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2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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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오르내리는 사건, 사고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황망한 죽음들이 참 많음을 알게 된다. 나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그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은연중에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낯설고 기괴하고 비일상적인 것은 영화나 소설 속에만 등장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현실이 그것들보다 더할 수도 있다.

이 책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는 '저주 토끼'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의 과거 단편 10편을 같이 묶어서 발간한 작품으로 욕망과 공포의 심연을 보여주는 환상 문학이다.



나는 손이 아파서 더 이상 때릴 수 없을 때까지 낯선 남자를 때렸다.

폭력이란 이상한 것이다. 처음에는 망설이면서 마지못해 툭툭 건드리는 정도에서 시작했지만, 주먹을 한 번 뻗을 때마다 그 강도는 점점 세졌다. 처음에는 몸통, 중에서도 맞아서 크게 다치지 않을 법한 부위를 생각해서 골라가며 때렸다. 그러나 몇 번 그렇게 때리다가 주먹이 두 번째로 명치를 가격하고, 남자가 다시 몸을 반으로 꺾었을 때 미처 손을 조절하지 못해 주먹이 뺨에 가서 맞고, 당황하는 나에게 남자가 '얼굴 때리셔도 됩니다'라고 속삭인 시점에서 이미 나는 통제력을 잃었던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바닥으로 무너진 남자가 '발로 차셔도 됩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진짜로 차려고 발을 들었다가 나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감염' 중에서

공포 영화라는 장르를 즐겨 보지는 않았지만 20~30대 때는 여름에 종종 극장에서 공포 영화를 관람하며 시원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요즘은 시간이 있다면 보다 밝고 가벼운 영화를 보려고 하지 굳이 공포 영화를 찾아서 보진 않는다.

단순히 공포에 대한 감정이 극대화되었기 때문은 아니고 나이를 먹을수록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인간의 삶 속에서 무거워져만 가는 심리에 보고 난 뒤의 찜찜한 기분을 더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감염'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을 보면 여자 친구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일반인지만 우연치 않은 인연이 더해지면 내면의 폭력성이 조금씩 드러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걸 보면 사람은 선한 존재인지, 악한 존재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태어난 존재일까? 아니면 환경이 그렇게 바꾸는 것일까?



집주인은 아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집 안으로 성큼 들어와 '팔'쪽으로 들어갔다. '팔'의 팔꿈치를 잡고 벽에서 뚝 떼어내서 자기 오른쪽 어깨에 붙였다. 새로 붙인 '팔'을 몇 번 앞뒤로 움직여본 후 집주인은 남편과 아내에게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문밖으로 사라졌다.

'죽은 팔' 중에서

'죽은 팔' 편에서는 요즘 한창 시끄러운 공동 주택의 층간 소음 문제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어린 아기가 있는 신혼부부는 자금 문제로 가격이 저렴한 다세대 주택에 전세로 들어오지만 이사 온 다음날 식탁 위에 매달린 '팔'을 보고 기겁을 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오직 아내와 아기뿐이다. 말 못 하는 아이는 팔이 벽이 두드리는 소음에 울음을 터트리고 다른 사람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이런 상황에 아내의 당혹감은 커져만 간다.

공동 주택의 소음을 식탁 위에 매달린 '팔'이 벽을 두드려서 발생한다는 이런 저자의 상상력이 참으로 놀랍고 신선하다.



빛이 밝게 보이는 것은 어둠이 있기 때문이다. 사물의 윤곽이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음영이 그 테두리를 두르고 있을 때이다. 인간의 몸속에는 빛이 들지 않으므로 내장 기관은 태어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언제나 어둠 속에 잠겨 있다. 인간의 두뇌는 매끈하지 않으며, 오히려 주름이 많이 지고 그 골이 깊이 파여 있을수록 기능이 뛰어나다. 인간의 마음속 골짜기와 그림자의 깊이는 아무도 알지 못하며 알 수도 없다. 인간은 겉과 속에 여러 가지 어둠과 그림자를 수없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다.

'그림자 아래' 중에서

반대 어휘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빛'과 '그림자'일 것이다. 빛은 선이고 좋은 것이요, 그림자는 나쁘고 악한 것이라 분류하는 것 자체가 전형적인 선입견의 이분법적인 사고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정확히 어떤 직업인지, 어떤 조직에 속하는지 정보는 없지만 여주인공은 킬러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가 아는 일반 상식선의 킬러와의 차이점이라면 사람의 신체에 해를 가하는 것이 아닌 사람의 그림자를 뽑아내서 처단하는 역할이다.

그림자를 빼앗긴 사람은 치료할 수도 해독할 수도 없다. 애초에 어떤 세균, 바이러스, 폭행, 독극물과 같은 그 어떤 자취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사자는 그저 깊은 잠에 빠져들고 깨어났을 때에는 백치가 되어 있을 뿐이다. 특이한 점은 밤이 되면 그림자를 잃은 몸은 어둠에 덮이지 못하고 빛이 없는 곳에서도 유독 희끄무레하게 빛날 뿐이다.

이 시나리오는 살을 붙이고 내용을 좀 더 확장하면 좋은 영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킬만한 소재라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 밝고 아름답게만 보이는 현대 사회에서 놓치고 있는 깊이 드리워진 그림자를 끄집어 내며 좋은 스토리 라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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