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회사에서는 회사 업무로서의 스트레스가, 집에서는 가장으로서의 무게감과 스트레스가 양 어깨를 짓누르며, 이제는 쉬어라!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선뜻 용기 내서 지르기에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과 망설임 주저함 등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예전과 비슷한 수준의 스트레스와 무거움일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된 쉼 없이 달려온 여정이 나를 지치게 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20대 때만 하더라도 찬란한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월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과 낙관적인 마음이 가득했건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자신감은 자만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꼬였다고 생각하는 인생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미 지나온 과거는 차치하고서라도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궁금해지지 않을까?
요즘은 휴대폰 뉴스와 SNS을 통해 세계 곳곳의 소식을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뉴스들을 보다 보면 과연 세상에는 질서가 있고 정의가 있는 것인지 종종 궁금해진다. 누구보다 착하고 착실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궁핍함 속에서 고생만 하며 인생을 살아가고 있고, 악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못된 심성으로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오히려 호의호식하며 인생을 편하게 사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그리고 많이 보고 있다.
태어날 때 우주로부터 받은 운명의 궤도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란 말인가?
"모든 것이 그렇지만, 사주는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주를 통해 알게 된 것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하며 되는 대로 살 것 같으면, 사주를 안 보는 것만 못합니다. 청마 유치환 시인은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피할 수 있는 것을 피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주를 보는 사람의 자세는 '현상은 객관적으로, 대처는 긍정적으로'입니다. 사주는 객관적으로 보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개선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진지하게 명리학을 공부해 보고자 한다. 내 앞에 어떤 미래가 그려질지를 앉아서 기다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좋은 미래든, 기대에 못 미치는 미래든 큰 흐름의 미래를 읽고 어떻게 대처할지 어떻게 살아갈지를 준비하는 것이 조금은 더 현명한 인생을 사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많은 명리학 서적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읽은 책은 초심자가 이해하고 다가가기에는 조금 난이도가 있었다면 이 책은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명리학을 공부하게 되리라는 것도 나의 운명에 있었던 시나리오인지 궁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