타고 나갔어야 했다. 그런 노력이 훨씬 더 필요했을 것이다. 다행히 오늘날 우리는 더 쉽게 여행할 수 있다. 난민, 독일을 위한 대안 투표자, 기자 등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대화하는 일도 매우 쉽다.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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