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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 ㅣ 범우사상신서 3
에리히 프롬 지음. 방곤,최혁순 옮김 / 범우사 / 1999년 1월
평점 :
품절
참 오래전에 씌여진 책이고..읽은지도 한 두달 정도 지난 것 같다. 쓰려고 했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쓸지 몰라서 제껴 놓았다가 어떻게든 써보려고 시도해본다.
소유의 삶과 존재의 삶을 비교해서 설명하고 마지막에 새로운 인간과 사회를 정의하고 이것을 실현시킬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책에서 나오는 새로운 사회는 존재의 사회이며 광고와 정치적 선전에 있어서 세뇌적 방법이 금지되고 국가사이에 빈부격차를 줄여야 하며, 모든 인간이 일을 하든 안하든 연간 보증 수입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 사회이다. 또 여성이 가부장제의 지배로부터 해방되고 과학연구가 군사적인 목적과는 별개로 연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정말 실현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존재의 삶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더라도 소유의 삶은 잘못되었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필수요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다. 책에서 말하는 소유의 삶이란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지식, 사회적 지위, 권력, 사랑등 정신적이고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것에 이르기까지 확장된다. 또한 '나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다'라는 소유의 삶의 기본이 된다.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 재산, 특정상품들을 소유함으로써 느끼는 행복은 저러한 것들은 지속적이지 않고, 항상 재산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이미 나온 제품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더 좋은 새로운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서 우리들의 끝없는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존재의 삶이란 자신의 능력을 수동적으로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발휘하고, 나누어 갖고, 주고, 희생을 치르는 경향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능동적이라는 것은 자기의 능력이나 재능을 생산적으로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는 자신을 새롭게 하는 것, 성장하는 것, 넘쳐 나오는 것, 사랑하는 것, 고립된 자아의 뇌옥을 초월하는 것, 관심을 갖는 것, 경청하는 것, 주는 것이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소유양식과 존재양식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사회에 뿌려박혀있는 사회경제적구조에 의해서 우리의 결정이 정해진 다는 것이다.
소유양식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릴수도 있다는 것에서 생긱는 불안감과 걱정이 있지만, 존재양식은 그렇지 않다. 나의 중심은 내안에 있으며, 스스로 존재능력을 사용하며 그 어떤 것도 안정감과 동일성의 감각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광고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소유양식을 버리고 살라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본다. 우선 나부터도 좋은 집, 좋은 차가 싫지는 않기 때문이다. 집이나 자동차가 원래 어떤 의미인지 살펴본다면 값비싼 집이나 차가 크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은 비,바람을 막아주고 자동차는 사람의 이동을 쉽게 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왜 좋은 차, 좋은 집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불행을 느끼는가?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나 보다 더 좋은 것들을 가진 사람들과의 비교이다. 두번 째, 광고가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 때문이다. 언제, 어디에서든지 우리와 뗄레야 뗄수없이 우리의 관심을 자극하는 광고는 더 좋은 상품과 함께하면 더 행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소비가 없다면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주체가 바로 우리들 자신이므로 생활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수입에 맞는 소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다. 그리고 존재양식을 삶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우리 모두는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