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한 세 번의 여행 - 엄마를 보내고, 기억하며 삶과 이야기 1
이상원 지음 / 갈매나무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엄마와 함께했던 세 번의 여행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첫 번째는 배낭을 메고 떠난 1개월의 남미 여행이고 두 번째는 남미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엄마가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으면서부터 시작된 7개월의 이별 여행이며 세 번째는 엄마의 임종이 가까웠을 때 찾아내 읽기 시작한 엄마의 글을 통해 그 삶을 새로 접하게 된 여행이다.

명절이나 생신 때 부모님을 뵐 때면 언제나 한결같을 줄 알았던 모습이 점점 노쇠해 지시는 걸 보고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자식도 나이를 먹어가면 당연히 부모님도 동일할진대 왠지 부모님은 자연법칙의 적용 예외 대상으로 생각되곤 한다.

만남이 있으면 그 뒤에 이별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라 하지만 결코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그 성당에서 내려오면서 성 선생님이 어느 소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레콜레타처럼 예쁜 묘지를 관리하던 한 묘지기가 자신도 그 묘에 묻히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고, 그리하여 평생 죽어라 일만 한 끝에 마침내 죽을 즈음에는 필요한 만큼의 돈을 모아 그 묘지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그러가는 "그 삶이 대체 무엇을 위한 거야?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덧붙였다. 나는 그저 "뭐 소망을 이뤘으니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 아니었을까요."라고 짤막하게만 대답했다.

우리 인간은 무엇을 위해 현생을 살아가고 있을까?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묘지의 자그마한 땅에라도 묻히기 위해 평생을 죽어라 일만 한 묘지기를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겠지만,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내다보지 못하고) 남의 괴롭히고 악행을 저지르며, 남에게 피해를 주는 많은 사람들의 삶보다는 분명 더 나아 보인다.

모든 사람들이 내일 당장 삶이 다한다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과연 세상이 얼마나 바뀔까?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삶 자체를 포기하고 극단적인 방향으로 내달리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하리라.

도대체 이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엄마는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의사는 하는 수 없이 동의하면서 "다음에 오실 때는 정리 다 하고 오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집에 다녀오라는 말이었다.

그 말에 울음이 터졌다. 2월 중순 말기 암 선고 이후 적어도 엄마 앞에서는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난 엄마 없이 어떻게 살지 모르겠어."

"다 살 수 있어."

"난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준비가 됐다 싶은 때는 없어."

울음 섞인 내 말에 엄마는 침착하게, 마치 남의 일인 양 대답했다.

무언가를 하기 마음먹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준비가 되지 않아 일을 그르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한편으론 신중함이라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우일뿐이다.

특히나 이별은 늘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법이다. 준비가 안됐다고 외쳐봤자 하늘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나마 후회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라는 고사가 생각난다.

'자식은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내가 좀 더 시간이 있으면, 내가 좀 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부모님에게 더 잘 할 텐데라는 말은 그냥 핑계일 뿐이다.



엄마는 여든, 만으로는 78세에 떠났다. 요즘 기준으로는 이른 나이다. 엄마의 평생지기 동갑내기 친구들 중에서도 첫 번째 순서였다. 하지만 그걸 애석해하기보다는 함께 보낸 세월에 감사하기로 했다. 나는 엄마와 서른 살 차이 나는 딸로 태어나 50년을 함께했다. 1년 넘게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으니 온전히 50년이다. 모녀의 인연으로 맺어져 서로의 편이 되고 벗이 되어 50년을 지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이를 먹을수록 감성적으로 되어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별 관련 소재는 늘 가슴 한편을 헛헛하게 만든다. 애써 생각하고 느끼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 아픔이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일은 부모님께 안부 전화드려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