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그림 수업 - 그림 선생과 제주 할망의 해방일지
최소연 지음 / 김영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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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그림 수업』은 각 장 별로 서 너 편의 짧은 글이 실려있고, 한 장이 끝나면 '할머니의 oo'이라는 제목으로 할머니들의 작품이 실려있다. 글이 차지하는 분량에 비해 책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길었는데, 할머니들의 그림이 실려있는 페이지에 오래 머무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은 미술가이자 예술감독인 최소연 작가가 제주의 선흘 마을로 이사 오면서 만들어진 그림 수업을 담았다. 청소년 대상으로 홍태옥 할머니 집 마당에서 드로잉 프로젝트를 한 게 시작이었다. 빈 이젤에 관심을 보이던 홍태옥 할머니가 처음으로 목탄을 손에 쥐고 그림을 그린 순간, 『할머니의 그림 수업』이 시작되었다. 대상은 1930년생~1940년생 할망들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제주 4.3을 겪어내느라 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써보지 못했던' 여덟 명의 할망들이다.

 

그런 할머니들이 그림을 그리면서 속에 있던 말들을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것들이 조금씩 그림을 통해 밖으로 나오면서 말 그대로 해방이 일어난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지난 아픔을 돌아보고 그리움과 고마움을 표현한다. 자신의 일상과 마음을 살피기도 한다.



할머니들은 그림 곁에 일기를 쓴다. 그런데 간결한 문장에서 느껴지는 할머니의 시선이, 그 속에 담긴 삶의 내공이 예사롭지 않다. 어떤 것들은 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제주 방언의 영향도 있겠지만, 간결한 문장 속 느껴지는 운율과 율동감이 보통이 아니다.)

 

할망들에게는 채소 하나도 다 같은 채소가 아니다. 참외를 보고 상처 난 거도 버리지 말라며, 어떤 것은 상처도 나고 어떤 것은 곱게 자라지만 맛은 같다는 조수용 할머니의 그림과 문장은 내게도 큰 울림을 준다. 시장에 갈 수 없는 늙어 둔틀락둔틀락한 오이, 오이 따러 갔다가 딱 꺾어먹는 파치 오이, 상품으로 팔 수 있는 오이의 생김새도 다 다르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 친구에 대한 생각들도 적어낸다. 오가자 할머니는 <엄마한테 보내는 그림, 보리콩>을 완성한 후 그림 때문에 "울어진다"라면서 붓을 놓지 못했다고 한다.(p.147.)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옅어지지 않는구나 싶었다. 할망들에게는 각자 집에서 홀로 지내 외롭다가도 친구를 만나면 웃음이 끊이지 않는 소녀 같은 면모도 있다. 고순자 할머니에게는 친구가 '중한' 존재이다. 그만큼 일기 속에도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오래 바라보고 그림으로 그려내는 할머니들은 점점 더 예술가가 되어간다. 아들이 이리저리 가지를 잘라버렸지만 그림에는 원래 가지가 뻗어있던 대로 나무를 그리려는 모습, 빛바랜 모자의 옛 빛깔을 기억해 내어 그림에 담으려는 모습은 할머니들이 점점 더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 궁금해지고 기다려지는 할머니의 그림 수업이다.


마음속에 말이

그림을 배우면

조금씩 나올 것 같아


부희순 할머니 2022.5.26.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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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음식들 - 우리가 잃어버린 음식과 자연에 관한 이야기
댄 살라디노 지음, 김병화 옮김 / 김영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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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기분 좋은 책인데 내용도 좋다. 저자 댄 살라디노는 BBC기자이자 음식 저널리스트다. 잘 읽히는 데다 내용이 짜임새 있는 것도 이 때문일테다. 음식의 역사적인 흐름을 톺아볼 뿐 아니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까지 다룬다. "나는 댄 살라디노의 저널리즘이 가진 폭넓은 범위와 열정을 오랫동안 존경해왔다"는 해럴드 맥기의 평이 이 책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야생, 곡물, 채소, 육류, 해산물, 과일, 치즈, 알코올, 차, 후식 총 10개의 목차로 나뉘어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음식이(정확히는 다양한 종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다음에는 생태계의 경이로움에 놀란다. 각 음식에 얽힌 매력적인 이야기는 도시의 편의성에 익숙해진 나를 자연과 잠시나마 연결해 준다. 그리고 세계적인 식량 위기라는 당면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게 한다.

책에서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재래 음식(품종)을 소개한다. 각각의 음식은 뛰어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각 풍토에 맞게 ‘길들임’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이런 품종들은 엄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특정 바이러스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면역력이 강하다. 이렇게 적응 과정을 거치면 특별한 생김새와 풍미, 향을 지니게 된다. 같은 밀이어도 다채로운 맛이 나는 이유이다.

지구의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기에 앞으로 더 많은 식량이 확보되어야 한다. 볼로그의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생산성이 극대화된 품종을 개발하여 실제로 곡물 생산량이 세 배로 뛰었고 그에 따라 인구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식량 문제는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방식이 모든 동식물에 가해졌다. 현재 우리 식탁에 오르는 대부분의 식재료가 단일 품종으로 획일화 된 이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녹색혁명은 식량난을 촉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빈곤과 기아에서 탈출하게끔 하려던 시도는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 단일경작은 많은 물과 화학 비료를 필요로 한다. 동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비좁은 우리에 갇혀 약물을 투여 받는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바이러스와 해충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볼로그는 자신의 방법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세계는 이 시스템에 갇혀 버렸다.

단일화 되고 있는 입맛 또한 균질화를 촉진한다. 우리는 누구보다 다양한 음식을 누리며 살고 있는 듯 하지만, 실은 전 세계에 동일한 방식으로 확산되는 똑같은 종류의 '다양성'임을 깨달아야 한다. 온 세계가 사서 먹는 것이 갈수록 더 똑같아진다.(p.19.) 생각해보니 우리는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로 한 지역의 발전 정도를 가늠하며, 전 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한 맛을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이는 틀림없는 비극이다. 하나의 입맛에 길들여진 우리는 각 나라에 있는 고유한 음식의 맛을 잃어가고 있다. 살라디노는 우리의 입맛이 점점 달콤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쓴맛과 신맛은 사라지고 있다.


1950년대에 주스 산업이 성장한 뒤로는 전 세계에 운반될 수 있는 더 크고 달콤한 오렌지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들이 선택한 오렌지 품종은 쓴맛을 내는(건강하게 해주기도 하는) 복합물인 페놀 도수가 낮다. 이는 그런 품종이 점점 더 달콤해지는 세계적 입맛에는 맞았지만, 세계의 작물을 질병과 해충에 더 취약하도록 방치했음을 의미한다.

<메망나랑>, p.86.


한편 책을 통해 음식과 생태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알게 된다. 하드자 꿀, 카발자 밀, 바이슨 등에 얽힌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자연과 너무 멀어진 삶을 살고 있구나 싶었다. 세계에는 다양한 기후와 지형이 있다. 그리고 각 환경에 맞는 삶, 문화, 음식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화로 인해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

스케르피키외트는 페로 제도의 기후와 특별한 생활 양식이 녹아 있는 음식이다. 이곳은 어떤 식물도 자랄 수 없고 해무에는 소금기가 가득하다. 지형의 특성을 활용해 바람이 통하도록 앞뒤로 문이 트여있는 공간에 양고기를 매달아 자연의 소금기와 바람으로 발효시킨 이 음식은 페로 제도의 소중한 영양원이다.


외부인은 우리가 고래와 야생 새를 죽인다고 비난하며, 썩은 양 같은 걸 먹는다고 비웃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동물을 죽이고 그 고기를 먹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진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스케르피키외트>, p.235.


현대인의 삶은 생태계와 거의 끊어져 있다. 책에는 사라져가는 음식을 보존해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여러 재래 품종 씨앗을 수집하는 사람, 토착 음식을 보존하려는 요리사 등 이들로부터 음식과 생태계를 대하는 태도를 배운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의 우리는 과거에 자연과 맺었던 방식에서 혹은 여러 토착민들의 삶에서 배울 점이 많다. 현재의 식량 시스템은 반드시 바뀌어야 하며,사라져 가는 다양성을 회복해야 한다.


다양성은 우리 미래에 필수적이다.

p.22.

우리가 먹는 음식과 우리가 존재하는 생태계 사이의 연관성을 이해해야 한다.

p.555.

우리의 삶과 미래를 위해 모두가 읽어봤으면 좋겠다. 특히 환경과 음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알게 하는 좋은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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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 그런 나는 없다
홍창성 지음 / 김영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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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확고부동한 존재인가'라는 설명에 이끌려 선택한 이 책은 표지부터 강렬하다. 공空의 개념을 보여주는 듯한 백색 바탕에 무아無我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무아는 말그대로 '진정한 나'(자아)는 없다는 말이다. 자아에 대한 믿음을 격파하겠다는 저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아 개념에 대해 붓다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언어 철학, 심리철학 등의 서양 철학을 이용하여 차근차근 반박한다. <들어가는 말>에 써있듯 짧은 분량에 쉬운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내용에 대해서는 오래 생각해봐야 한다. 만물이 상호의존의 형태로만 존재한다는 ‘연기’, 대상은 스스로를 향할 수 없다는 ‘비재귀성의 원리’등 다소 낯설고 어려운 불교 개념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직관적인 예시와 중간에 삽입된 이우일 작가의 일러스트가 이해를 돕는다.

 


우리는 생각보다 단어의 뜻을 제대로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자아정체성이라는 단어, 자아를 찾아야 한다는 문장을 쓰며 그럴 듯하고 멋져보이는 말을 하지만 막상 자아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얼버무리게 된다. '변하지 않는 무언가, 진정한 나' 라고 답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홍창성 교수는 이런 모호함을 명쾌하게 해주었다. 이런저런 철학 용어와 어려운 개념이 있지만, 누구나 읽으면 끄덕끄덕하며 무리 없이 동의할 내용이다. 엉터리 의미로 ‘나’의 존재를 규정하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사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

첫 장에서는 자아라는 개념의 중심을 이루는 '불변하는 나'에 대해 반박한다. 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불변하는 나’는 실재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해 뇌, 이름, DNA 그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불변하지 않으며 고유하지 않다고 말한다. 나의 본질을 구성하는 몸과 마음의 특성이나 나를 나 이외의 사람과 구분해 주는 개인적인 본질도 없다.

 

2장에서는 자아가 모순임을 논한다. 저자는 먼저 영혼soul 자아self 인격체person를 구분한다. 영혼은 종종 마음으로 이해되는데, 자연과학의 발달로 우리 마음은 뇌세포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전기자극과 화학반응에 의존하여 생기는 의식의 흐름일뿐이라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따라서 물리적 대상인 뇌가 없이는 의식을 가진 마음 또는 영혼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아self 와 인격체person에 대해서는 아래의 두 문장이 도움이 된다.


1) 그는 모진 고생 끝에 다른 사람 person(인격체)이 되었다.

2) 그는 모진 고생 끝에 다른 자아self(영혼)가 되었다.

p.49.

 

2)번 문장은 매우 어색하다.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일들로 (전쟁, 가족의 사망, 이혼 등) 성격이 많이 변하여 다른 인격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 다른 자아가 되었다고 하지는 않는다.

 

 

한편 우리가 불변한다고 믿는 자아는 개념적으로 모순이다. 어떤 것이 불변하기 위해서는 단순체여야 하는데, 단순체는 속성을 지니는 순간 복합체가 된다. 또 시간선상에 연속체로 존재하는 한 복합체가 되기에 단순체가 될 수 없으며, 따라서 불변하는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아의 목표는 '나를 내려놓는 것'이다. 그러나 무아를 받아들여도 내가 소멸되지 않는다. 붓다는 자아는 부정하지만 인격체로서의 나는 인정한다. 인격체는 오온으로 구성되는데, 오온은 끊임없이 변하는 몸과 네 가지 의식상태인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이 모여 쉬지 않고 변하는 하나의 묶음이다. 색수상행식은 순서대로 물질적 존재자, 느낌, 지각, 동력, 심신상태의 자각을 뜻한다.

 

 

그런데 전체 개념은 허구이다. 저자는 불교 초기경전에 있는 전차 예시를 든다. 전차라는 전체가 실재하는 게 아니라 단지 ‘전차’라는 이름 또는 지시어만 존재한다는 논의이다. 전차의 바퀴, 축, 널빤지, 깃대 등의 많은 부품 중 그 무엇도 전차 가 될 수 없다. 이것이 모두 모여 기능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부품이 연결 된 것이므로 전체라는 것이 실재할 수 없다. 따라서 오온이 모인 전체로서의 나 또한 허구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내가 계속해서 변화한다면 미래를 위해 준비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저자는 이를 불교의 진제와 속제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진제는 궁극적 진리, 속제는 세속적 또는 실용적 진리를 의미한다. 이 세상에 부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물건은 거의 없다. 수많은 부품으로 이루어진 대상들을 하나의 물체로 간주하면서 하나의 이름으로 가리킨다. 이를 통해 우리의 의사소통은 걸림없이 이루어진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실천과 관련된 행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주는 진리를 ‘속제’라고 부른다.

 

 

이를 지금까지 논의된 나에 대한 개념과 연관 지으면 다음과 같다. 내가 비록 다섯 가지 부분의 묶음이고, 전체로서의 나는 궁극적으로 허구에 불과하지만(진제), 이 허구는 아주 쓸모 있는 허구이다(속제). 끊임없이 변하는 내가 미래를 위해 행동해야 할 이유 또한 속제에서 찾을 수 있다. 일상에서의 우리는 우리가 개인 인격체로 존재하며, 인격체로서의 우리는 각각 약 80년 정도 변하지 않는 동일한 인격체로 살아간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동일한 인격체로 존재하기에 미래의 ‘나’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 정당하며 동시에 ‘공한’ 인격체임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책의 결론이다.

 

//

 

불변하는 자아는 없다는 내용에 동의하며 읽었다. 논리적으로 자아 개념을 반박하는 과정이 흥미로웠고, 낯선 불교 철학을 접하며 고민해보는 시간 자체가 즐거웠다.

 

‘나’에 대해 유독 집착하던 시기가 있었다. 진짜 나는 무엇인지 생각하다보면 쉽게 내 생각에 매몰되고 답없는 고민만 반복되었다. 지금은 진정한 나에 대한 물음을 잘 던지지 않는다. 어떤 부분은 변하고 어떤 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된 후, 조금 더 넉넉한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인격체 개념을 내 식대로 정리하면 '변하는 나도, 변하지 않는 나도 다 나다!'가 되겠다. 생각해보면 이 문장도 한 드라마로부터 왔다. 저자의 말대로 역시 불변하는 나, 고유한 내 생각은 없다.

 

드라마 <도시남녀의 사랑법>의 주인공 은오는 전애인의 배신으로 충격을 받은 후 서울을 떠나 양양에서 과거의 소심한 모습과 180도 다르게 행동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이은오가 아닌 ‘윤선아’이며, 한없이 자유로운 영혼이다. 재원은 그런 선아와 사랑에 빠지는데, 어느 날 선아가 말없이 사라진다. 은오는 서울로 돌아와 원래 자신의 삶을 살아가다 재원과 우연히 마주치고, 거기서부터 드라마의 갈등이 시작된다. 그 중 15화에서 은오가 '재원이 내 바보 같은 모습을 알게 되는 것이 싫고, 난 옛날의 바보 같은 이은오 그대로'라고 하자 친구가 그에게 건네는 말이 인상 깊다. "은오야, 옛날의 너, 바보 아니었어. 옛날의 너도, 지금의 너도 넌 그냥 다 너야. 다 이은오야."

 

2년 전에 봤는데도 지금까지 떠올릴 만큼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드라마를 보면 알겠지만, 은오에게 선아의 모습도 여전히 남아있다. 은오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고 사랑스럽다. 그러니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골몰하며 애쓰기 보다는 이런 저런 모양의 나를 받아들이고 아껴줄 일이다.

 

마지막으로 책에 대한 감상을 두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넉넉히, 여유과 빈공간을 가지고.

나는 언제든 변화할 수 있으니!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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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은 모두 게임을 한다 - 게임이론이 알려주는 인간 행동 설명서
모시 호프먼.에레즈 요엘리 지음, 김태훈 옮김 / 김영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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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하루에도 수십개의 게임이 벌어진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게임에서 어떤 이득을 취할 수 있는지를 무의식 혹은 의식적으로 계산하고 그 판단에 따라 나의 선택이 달라진다.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과 곤충도 이런 게임을 한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것은 모두 게임을 한다’는 제목은 정확하다.

‘내시균형’이라는 개념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다. 상대편과 나 양쪽 모두 이 균형상태에서 벗어날 경우 이득을 얻지 못할 때를 내시균형이라고 한다. 나를 신뢰하는 사람을 배신하거나 섣불리 남에게 피해를 주는 선택을 하지 않는 것도 내시균형에서 이탈할 경우 이득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장에서도 그랬지만, 유독 이타심을 다룬 챕터에서는 민낯이 드러난 느낌이었다. 백프로 순수한 이타심은 없으며, 타인의 시선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이타심을 발휘하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게 슬프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서로가 있기 때문에 선한 부담을 가질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우리 혼자로서는 불완전하지만 함께할 때 더 나아질 수 있다. 어떤 게임이든 당장의 편익과 득실을 따지기보다 장기적, 전체적인 이익을 바라보아야 한다.

예컨대 사과에 대한 비용은 ‘상대가 내게 행동을 바꿀 것을 기대할 때에 실제로 행동을 바꾸는 것’(p.102.)이다. 사과의 편익에 그 비용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을 때 우리는 사과하기로 선택한다. 이렇듯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되더라도 그 편익이 좋은 것이라면 기꺼이 그렇게 한다. 더 나은 내 모습, 더 나은 사회를 늘 꿈꾸기에 환경을 지키는 작은 노력을 한다거나 매일의 루틴을 지키는 번거로움을 감수한다. 타인과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커다란 게임 속에서도 기꺼이 비용을 감수하고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방향으로 살기 원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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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세미나 - 체제 이행기의 사유와 성찰
김규항 지음 / 김영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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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하자면 경제와 정치 쪽에는 아는 바가 별로 없다. 인문 쪽으로 관심이 많이 기울어 있어, 지금껏 경제 구조에 대한 책을 읽어볼 생각조차 못 했다. 이제서야 슬금슬금 내가 사는 세계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이번 달 도서 목록 중 『자본주의 세미나』를 택한 이유다.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그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마르크스의 『자본』을 통해 설명한다. 당연히 『자본』을 읽어본 적 없고, 교양 수준의 지식으로만 띄엄띄엄 알고 있는 나도 내용을 잘 따라갈 수 있었다. ‘시민을 위한 자본주의 세미나’라고 쓰여있는 만큼 최대한 쉽게 풀어 설명해 준다.



그중 <경기순환과 공황> 장을 재구성해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의 공황은 과잉생산에서 기인하며 구조적으로 되풀이된다. 자본이 축적 운동을 할 수 있는 이윤율을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 자본이 과잉되면, 거품이 터지듯 공황이 터진다. 공황은 자본주의 생산(과잉생산)의 모순을 드러내고 누적된 모순을 해소한다. 이때 생산 부문 간 균형 그리고 생산과 소비의 균형이 회복된다. 결과적으로 회복-호황-공황-불황 사이클이 반복된다. 역사적으로 산업혁명 이후 공황은 10여 년 주기로 계속되고 있다.



<노쇠한 자본주의> 장에는 자본주의가 인간을 해칠 뿐 아니라 심각한 생태기후 위기를 만들어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모든 개인이 탄소 배출을 줄인다고 해도 기후 위기를 막는 데 필요한 양의 고작 20퍼센트 남짓이라고 한다. (상당히 절망적이다.) 넋 놓고 아무 행동도 안 할 수는 없겠지만, 이는 우리가 사는 세상 그리고 경제구조에 확실히 변화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해결책은 간명하다며 저자는 생태주의를 언급한다. 무계획적 생산에서 계획적 생산으로 바뀌어야 한다고도 주장하는데, 필요성을 절감하고 의견에도 동의하지만 자본으로부터의 인간해방이 진짜 가능할까?라는 물음이 남는다. 지금으로서는 이미 실패한 사회주의가 아닌, 계획적 생산이 가능한 다른 체제를 상상하기 어렵다. 저자에 따르면 계획적 생산이 소수의 지배나 전체주의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는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운영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진 인민이 필요하다. 이 요소는 20세기 초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 모두 결여되어 있었다. ‘새로운 사회는 현재의 사회 안에서 자라난다’(p.196.)는 문장을 통해 아득하지만 그래도 어떤 그림을 그려볼 수는 있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본다. 지금과 그때가 정말 많이 다를까. ‘유토피아는 없지만, 최소한의 사회는 있습니다(p.197.)’는 문장을 보고도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 어떤 흐름으로 경제활동이 진행되는지 똑똑히 바라보고 어떤 사회를 상상해나가야 하는지 고민해 보게 해주는 책이었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편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성장과 ‘일잘러’ 추구 및 완벽에 대한 집착을 요구하는 건, 내 성격 문제 만이 아니라 사회 구조상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걸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스스로를 계속해서 고양시키지 않으면 내 자리가 위태위태해지기 때문에, 스스로를 닦달하는 것이 옳은 가치관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구조상 현 사회는 모든 사람에게 이를 요구한다. 내 존재에 대한,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함도 여기에서 오겠구나 싶다.



큰 구조를 이야기하는 만큼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경제 분야 첫 번째 책으로 고르길 잘했다 :)!



+) 여담으로 저자 김규항씨는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를 창간했고, 발행인을 맡고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 도서관 가서 매달 읽었는데 신기하고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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