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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시 반에 멈춘 시계 - 문원 아이 시리즈 13
강정규 지음 / 도서출판 문원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천천히 가그라. 꼴찌두 괜찮여.
서둘다 자빠지면 너만 다쳐
암만 늦게 가두 네 몫은 거기 있능겨
앞서 간 얘들이 다 골라 간 것 같어두,
남은 네 몫이 의외루 실속 있을 수 있능겨.
할머니가 주인공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이다. 위의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그래서 푸근한 동화이다. 넉넉함이 있고, 가족의 사랑이 있고, 그래서 마치 온 집안에 청국장찌개 맛이 진동할 때의 그 눅눅하면서도 구수한 고향의 냄새 같다고 하면 이 책의 분위기에 대한 적절한 수사일까?
그럼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또 궁금하시리라. 왜 다섯 시 반에 멈춘 시계야? 하고 말이다.
다섯 시 반에 멈춘 시계가 바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소재이다.
주인공 나는 경호라는 아이와 60리를 걸어서 통학하는 깡촌에 사는 중학생이다. 경호는 나보다 한 학년 위지만 같은 학교를 다녀서 항상 같이 다닌다. 그러면서 늘 내 앞에서 으스대는 것이 바로 시계 때문이었다. 큰형이 제대하면서 사다준 번쩍거리는 시계를 내보이면서 늘 자랑하는 것이었다.
마침 여름방학이 되어서 방앗간집의 대학생 형들이 내려오고, 나는 그들과 함께 생전 처음 해수욕장이란 데를 가게 된다. 왠지 허한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면서 잽싸게 경호에게 시계를 빌려서 간 해수욕장, 빳빳하게 깃 세운 교복을 입고 모자까지 쓰고 간 해수욕장은 정말 낯설었고, 혼자 팬티 입고 해수욕을 하면서 나오고 싶어도 물 속에서 차마 못 나오느라 나는 사실 지쳐 있었다. 그래서 집으로 오는 길에 그만 똥이 마렵기 시작했던 것이다. 참을 수 없이... 급기야 여자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다가 애지중지 허리끈에 걸어놓았던 시계를 똥 통 속으로 빠뜨리고 만다.
그 일로 인해 나는 곤경을 당하고, 아버지 몰래 손자를 애지중지하시는 할머님이 어려운 형편에도 쌀을 팔아 더 좋은 시계를 경호에게 사주었지만, 하필 방앗간집도 시계를 잃어버렸다는 말에 도둑으로 몰리게 된다. 애가 탄 나는 시름시름 앓고, 온몸이 불덩이가 된다.
급기야 할머니와 아버지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역전의 똥통을 다 퍼담아 시계를 찾아 진실을 가리기로 한 것이다.
“어머님, 그렇지만 그 큰 변소에 가득 찬 똥을 워떻게 다 퍼낸디요?”
“그런 말을 허덜 말어라, 왜 못 퍼? 새끼 장래 생각을 혀야지. 누명을 벳겨 줘야 써. 그러야 기 피고 살어. 애비 노릇 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법. 딱 결심 한 번 굳히거라. 내 할 말 다 혔다. 나가봐라.”
여름 뙤약볕에 결국 아버지는 똥지게를 들고 30리 길을 걸어 그 일을 하셨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 시계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다섯 시 반에 멈춘 시계를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그 시계, 아버지의 부정과 할머니의 손자 사랑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그 시계는 사실 누구나 가지고 있다. 비록 그것이 시계가 아닌 다른 무엇일지라도 결국 우리는 한 세대를 넘어 부모님에게서, 조부모님에게서 끈끈한 사랑의 무엇을 제각기 다 받고 여기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젠 우리가 우리의 다음 세대에 이런 사랑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나오게 되는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책임있는 사랑, 그것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