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서울로 갔을 때 나는 봄이 되자 곤혹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나를 둘러싼 물의 세계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실감 나서였다. 맡게 되는 물 냄새가 너무도 달랐다. 주방의 수돗물 냄새, 골목 하수도의 구정물 냄새, 지붕 홈통에 고인 빗물 냄새, 마당 수돗가에 푸릇한 이끼들과 함께 고여 있는 잔물 냄새, 그리고 가장 예민하게는 한강의 냄새가. - P74

그 당시 전철 차창은 아래위로 나뉘어 위쪽을 열 수 있었는데, 3호선을 타고 철교를 건너며 맡는 강물 냄새에는 바다 내음에서 나던 알싸한 상승감 같은 것이 없었다. 그건 어쩐지 콧속을 너무 보드랍게 문질렀다. - P75

하기는 강화에 있었다면 지금까지 코트를 입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추웠고 그건 몸을덥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안정적으로 눌러줄 얼마간의 무게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나 같은 건누군가 놓친 유원지 풍선처럼 날아가버려도 그만일 테니까. 대문 밖만 나가면 아는 얼굴들이 나타나는 섬과, 사람 물살을 헤치고 다닐 때마다 생소한 얼굴들이 차고 슬프게 다가왔다 사라지는 이곳의 봄은 완전히 다른 계절이었다. - P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