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 선집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책세상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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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두께의 책에 긴장감과 정적마저 흐른다.

사전을 제외하고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은 처음 읽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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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

학창 시절에 들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책 소개 자료에서 공리주의를 접하고 나서야 공리주의 사상가이자 철학자임을 알게 되었다. 벤담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학창 시절 암기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공리주의가 실로 오랜만에 다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출처: 서울대학교 철학 사상 연구소

말이 나온 김에 존 스튜어트 밀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1806년 제임스 밀(James Mill)의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바로 벤담의 제자였다. 장남의 교육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공리주의 사상을 접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질적 쾌락주의(qualitative hedonism)'를 주창했으면 그 유명한 말 '만족하는 돼지보다 불만족스러워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다'라는 말을 남겼던 19세기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며 경제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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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존 스튜어트 밀 선집>은 문자 그대로 선집(選集). 존 스튜어트의 대표작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공리주의>, <자유론>등 별개의 책들은 출간된 적이 있으나 이처럼 한꺼번에 모아서 출간한 것은 처음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은 그의 저서 총 6편을 묶었으며 <공리주의>, <종교론>, <자유론>, <대의 정부론>, <사회주의론>, <여성의 종속>이 바로 그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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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기 위해 매달려야 하는 직업과 각자의 사회적 상황이 그와 같이 높은 능력을 발휘하는 데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면, 다수의 젊은이들에게서 그러한 능력은 쉽게 사라지고 만다. 사람은 지적 호기심을 잃고 나면 보다 높은 것에 빠져들 시간이나 기회가 없어지고, 그에 따라 그런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도 사그라진다. 그 대신 열등한 쾌락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이것은 그런 쾌락을 의식적으로 더 선호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그들이 접근 가능하거나 그나마 비교적 오래 향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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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층의 사람들이 요즘 젊은 세대에게 자주 하는 말들이 있다. '라떼는 말이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해' 등의 꼰대 같은 말들 말이다. 그들이 바라보기에는 젊은 세대들이 하는 행동이 답답하고 열정이 떨어져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실상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산업화 이후 최초로 부모 보다 빈곤한 세대가 된 요즘 젊은이들은 'N포 세대'라는 유행어에서 알 수 있듯이 돈이 없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집을 사는 것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 놓여 버리고 말았다. 먹고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하는 그들에게 지적 호기심을 잃고 열등한 쾌락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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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신탁神託의 시대가 끝나자, 계시를 내세우는 모든 종교는 신탁이 하던 역할을 대신할 다른 방편을 찾아냈다. 가톨릭은 절대 오류가 없는 교회의 권위에 의존했다. 그리하여 교회는 인간의 자발적 행동 중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는지 판단하는 권한을 행사했다.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성서의 주장에 의존해 어떤 관행이 명시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신의 승인을 받을 수 있는지 판정했다. 그렇다 해도 일정한 범위를 넘어 자연을 통제하려는 모든 시도는, 비록 그 강도가 약해지긴 했지만 인간에게 허용된 것을 넘어 감히 신성한 권능을 훼손하는 불경한 행위로 간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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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의 위급한 상황 하에서 유독 모 종교의 행태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며,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종교라는 이름 아래, 신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이 하는 모든 행동들은 과연 절대 무결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 종교를 믿지 않는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그러한 행동들을 사랑이라는 것으로 포장할 수가 있을까?

종교와 사회와의 갈등, 종교와 정치체제와의 갈등은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인간 본성에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종교 자체의 개선을 얘기했고 요구했던 밀의 메시지가 요즘 상황에 참 묵직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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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어떨까? 민주주의는 이런 부정적인 현상과 거리가 멀 것이라고 낙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는 통상적으로 다수파에 의한 지배라고 인식된다. 이런 전제에서 바라볼 때, 지배 권력이 특정 집단 또는 계급의 이해관계에 의해 휘둘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사회 전체의 이익을 지향하는 불편부당한 관점과 배치되는 행동을 취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떤 사회의 다수가 백인이고 흑인은 소수인 경우, 또는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런 사회에서 다수가 소수에게 평등한 정의를 허용할 것 같은가? 또 가톨릭 신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개신교도는 소수인 경우 또는 그 반대인 경우에 똑같은 위험이 존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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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현재로서는 가장 선진화된 정치 체제임에는 이견이 없으나, 요즘의 세대의 갈등, 이념의 갈등 등을 보다 보면 한편으로는 과연 이게 바르고 문제없는 상황인 것일까? 하는 회의감을 가지게 된다. 밀은 대의 정부론에서 좋은 정부의 첫 번째 요건은 '인간성을 증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한편으론 참 이상적인 것만 얘기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국민에게 물질적인 혜택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까지 함양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참으로 더할 나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대 간의 갈등, 이념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거짓 정보와 뉴스의 홍수 속에서 정부의 분명하고 확고한 자정 작용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민주주의가 다수의 횡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소수의 의견도 경청하고 들어주며 올바른 정보의 기반 하에서 건설적인 토론의 장이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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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경제와 정치 상황이 어땠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요즘에도 여전히 유효한 그의 사상과 메시지들을 보면서 밀은 진정 시대를 앞서간 철학자이자 사상가였음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방대한 그의 생각들을 짧은 기간의 수박 겉핥기 식 독서로 얼마나 이해했겠냐마는 잠시간의 독서로도 이 책은 평생을 두고 읽어봐야 할 책임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필사를 통해 그의 생각을 보다 깊이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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