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
2000년 초반 세계 경제학계에 장하준이라는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린 바로 그 책이다. 영문판으로 2002년에 영국에서 가장 먼저 출간되었고 이후 2년 뒤인 2004년에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으며 올해 개정판이 다시 선을 보였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무엇을 의미할까?
은유의 뜻이 숨어 있지는 않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된다. 어렸을 때 이런 놀이를 한 사람들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사다리를 가지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다른(다음) 사람은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치워 버리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먼저 올라간 사람은 '선진국'을 의미하고, 다음에 올라갈 사람은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경제학적 관점으로 다시 풀어쓰면 선진국들 스스로는 과거에 자기들이 경제 발전을 할 때는 신자유정책을 쓰지 않고, 보호무역, 적극적 산업 정책, 외국인 투자자 차별, 외국 기술의 도용을 용인하는 특허법 등을 사용했으면서, 정작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게는 '그런 정책을 사용하면 망한다'라고 설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선진국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18세기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불리면 전 세계의 4분의 1을 가까운 영토를 가졌던 영국. 자유 무역주의 신봉자라고 불렸던 영국도 실상은 13~14세기 다른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가 뒤처져 있었고, 경제 발전을 위해 모직 제조업에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적용하여 경제 발전을 꾀할 수 있었다.
영국의 뒤를 이어 세계의 강국이 된 미국도 실상은 무역 자유화와 자유 무역 사상을 옹호하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 대 전 이후로 미국이 전 세계 어느 국가도 넘볼 수 없는 산업의 우위를 확보하고 나서였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현대적 보호주의의 탄생지이자 요새'라고 불렸던 적이 있을 정도로 유치산업 보호주의와 고율 관세 정책을 펼쳤었다.
일본의 경우도 동일하다. 2차 세계 대전 패망 후 1970년 때까지 1인당 GDP 연 8퍼센트 성장이라는 경이로움을 보였던 일본도 한국 전쟁이 밑거름이 된 부분도 없지 않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무역 기술 정책 덕분에 놀라운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현재 선진국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현재 그들 스스로 외치고 있는 신자유주의 사상과 자유 무역이라는 기치와는 얼마나 상반되는 과거를 가졌었는지 잘 알게 되었다. 이러한 시국에서 우리를 포함한 개발도상국들은 어떤 방법론으로 접근해야 할까?
"아직 완전히 선진국이 되지 않은 우리 입장에서는 (그리고 다른 후진국들의 입장에서도) 지금 선진국들이 이른바 글로벌스탠더드를 내세우며 우리에게 하라고 강요하는 것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그들이 우리와 비슷한 단계에서는 어떤 정책과 제도를 썼는지를 잘 살펴보고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뜻하지 않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는 선진국이라 불리는 여러 나라들의 적나라한 민낯을 볼 수 있었다. 그 어느 나라들보다 이 사태를 잘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예상과는 정반대로 국가 봉쇄(Lockdown) 및 의료 시스템 붕괴 등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해 허우적대고 있음을 보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그동안 그토록 신봉했던 선진국이 사상누각이었음을 알게 된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고 해야 하는 것은 우리만의 강점인 깨어 있는 시민 정신, 성숙한 민주주의의 기반 하에서 선진국이 걸어왔던 역사의 길을 교훈 삼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주의 깊지만 과감하게 결정해 나가야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관점에서 초판이 출간되지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이 책 '사다리 걷어차기'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아직도 묵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