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별로 언급될 일이 없다 보니 모르실 수도 있어요. 예전에는 국회 도서관을 비롯해 자료 보존을 목적으로 세워진 모든 특별 도서관의 장서에 마이크로 칩을 심었어요. 그런 장서들의 관리, 특히 위치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이 특별 보호사서관이에요." "그럼 그 말은...." "본 시설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 대여 여부와 상관없이 자료의 위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죠. 본 도서관은 분실이나파손에 따른 배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이용자에게금전을 요구하진 않지만 빌려 간 도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반납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말이 어찌나 무겁고 강렬한지 카미오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책의 위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칩을작동시킨다면 책이 어디에 있든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문득 좀전에 느꼈던 불가사의한 느낌도 설명이 되는 것 같았다. 이와나미씨를 어떻게 그렇게 금방 찾았는지. 대여 도서의 위치는 곧 대여자의 위치일 수 있으니까. - P27
"혹시 어제 이와나미 씨를 찾았을 때처럼 위치 정보로 찾아내시는 거예요?" 그 말에 사토미 씨가 시선을 돌렸다. "그럴 리가요. 이 도서관의 특별 보호 사서관은 와루츠 씨뿐입니다. 저에게는 서적 좌표의 접근 권한이 없고 열람도 불가능해요." 그렇다면, 하고 카미오가 말을 이어나가려 하는데 다른 손님이나타났는지 등 뒤에서 자동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외 "이쪽 단말기에는 호출 기능도 있어요. 그러니까 못 찾으시겠으면 다시 오세요." - P36
지상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카미오의 몸을 감쌌다. 지상도 충분히 쾌적했는데, 지하는 그 이상으로 최적의 온도와 습도로 맞춰놓은 것 같았다. 사람이 아니라 책을 위해서. 열화되기 시작한 종이와 잉크, 접착제 냄새가 코의 점막을 자극했다. ‘아, 책 냄새구나.‘ 카미오는 그것이 책 냄새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 ‘그런데 왜 이러지? 뭔가... ’ 그립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슷한 장소에 와 본 적도 없는데 향수가 솟구쳤다. 그런 감정을 자극하는 냄새였다. 계단을 다 내려가자 지독하게 폐쇄된 세계가 나왔다. 지상이 낮이라면 지하는 밤이다. 자연광도 조금도 스며들지 않는 공간은 강한 압박감을 주었고, 아주 고요했다. 모든 존재가 숨을 죽이고 있는 것 같았다. 지상에 비해 천장이 낮고 좁은 공간에 꽉 들어찬 책이 모든 소리를 흡수하고 있다는 원리를 카미오는 알지 못했다. 지상의 책이 살아 있는 책이라면, 이곳의 책은 마치 잠들어 있는 것같다고 생각했다. 앞서 들어갔던 여성은 이미 숲처럼 늘어선 서가뒤쪽으로 사라졌지만 작은 발소리와 기척은 느껴졌다. - P43
점점 무거워지는 오른손과 점점 가벼워지는 왼손. - P58
카미오는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지만, 책은 읽을 때마다 마모되는 것이다. 실체가 있으니 망가지기도 하는 것이다. 전자 형태로만들어진 잡지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P59
"저는 이 도서관의 특별 보호 사서관입니다. 당신이 사에즈리 도서관의 책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제가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갈 겁니다." 그녀의 기백과 거침없는 말에 노인은 멈칫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허세를 부렸다. 이내 뺨을 씰룩이며 와루츠 씨를 비웃었다. "특별 보호 사서관이라고? 그런 건 구시대의 사라져가는 유물일뿐이지. 이렇게 쥐꼬리만 한 도서관의 허약한 네트워크는 바이러스를 침투시킬 필요도 없어. 케이블 하나만 끊어도 다 먹통이 되어버릴 테니까. 네트워크가 만능이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그건 사실이었다. 공공 서버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복구되지않았고, 지방 서버의 상태 이상이나 액티브 바이러스, 시스템 버그, 그리고 좀 더 원시적인 이유인 전력 공급 부족으로 네트워크는 자주 다운되었다. 기술자도 극단적으로 줄어든 지금은 정비도 바로바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부가 다운되면 전체 시스템도 휘청였다. 하지만 와루츠 씨는 웃으며 말했다. "고작 그 정도로 와루츠 요시아키라의 기억 회로와 통신 네트워크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녀는 단단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선언했다. 긍지를 갖고, 자신의 존재와 역할을. "제 이름은 와루츠 유이. 이 도서관의 특별 보호 사서관입니다." - P74
인류의 역사에 책이 등장한 지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다. 종이라는 반려를 만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책은 오랜 세월에 걸쳐 그 자체가 하나의 완성형으로서 인간의 곁에 존재해왔다. 심지어 전자원년으로 불리는 반환점을 몇 번이나 거치면서도 책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책이 사라지는 극단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 가치와 의미가 바뀌었을 뿐.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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