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로 다시 읽는 세계사 - 역사를 뒤흔든 지리의 힘, 기후를 뒤바꾼 인류의 미래
이동민 지음 / 갈매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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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억 년의 지구 역사에 비하면 거의 찰나의 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 짧은 기간 동안 인류는 찬란한 문명을 구축했다.

그것도 현생 인류가 등장했다고 하는 20만 년 전이 아니라, 산업혁명 이후 불과 몇백 년 사이에 이 정도의 번영을 이뤄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고 말을 아니할 수 없겠다.

하지만 80억 명이 넘는 세계 인구, 그 인구를 부양하기 위한 더없이 비대해진 산업은 필연적으로 자원의 고갈과 함께 자연환경의 파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인류 스스로의 자정 작용으로 환경을 보호하여 지구를 살리자는 목소리가 점점 더 대두되고 있다.

인류 문명은 기후변화 덕분에 태동할 수 있었고 기후 변화를 따라 변화하고 발전해 왔습니다. 아울러 오늘날의 기후 위기는 인류 문명의 존립 자체를 점점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기후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고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려면, 유사 이래 기후가 세계지도를 어떻게 그리고 바꾸어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빙하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매머드와 함께 인간이 살 수 없는 극한의 추위와 환경이 떠오른다.

현생 인류가 처음 등장했던 20만여 년 전의 아프리카 남부는 당시 간빙기였었고 빙하기에도 빙하가 덮여 있지 않은 지역이었다. 당시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뒤 거의 10만여 년 동안 아프리카 남부를 벗어나지 못했다.

왜냐하면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아프리카 중부, 북부에 사하라 사막이 거대하게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금으로부터 12만~9만여 년 전에 지구의 자전축이 바뀌면서 사하라 사막이 초원지대가 되며 인류의 활동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게 된다.


활동 반경을 조금씩 넓히던 인류는 빙하기에 접어들면서 예전에는 바다, 강 등으로 막혀 있었던 지역이 빙하로 연결되게 되며 이주를 통해 본격적으로 각 대륙으로 뻗어 나가게 된다.

거리 상으로 가장 멀었던 아메리카 대륙이 가장 나중에 정착된 지역이 되었는데, 이것도 지도에서는 좁은 지역으로 표시되지만 작은 무리의 인류에게는 너무나도 큰 바다인 베링해협이 빙하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베링해협 너머에는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이 펼쳐져 있었고, 인류는 수천 년에 걸쳐 아메리카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이로써 인류는 빙하기의 기후변화 덕분에 지구 전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10만 년 가까이 아프리카 남부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빙하 타고 내려와 친구를 만난 둘리처럼, 빙하를 타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었던 셈이다.



이후 인류는 우리가 학창 시절 세계사 때 많이 접했던 큰 강 유역의 4대 문명 발상지에서 본격적인 문명사회로서의 태동을 시작하게 된다.

책에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문명의 흥망성쇠와 기후의 연관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유독 중앙아메리카 문명에 눈길이 갔다.

앞에서 언급한 4대 문명의 발상지를 살펴보면 큰 강이 있어서 쉽게 농경 사회를 구축했던 아프리카, 아시아가 그 주요 무대이다.

인류가 가장 늦게 정착했던 아메리카에 고대 문명이 있었는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거기에도 뛰어난 과학 기술을 뽐냈던 문명이 있었다.

바로 잉카와 마야 문명이 그것이다. 시기적으로 잉카는 12~13세기 이후에 정복 활동을 통해 제국으로 성장하였기 때문에 고대 문명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봤을 때 마야 문명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고대 문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기원전 2,000년 무렵에 오늘날의 멕시코 유카탄반도와 그 인근에서 자리 잡아 고대 문명을 꽃피웠던 마야 문명은 이집트에만 존재한다고 착각할 수 있는 거대 석조 피라미드를 지을 정도의 뛰어난 과학 기술을 뽐냈던 문명이었다.

하지만 이 찬란했던 고대 문명도 다른 문명과 마찬가지로 기후 변화에 따른 극심한 가뭄으로 쇠퇴하기 시작했고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되고 만다.

8세기 중반부터 유카탄반도 남부에 닥친 극심한 가뭄은 무려 2세기 가까이 지속되었다. 한두 해도 아니고 이토록 장기간 이어진 가뭄은 마야 사회와 경제의 기반을 뿌리째 흔들었다. 전근대 사회에서 장기간에 걸친 심한 가뭄은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대재앙이었다. 마야문명은 습지에 수원을 의존했기 때문에 가뭄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수백 년이 넘도록 이어진 고전기의 번영 덕분에 인구가 계속 증가해왔기 때문에 가뭄과 같은 환경 재난은 더욱 치명적이었다. 계속된 가뭄은 마야 사회의 심각한 정치적 대립과 불안을 유발했다... 이러한 가뭄은 왜 일어났을까? 마야문명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 한센은 고전기, 아울러 선고전기 마야문명을 몰락하게 한 가뭄을 해당 시기에 이루어진 기후의 한랭화가 강수량을 감소시킨 결과로 해석한다... 정확한 원인이 무엇이 되었든, 극심한 가뭄이 고전기 마야문명의 몰락으로 이어졌다는 논의는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현재로 돌아와서 얘기해 보자.

위의 그림은 급격한 산업 발달로 인해 배출된 온실가스가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시켜 남극, 북극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1미터가량 상승했을 때, 침수될 세계의 주요 도시를 표현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 수백만의 대도시는 거의 물에 잠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아직까지 간헐적인 홍수로만 피해를 입고 있어서 진짜 설마 저렇게 될까?라는 위기의식 결여에 있다.

몇몇 깨어있는 개인, 조직 등이 환경 보호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조직, 국가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큰 진전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는 인간이 참으로 미개하고 어리석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 전 지구적인 문제에서는 단결하여 집단 지성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명함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기적으로 너무 늦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적어도 인류 사회의 공조와 협력을 통해서 기후 위기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망가뜨리지는 않을 정도로 완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기후 위기 시대에 필요한, 카가 역설한 '미래의 발전에 대한 비전과 신념'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기후 위기에 실효성 있게 대처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향을 모색하고 마련하는 일은 오늘날 인류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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