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프를 동반한 어떤 분석보다 그 서술에 손열매는 상처 받았다. 위생 상태 등은 양호하였으며, 오디션 결과를 알 수 있느냐며 제작사에 전화를 돌리면서도 생각했다. 위생 상태 등은 양호하였으며, 산책하는 동네 강아지들에게 시선을 주면서도 생각했다. 위생 상태 등은 양호하였으며, 요즘 우울증은 다들 한 번씩 감기처럼 앓고 가니까요, 하는 유튜브 의사들을 지켜보면서도 떠올렸다. 위생 상태 등은 양호하였으며. - P18
손열매는 집으로 돌아가다 말고 한강 다리에 서서 밤물결을 내려다보았다. 밤의 한강은 광활한 우주처럼 고요하고 아주 검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이상한 얘기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조차 없을 것 같았고 말할 입과 들어야 하는 귀도 없고 자기 자신은 완전히 압축되어 티끌처럼 사라져 있을 것 같았다. 열매는 차가운 난간 너머로 몸을 기울여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 P20
그러다 발끝을 들어 고수미의 가방들을 모두 강 속으로 던져 버렸다.너울이 일어나 표면이 흔들렸고 그 안으로 끌어당겨지던 손열매의 어떤 마음, 그냥 이대로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막막함도 멈췄다. - 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