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는 감사했어요. 누군가 그렇게 절 위해 비명을 질러준 건 처음이에요." - P259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것뿐이라고, 이마치는 생각했다. 누구나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간다고, 이 잔을 비우고 나면, 그녀도 넘어갈 거라고. - P262
왜 자신을 그토록 도와주려 하는가 묻자, 노파는 뒤늦게 이마치의 팬임을 고백했다. 그녀의 작품들, 그녀가 연기한 사람들로부터 매 순간 위로받았다고. 이마치는 볼이 붉어지는것을 느꼈다. 이 나이가 되도록 그 말에는 면역이 안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말을 믿었다. 아름답다거나 명석하다는 말 따위는 믿지 않았지만 연기가 좋았다는 말은 믿었다. 그것은 그녀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으니까. - P264
가끔 내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얼마나 많은 오렌지를 먹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얼마나 많은 곳에 가봤을지. 나는 어린 나이에 죽어서 그 모든 기회를 잃어버렸다. 흔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드문 일도 아니다. 어쨌거나 그런 일이 일어났다. 이제 와서 그 일이 누구 책임인지 따질 필요는 없다. 지금 나는 그 일을 멀리서 바라본다. 죽음이란 삼인칭이 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인간이 삼인칭으로 산화함을 아는 것이다. - P272
남자는 그들에게 이야기해준다. 이마치의 길고 긴 필모그래피에 대해서. 그녀는 인물의 강점이 아니라 약점을 연기하는 배우였다고,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이 속절없이 이끌렸다고, 그런 식의 연기를 하는 사람은 전으로도 후로도 없을 거라고. 사람들은 오래된 필름에 관심이 없다. - P280
나는 이마치에게 폭풍우의 잔재가파도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때 바다를 잘게 부수어 집어삼퀸 에너지가 물결이 되어 끝없이 흘러오는 거라고.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속삭인다. - P282
눈물, 이별의 말들, 지루한 기도문. 그리고 마침내 먼 곳으로부터 파동이 느껴진다. 대양을 항해하고 도달한 유려한 곡선의 물결. 우리는 그것을 잡아탈 준비를 한다. 이마치가 앞서가고 내가 뒤따라간다. 우리 자신이 파도 같다는 말에 이마치가 슬쩍 뒤돌아보며 웃는다. 그녀는 더이상 비밀이 없고, 한줌의 공기처럼 가벼워져서 날아오른다. 무한한 파도, 영원한 파도, 그녀 자신의 파도 속으로.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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