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딩을 끝내자, 발라드 열 곡을 담은 꽤 아담한 패키지가 완성됐어요. 테디가 "기분이 어때?"라고 묻길래 그동안 내가 꿈꾸던그대로는 아니어도 나름 좋은 결과물을 얻은 것 같다고 대답했어요. 나답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 한편으론 진짜 나다운 것 같지는않다는 생각도 들고, 명반인지 쓰레기인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지 전혀 모르겠다고 덧붙였어요. 내 말에 테디는 소리 내 웃더니 아티스트다운 대답이라고 말했는데, 기분이 좋더라고요. - P129
데이지: 노래 가사로 말할 것 같으면 한 백만 번은 읽었을걸요. 어떻게 부를지 나름의 감을 잡고 있었어요. 빌리는 그 노래를 호소하듯 불렀는데요. 내가 해석하기에는 약속은 하지만 과연 지킬 수 있을지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는 것처럼 들렸어요. 난 그게 좋았어요. 그래서 노래가 한결 재미있어졌 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 파트에서 그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없는 속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노래의 결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이크 세팅을 제대로 한 후-아티가 내게 시작하라는 수신호를 보냈고 빌리와 테디가 지켜보는 가운데ㅡ난 마이크 가까이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빌리가 허니콤 부근에 집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믿을 수 없는 사람, 그런 미래는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불렀어요. 내가 해석한 대로. - P144
캐런: 빌리는 곡을 쓰면서 자기가 모든 것을 잘 통제하고 있다고수십 년 후에도 약물을 멀리하면서 아내와 가족을 이루어 잘 살고있을 거라고, 스스로 납득하려고 애쓰는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데이지가 노래를 부른 지 2분이나 됐을까, 빌리의 발을걸어 넘어뜨린 거예요. - P146
빌리는 스튜디오를 떠날 무렵 굉장히 긴장해 있었어요. 내가한마디 했죠. "일은 집으로 가져가는 게 아니야." 하지만 따지고 보면 빌리는 일을 집으로 가져간 게 아니었어요. 집을 일로 가져왔지. 캐런: 「허니콤」은 원래 ‘안정‘에 관한 노래였는데, 그날 ‘불안’에 관한 노래로 바뀌었어요. - P146
캐런 : 남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니까. 온 세상이 남자들 세상이지만 음반 업계는...…… 유독 여자에게 험해요 손 하나 까딱하는 것도 남자들 허락을 받아야 했으니까. 여자가 버티려면 두 가지 길만 있는 것 같았어요. 하나는 남자처럼 행동하는 것. 내가 발견한 길이죠. 다른 하나는 철부지 소녀가 되어 꼬리 치고 속눈썹을 바르르 떠는 거였죠. 남자들 좋아죽으라고. 하지만 데이지는 처음부터 그 두 길 모두 거부했어요. 그 친구의 길은 ‘날 받아들여, 아님 날 건드리지 마‘였어요. - P149
리허설을 빼면, 행크가 주선해 준 백 밴드 말고 혼자서 무대에 오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관객들이 날 바라보며 귀가 얼얼할 정도로 환호를 보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로 합쳐진 생물이 내는 소리 같았어요. 바닥을 뒤흔들고 귓전을 울리는 살아 있는 존재. 한번 그 느낌을 맛보고 나니 늘 그 속에서 살고 싶어졌어요. - P165
그런데 무대에 선 그는 나와 한 무대에 서기 위해 온 인생을 바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렬했어요. - P187
캐런: 함께 있으면 세상에 그 사람과 나만 남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 있죠? 빌리와 데이지 둘 다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서로에게 그런 느낌을 전달한 거예요. 두 사람 모두 세상에 그들 둘만 남았다는 인상을 받은 거죠. 우리가 빤히 지켜보고 있는데. 두 사람은 수천 명의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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