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스러운 사이 - 제주 환상숲 숲지기 딸이 들려주는 숲과 사람 이야기
이지영 지음 / 가디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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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자주 가보진 않았지만 갈 때마다 늘 바다만 방문했지 숲을 방문한 적은 없었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방문지를 선택 후보에 올렸었고 숲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바다만 갔었기에 돌이켜보면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리 같이 관광이 아닌 직업으로써 거의 매일 숲을 방문하는 사람은 어떤 기분이고 어떤 느낌일까?



봄꽃만큼이나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에도 수십 명 수백 명을 대하는데 유독 눈이 가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들 말이다. 잠깐의 만남과 스침 속에서도 여운을 남기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찾아왔던 에너지 넘쳤던 아가씨와 그의 아버지. 하늘도 흐리고 숲도 어두컴컴한 데다 그 시간대에 손님도 단 두 분 밖에 없었다. 보통 봄비 내리는 날은 화사한데, 그날은 그야말로 시커먼 먹구름이었다. 날씨도 기분도 축축 처지는 날이라 실망하겠다 싶었는데 들어가자마자 둘이 동시에 '우와'하고 감탄하면 말했다.

"이런 날씨 덕분에 어두운 숲의 모습을 보는 것도 특별한 행운이네요. 왠지 탐험가가 된 것 같아요."

그 해맑은 목소리에 앞을 분간하기도 어려웠던 으슥한 숲을 나도 덩달아 기분 좋고 경쾌하게 걸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을 때 방청객처럼 크게 호응해 주는 손님들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술술 이야기가 풀린다. 밝고 긍정적인 반응은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밝은 표정을 끌어낸다.

같은 사물, 같은 조건을 봐도 사람들마다 다르게 받아들인다. 사람이 자라온 환경, 현재의 상황, 감정, 마음가짐에 따라 각양각색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렵게 간 관광지에서도 날씨가 좋지 않다면 일정을 취소하거나 다른 일정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이런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밝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이 좋은 기운은 상대방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늘 보는 풍경이라 감흥이 없을 거라고 보통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같은 장소에서 계속 일하다 보면 해가 지날수록 더욱 새로운 점들을 볼 수 있게 된다. 이 시기에 이런 꽃이 피었던가? 이 시기에 이 나무가 새순을 내었던가? 작년에는 이 참식나무가 한 뼘쯤 새순을 내었는데 올해는 어찌 된 일인지 손가락 반 마디 정도만 순을 내기도 한다. 재작년에는 5월도 되기 전에 새로 돋아난 순이 애벌레에게 다 뜯어먹혔는데 올해는 그 애벌레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작년에는 어린 노루 두 마리가 종종 보였는데 올해는 다섯 마리 노루 가족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게 익숙한 숲인데도 아직도 모르는 것투성이, 신기한 것투성이라는 것도 놀랍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숲은 자라고 있고 변화하고 있다. 그 자리에 계속 있을 것만 같던 나무가 어느 순간 쓰러지기도 하고, 공터 같던 빈자리에 금세 생명이 뒤덮기도 한다. 생각보다 그 변화는 빠르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디다.

현대인의 우울감의 원인 중 하나는 늘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에서 기인할지도 모른다.

어스름한 새벽에 집을 나서 인파에 치이며 회색빛 빌딩을 지나 회사에 출근해도 기다리는 건 늘 넘쳐나는 일과 회의 및 보고들. 그리고 퇴근해서 집에 와 봤자 피로를 풀기 위해 자기 바빠 개인적인 여유를 가지기 쉽지 않다.

더 힘 빠지게 하는 것은 이 사이클의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변화는 항상 있겠지만 우리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일상에 너무 찌들어 알아차릴 수 있는 정신적 여유, 삶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잠시 눈을 돌려 안이 아닌 바깥을 둘러보자.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우리의 살아 있음을 느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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