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시인의 얼굴 - 윤동주·백석·이상, 시대의 언어를 담은 산문필사집
윤동주.백석.이상 지음 / 지식여행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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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백석, 이상이라는 인물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시, 시인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그들이 남긴 시가 그만큼 강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은 독특하게도 그들이 남긴 산문을 엮었다. 거기다 필사 공간을 우측에 두어 시가 담아내지 못한 그들의 감정과 시대의 언어를 독자가 직접 따라 쓰면서 교감을 얻도록 하고 있다.



디지털이 정점을 이루고 있는 시대에 공교롭게도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필사가 붐을 일으키고 있다. 모니터나 휴대폰의 디스플레이로 뿌려진 작은 도트들의 결합을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읽는 것과 한 글자 한 글자를 읽으며 마음으로 새기면서 필기구로 노트에 직접 적는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종이책의 매력이 점차 희미해져가는 시대,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고 그들의 말과 글을 직접 적어가며 그들의 깊은 내면을 필사를 통해 온전히 느끼도록 하고 있다.



동무란 한낱 괴로운 존재요, 우정이란 진정코 위태로운 잔에 떠놓은 물이다.

p.32

일반적으로 우정을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것으로 묘사하는 것과 달리 윤동주의 이 글귀는 우정의 본질에 내재된 어려움과 불안정성을 표현하고 있다.

관계라는 것이 늘 즐거움만 주는 것이고 아님을 지적하며, 고통과 번뇌 또한 공유하며, 갈등과 실망을 안겨주는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수반되는 복잡성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정을 위태로운 잔에 비유한 것은 그것이 그만큼 균형을 잃기 쉽고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두가 굳건한 우정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한순간의 오해나 작은 균열로 쉽게 깨질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임을 강조한다.



종점이 시점이 된다. 다시 시점이 종점이 된다.

p.36

우리는 보통 종점을 무언가의 끝, 곧 단절이나 소멸로 인식한다. 하지만 이 글귀는 끝이 새로운 시작(시점)이 되고, 이는 곧 끝과 시작의 경계가 없다는 말이 된다. 실패나 좌절이 단순히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지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시점이 다시 종점이 되면서 순환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됨을 강조한다. 낮밤이 이어지고, 계절이 순환하듯이 말이다.

아마다 일제 강점기의 절망적인 상황을 종점에 빗대었을 것이고, 이러한 상황은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해소될 수밖에 없다는 희망을 적은 글이 아닐까 한다.



시인은 슬픈 사람입니다. 세상의 온갖 슬프지 않은 것에 슬퍼할 줄 아는 혼입니다.

p.88

시인의 문장에 유독 슬픔이 느껴지는 것은 시인의 본질이 그렇기 때문인 것일까?

슬픔은 개인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있겠지만 시대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그 당시 느꼈던 세상의 고통과 비애를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한다.

슬프지 않은 것이라는 표현도 다르게 말하면 기쁘다는 것을 의미할 텐데 슬픔이라는 단어를 한 번 더 언급함으로써 강조하는 의미가 있음이 보인다.

시인은 기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들, 이 당연한 것들 속에 숨겨진 슬픔과, 허무함을 감지할 수 있는 예민한 것(혼)을 가졌다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슬픔은 오롯이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거대한 공감이며, 그들의 시는 거기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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