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 무례한 세상에 지지 않는 심리학 법칙
권순재 지음 / 생각의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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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각박해져가는 세상에 심리적인 아픔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누구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은 사람은 마음이 약해서 받은 게 아니라 마음이 아파서 받은 거라고 얘기하는 책.

심리학이라 하면 좀 딱딱할 수 있는데 영화의 내용과 결부하여 쉽게 풀어냈다고 하니 그 내용이 사뭇 궁금해진다.



책의 저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전문가가 심리치료에 대해 쓴 딱딱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시각에서 바라본 영화 해설평이다.

정신건강 관점에서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에 녹아져 있는 감독의 메시지를 읽고 해석하여 독자가 위로와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한 해설서이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부서진 마음은 정답을 알면서도 고르지 못한다.

부제: 그토록 어리석었던 그때의 나에게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23 아이덴티티,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쓰리 빌보드

2부 불쾌한 삶에는 늘 내가 없었다.

부제: 더는 괜찮지 않다고 내 마음이 신호를 보낼 때

영화: 록키 발보아, 버드맨, 설국열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비버

3부 우리는 절대 서로 닿지 못한다.

부제: 마음과 마음이 닿아도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영역

영화: 서치, 소셜 네트워크, 그래비티, 주토피아, 단지 세상의 끝, 늑대아이,

4부 노력해도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부제: 식어가는 감정을 막으려 몸부림치지 말 것

영화: 500일의 썸머, 이터널 선샤인, 러브레터, 봄날은 간다

5부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부제: 당연했지만 내게는 주어지지 않은 것들에게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스틸 앨리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로마


과거를 극복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충분히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충분히 슬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p55

이 애니메이션을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책을 통해 본 주인공들의 아픔이 작년에 본 유열의 음악앨범이라는 영화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의 죽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얼마나 큰 아픔일지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을 트라우마 속에서만 살아가는 것은 또 얼마나 큰 슬픔일지 하는 안타까움도 생긴다. 우리 사회는 남자든 여자든 간에 아픔을 금세 잊어버리고 씩씩한 모습을 보이는 걸 미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잊은 척 살아가고 있는 데 충분한 슬픔 뒤에 치유가 뒤따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분노에 잠식된 우리는 그 끔찍한 행동들마저 세상을 정화시키는 계몽활동처럼 느끼고 정당화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자제시키려 하는 사람에게 분노의 방향을 돌리기도 합니다.

쓰리 빌보드, p61

본 영화라서 그런지 저자의 해설이 더 쏙쏙 들어왔다. 영화 초반 부에는 끔찍한 사고로 딸을 잃은 엄마의 분노를 공감하고 이해했지만 어느 순간 그 분노에 잠식되어 이성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피해자가 어느 순간 가해자가 되는 상황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현대 사회의 우리네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이해 집단들의 분노가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서 불특정 다수에게 향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넌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네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어.

네 가치를 안다면 가서 너의 가치를 쟁취하거라.

하지만 맞을 각오를 해야 해.

록키 발보아, p75

SNS가 유행하면서 그 어떤 시대보다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시대가 된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고 유행의 첨단을 따라가는 것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겠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가치는 오롯이 타인에 의해서만 결정될 것 같다.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자신이 쟁취하는게 맞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 맞아도 쓰러지지 않을 단단한 각오는 되야 할 것이다.

산다는 게 뭐지? 가기로 결정했으면 계속 가야 해.

등 뒤에 붙이고 가는 거야. 땅에 두 발로 딱 버티고 서서 살아가는 거야.

그래비티, p146

광활한 우주를 표현한 압도적인 CG에 끌렸던 영화였지만 중반 이후에는 혼자 남게된 주인공인 산드라 블록에 감정 이입이 된 영화였다. 사고로 우주에 홀로 남게 된 주인공. 나 같으면 그 상황을 극복하고 지구에 돌아갈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 자문해 보지만 쉽게 답을 못 내리겠다. 하지만 위의 대사처럼 그녀는 살아가리라는 다짐을 하며 지구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인생 뭐 있나. 직진이지.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연속적으로 흘러가지만 기억은 언제나 불연속적이며

감정으로 덧칠되어 있습니다. 우리 기억의 구성은 감정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강렬한 감정이 동반된 순간은 매우 쉽게 기억이 되고, 현재 느끼고 있는

강렬한 감정이 특정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500일의 썸머, p181

영화 제목인 썸머를 여름으로 생각하고 들어갔다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연애와 운명에 대해 잠시동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연애나 다른 생활도 마찬가지지만 각자 다들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만 기억하는 것 같다. 같은 상황이라도 각 사람의 감정의 세기(정도)에 따라 기억의 정도가 차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별일 아닌 일이라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강렬한 감정이 동반되어 평생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될 수도 있다. 이걸 보면 사람은 이성적 동물이 아니라 감성(정)적 동물에 가까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본 영화도 있고 아직은 못 본 영화도 있지만 책을 읽는 데 있어서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본 영화는 저자의 생각 및 해석과 비교하여 읽는 재미가 있었고, 보지 못한 영화는 영화의 제목만 보고 내용을 판단했던 영화의 내면을 알게 되면서 훗날 영화를 보게 되면 몰입해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의 장르와는 상관 없이 감독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우리와 동일하게 다양한 심리적인 아픔을 느끼고 있고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이런 아픔을 공감해 주고 치유 받기를 소망하고 있다는 것을 저자의 깊이 있는 해석을 통해서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세상에 나 혼자만 아픈 게 아니고 나와 동일한 아픔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아픔의 치유가 시작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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