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미래전략 2024 - 포스트 AI 시대 당신의 도전과 기회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미래전략연구센터 지음 / 김영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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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미래전략연구센터에서는 매년 카이스트 미래전략을 출간해오고 있다. 2024년이 얼마 남지 않은 10월 말, 이 책이 출간됐다. 마침 요즘 AI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져서 이 책을 읽기에 딱 좋은 시점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의 목차는 크게 두 개로 나뉜다.

  1. 포스트 AI 시대 휴머니즘의 미래

  2. 변화에 대처하는 STEPPER 전략

인간의 기계화, 기계의 인간화

사이보그 과학기술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도나 해러웨이는 1985년, <사이보그 선언>이라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그는 인류 구성원 각자가 기계가 결합하는 사이보그가 되느냐 마느냐는 이제 큰 이슈가 아니며, 우리가 누리는 현대문명 자체가 이미 사이보그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호모사피엔스와 과학기술은 이미 하나로 결합한 거대한 사이보그이며, 21세기로 접어든 현대 인류 문명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의족이나 의수를 달고 일상생활이 가능해진 사람들을 뉴스 기사로 가끕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사이보그 담론에서 주목하는 것은 인공 신체 부품에 AI가 장착되어 있는지의 여부이다.

우리는 <스파이더맨 2>이나 <내가 행복한 이유>라는 소설 등, 꽤 많은 미디어에서 AI와 신체가 결합했을 때의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을 만나고 있다. 특히 <내가 행복한 이유>에서는 두뇌가 인공 부품과 연결됐을 때의 중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물론 불안한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과 AI의 긍정적 결합을 그린 작품으로 <공각기동대>를 들 수 있다. 이 세계 속 캐릭터는 말 그대로 '특이점'에 도달한 인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위 이야기에서 과학적 상상력과 윤리적 상상력을 구분해야 한다. 과연 인간성의 외연이 어디까지 넓어질 것인지를 핵심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미래 인간상을 논의하는 포스트휴먼 담론에서 인간은 더 이상 생물학적 존재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이제 인간은 필요에 따라 신체 일부를, 나아가서는 전부를 교환할 수도 있게 된다.

인간의 사이보그화가 전면적으로 진행된 세상이 언제 본격적으로 펼쳐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상상해보라. 과연 그 미래가 좋기만 할까? 혹은 나쁘기만 할까?

나는 과학기술이 무조건 인간을 중심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의수나 의족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손과 발이 되어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들어줄까. 이렇게 생각하면 이쪽 분야가 더 많이 발전했으면,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AI가 두뇌와 결합한다고 가정해보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든다. 다 떠나서 인간의 두뇌 깊숙이 내재되어 있을 폭력성이나 악함이 AI와 어떤 시너지를 낼지가 가장 무서워진다.

호모사피엔스, 휴머니즘의 미래를 묻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3장이다.

거대언어모델, 인간 노동의 종말, 영생불멸, 저작권 같은 보기만 해도 흥미로운 소재들이 나온다.

저번에 김영하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도 질문했던, 내가 요즘 빠져 있는 '인공지능의 저작권' 문제가 특히 흥미로웠다.

현행 법체계 안에서는 AI의 저작권 소유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국내외 대다수의 저작권법은 저작물의 개념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세히 따지고 들어가면 이것도 문제가 될 여지가 많아서, 최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AI는 인간을 궁극적으로 어디로 이끌 것인가?

이 블로그를 운영하며 꾸준히 말해왔지만 난 과포자다.

하지만 인공지능 관련해서는 관심이 많아서, 관련 도서를 꾸준히 탐독하는 독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는 교양 수준의 인공지능 지식이 들어있다.(물론 당연히 많이 부족하지만!)

그런 나에게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는 과학교양서였다고 단언할 수 있을 것 같다. 미래에 인간과 과학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책장을 넘기는 걸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정말 즐겁게 읽었다. 아직 한참 남았지만 2025년 버전도 꼭 살 것 같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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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별자리 여행
이태형 지음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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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지구과학, 특히 천문학에 별로 관심이 없다. 오히려 따지자면 물리학 책을 더 흥미롭게 읽는다. 별자리 보는 방법도 잘 모르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별자리 탄생설들만 몇 개 알고 있는 정도다. 근데 이 책을 읽고 별자리의 오묘한 매력에 빠져버렸다.

책장을 넘기면 가장 먼저 예쁜 별 사진들을 만나볼 수 있다. 반짝반짝 예쁜 별들에 먼저 시선을 빼앗긴다.

그리고 목차가 우릴 반긴다.

  1. 북쪽 하늘의 별자리

  2. 봄철의 별자리

  3. 여름철의 별자리

  4. 가을철의 별자리

  5. 겨울철의 별자리

  6. 부록

총 여섯 가지의 목차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은 별자리의 모양과 별자리의 특징, 별자리에 엮인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준다. 마치 별자리의 교과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 뒤 부록도 재치 있다고 느꼈는데, 옛날에 한창 유행했던 '별자리별 성격'을 담아놓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중학교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별의 밝기'에 대해서도 자세히 볼 수 있다. 중학교 때 안시등급을 공부하느라 애썼던 기억도 새록새록 났다.

오늘 나는 그중에서도 내 별자리인 '쌍둥이자리'에 대해 책에 나온 대로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쌍둥이자리(Gemini, the twins)

적경 7h 00m 적위+22도

3월 1일 오후 9시 자오선 통과

실제 서열 513.761평방도(30위)

쌍둥이자리는 겨울철에 볼 수 있는 별자리이다. 1등성 폴룩스를 대동한다. 오리온자리의 왼쪽 위로 밝은 두 별이 쌍둥이처럼 나란히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머리에 해당하는 두 별은 항상 변치 않는 형제의 우정처럼 선명하다. 그중 오른쪽에 보이는 별이 형인 카르토스이고, 왼쪽에 보이는 별이 동생인 폴룩스이다. 하늘에 뜨는 시간은 형이 20분 정도 빠르다.

쌍둥이자리는 모양이 독특하고 별이 밝아서 찾기가 쉽다고 한다.(내가 별자리 찾는 법에 무지해서 그렇겠지만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이 별자리를 찾는 데 길잡이로 활용할 수 있는 건 오리온자리다. 오리온자리의 두 1등성인 베타별 리겔과 알파별 베텔기우스를 이어서 두 배 정도 나아가면 쌍둥이자리의 알파별 카스토르와 베타별 폴룩스를 만날 수 있다. 거기서 베텔기우스 방향으로 두 줄기의 별이 나란히 있는 것을 찾으면 쌍둥이자리를 찾는 일은 끝난다!

쌍둥이자리에 전해지는 이야기는 역시 쌍둥이 이야기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카스토르와 폴룩스는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가 레다를 유혹해 낳은 쌍둥이 형제다. 두 형제는 아름다운 두 자매를 차지하려고 그 자매들의 약혼자와 싸움을 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불사신인 폴룩스는 상처 하나 없었지만, 카스토르는 심한 부상으로 죽고 말았다.

폴룩스는 분신과도 같던 카스토르의 죽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불사신이라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제우스를 찾아가 자신을 죽여달라고 한다. 형제의 우애에 감동한 제우스는 하루의 반은 지하세계에서, 반은 지상에서 살 수 있도록 그들을 허락했다. 그리고 그 우애를 기리려고 이들의 영혼을 올려 나란히 두 개의 밝은 별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책이 또 재미있는 건 뒷표지의 '추천 독자'이다.

이 책이 필요한 사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감명 깊게 읽은 사람

-밤이면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

-별과 우주에 관심이 있는 사람

-(...) 후략

이 책이 정말 필요한 사람

-위의 사항에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

그냥 읽으라는 뜻 아닐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평을 쓸 때나 적을 수 있는 유머라고 생각했는데 공식 책 뒷표지에 적혀 있어서 너무 귀여웠다.,,,

별자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많지 않은 사람도 가볍게 상식용으로 읽기 좋은 별자리 입문서라서 추천하고 싶다! 책을 다 읽으면 어느새 아는 별자리가 있길 고대하며 밤하늘을 바라보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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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이라는 착각 - 확신에 찬 헛소리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필리프 슈테르처 지음, 유영미 옮김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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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이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지 생각해보자.

일단 나는 자주 쓴다. 우리 주변에선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우리가 그들에게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하는 이유는, 내가 옳다고 믿는 확신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가 정답이고 가장 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진짜 그럴까? 이성은 정말로 이성적일까? 평소에 그렇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뇌에 문제가 생겨 정신착란을 겪는다면 어떨까?

우리는 스스로 여러모로 굳게 확신하는 세계상을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의 확신이 자신의 확신과 일치하면 그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그렇지 않으면 '미쳤다',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한다.

본문 P.50

조금 찔리는 대목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만들고, 그 이분법적인 세계관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알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은 상대적이라는 것. 그래서 남에게는 내가 비정상일 수도 있다는 것. 나도 잘 알고 있다.

이걸 정치적 담론에도 적용할 수 있다. 책에 나온 예시를 들어보자.

미국의 시민들 중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활동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를 믿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놀랍게도 공화당 지지자들은 고작 10%만 저 이야기를 믿었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78%가 저 이야기를 믿었다.

이는 공적 담론에서 기후변화를 보는 시각이 정치적 지향의 문제가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어떤 정책이 중요한지보다 특정 정치집단에 속하기 위해 기후변화의 유무를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기후변화가 미국에 경제적으로 해를 끼치기 위해 중국이 고안한 것이라고 말했던 트럼프의 트윗은 아주 유명하다. 물론 모든 공화당 지지자가 저 의견을 믿진 않겠지만, 위의 답변 비율을 보면 절망적인 수준이다.

물론 응답자들이 어떤 확신을 갖고 있든 간에, 모두가 인간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학문적 증거를 꿰고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인간의 활동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맞는지 틀린지는 별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실 여부를 떠나 우리의 확신은 집단 소속감에 대한 표현인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우리는 속하고 싶은 집단에 의거해 확신을 선택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의 확신은 한편으론 속한 집단과 동질감을 느끼고, 한편으로는 타자를 배제하는 데 기여하는 게 아닐까.

신념이 왜 그토록 기만적인가?

나는 일명 '줏대 있는' 여자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소속된 집단에 따라 의견을 정하는 것보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믿고 목소리를 낸다고 말이다. (물론 이것도 남이 보기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다른 사람들도 다 '줏대 있게' 살고 있을까? 위 대목을 읽으며 우리 현시대 사람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명예ㅇㅇ', 'ㅇㅇ호소인'이라는 말을 한번쯤 인터넷에서 접한 적 있을 것이다. 주로 조롱의 의미로 쓰이는 신조어다. 마치 내가 ㅇㅇ이 된 것처럼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의견과 처지에 공감하고, 동질감을 느끼며 내가 그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고 믿는 이들을 말한다.

'명예백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보자. 예컨대, 나는 동양인이지만 '명예백인'이다.

뉴스에서는 한 백인 남성 경찰이 과잉진압으로 흑인 남성을 사살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다음 뉴스에서는 한 흑인 여성이 동양인 여성을 지하철에서 조롱하고 인종차별했다는 내용을 들려준다. 이때 '명예백인'은 뭐라고 이야기할까?

"저것 좀 봐. 흑인들은 자기들이 차별 받는 건 못 참으면서 동양인은 아무렇지 않게 차별해. 저러니까 노예로 살았겠지. 내로남불의 전형이야. 동양인을 차별한 대가라고 생각하라구. 흑인들이 차별 받는 건 정당해."

...라고 이야기할 것이다.(실제로 내가 인터넷 뉴스 댓글에서 본 말들을 종합한 것이다)

실제 백인이 저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명예백인'이라는 게 아니다. '명예백인'의 말에서 중요한 핵심 포인트는 '흑인들이 차별 받는 건 정당해'이다. 동양인으로서 같은 동양인이 인종차별 당했다는 것 자체보다 흑인 차별의 정당화가 더 중요한 거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저 말들이 얼마나 어이없고 비논리적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과잉진압으로 사살된 흑인남성은 동양인을 조롱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당한' 이유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왜냐하면 같은 인종인 사람이 동양인을 차별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위치를 백인과 동일시하면서 흑인 차별을 정당화하는 건 백인들 사이에서도 '폐급' 취급 받을 일이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네이버 뉴스 기사에서, 유튜브 뉴스 댓글에서.

여기서 책 속의 대목을 끌어올 수 있다.

우리는 속하고 싶은 집단에 의거해 확신을 선택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의 확신은 한편으론 속한 집단과 동질감을 느끼고, 한편으로는 타자를 배제하는 데 기여하는 게 아닐까.

'명예백인'들의 '흑인이 차별 받는 건 정당하다.'라는 확신은 백인 집단과 동질감을 느끼고, 타 인종을 배제하는 데 기여한다. 그들이 백인이라는 집단에 속하고 싶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사고방식으로 타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물론 내 말이 완벽하게 맞는 예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독자들이 이해할 거라고 믿는다. 자매품으로 '재벌호소인'이나, '명예일본인'도 있다.

왜 같은 것을 보고 서로 다른 논리에 빠지는가?

살면서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만났을 때 가장 궁금한 것중 하나다. 같은 교육과정을 거치고 자랐는데 대체 왜 저렇게 제정신이 아닌 건가. 우리는 그 정답을 찾을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 다 옳은 걸까? 내 뇌는 과연 '정상'일까?

인간관계에 지치고 힘든 독자들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다. 정상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앞으로도 힘들 때마다 한 번씩 꺼내서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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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문학의 탄생 - 한국문학을 K 문학으로 만든 번역 이야기
조의연 외 지음 / 김영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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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선 언제부턴가 'k-00'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k-디저트, k-인심, k-장녀.... 그러나 k-문학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이 굉장히 눈에 띄었고,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도 확 들었다.

2016년,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는 걸 웬만한 독자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현재 우리나라의 문학작품은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수많은 나라에 퍼져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한국문학의 번역에도 관심을 가져봄직하다. 따라서 이 책의 두 저자는 한국 번역가의 목소리를 담아보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책에는 총 열세 명의 번역가가 등장한다. 각 번역가들이 번역한 작품역시 널리 알려진 작품들이다. 중요한 건 해외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한 한국 번역가들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작품을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한 외국 번역가들의 이야기도 실려있다는 것이다.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한 잔의 붉은 거울, 김혜순

-오 하느님, 조정래

-미나, 김사과

-생강, 천운영

-한 명, 김숨

-도가니, 공지영

-프롬 토니오, 정용준

-황진이, 홍석중

...

여러 번역가의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시(詩) 번역에 관한 것이었다. 시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부분을 읽고 나니 '시 번역'이라는 것이 새삼스러워졌다.

시는 번역으로 잃어버리는 어떤 것이다.

출처는 규명되지 않았지만 미국의 시인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구절이다. 하지만 이것이 '시는 번역 불가능한 장르다'라는 단언은 아니다. 번역가 정은귀는 그럼에도 시 번역이 항상 어렵다고 말한다.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그것은 당연하다. 시에는 운율이 있다. 그걸 번역해가면서 살리기에는 한눈에 봐도 쉽지 않다.

시를 번역하는 일에서 창조성은 얼핏 생각하면 충실성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오해되기 쉽다. 물론 번역은 원전 텍스트에 기대는 일이고, 그것을 최대한 충실하게 살리는 것이 번역의 태생적 운명이다.

본문 p. 142

시를 번역하는 건 곧 시인의 창조적 감각을 번역가에게 이입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고작 한 단어를 고르는 데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간이 들어갈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책에는 이외에도 과연 기계가 해내는 번역은 어떤지, 한국문학 번역가의 책무는 무엇인지 등등에 관한 이야기가 뒤를 잇는다. 번역에 관한 책답게 영문 번역도 함께 혼재되어 있으니 영미권 독자들도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문학 번역에 관심이 많거나 번역가가 꿈인 독자들에게 최고의 책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나도 편집자를 꿈꾸는 입장에서 번역가라는 직업에 대한 내적친밀감(!)이 대단한데, 이 직업들은 '잘해야 본전'인 직업이기 때문이다. 번역이든 편집이든 아무리 잘해도 주인공 대우를 받긴 힘들다. 하지만 못하면 바로 티가 나버린다. 그래서 잘해야 본전이다. 그럼에도 이 일을 너무 사랑해서 이 일에 뛰어드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어려운 내용도 아니라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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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신박한 정리 - 한 권으로 정리한 신들의 역사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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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면 어렸을 때 꼭 읽어봤을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으로 익숙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줄글로 더 재미있게 정리했다면 믿겠는가! 개인적으로 이번 미션 책 중 가장 기대했던 책이라 제일 먼저 펼쳐봤고, 펴자마자 단숨에 완독해버린 책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제우스가 신화 속 비현실적 존재에 불과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에겐 절대적 신앙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이는 그에 대한 끊임없는 우상화 작업의 결과였다.

어릴 때야 정말 저런 신들이 존재하겠거니, 하고 읽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신화가 우상화 작업의 결과라는 사실을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이게 된다. 하긴 제우스 같은 난봉꾼이 실제로도 존재했다면...... 글쎄다.

이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맨 처음, 그러니까 카오스 이후 가이아와 타르타로스, 에로스가 생겨난 시점부터 시작한다. 모든 신화의 내용을 자세하게 한 책에서 설명하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우리가 궁금해할 만한 부분을 콕 집어서 자세하고 재미있게 설명해준다.

내 최애였던 신은 아테나였는데, 지혜로운 전쟁의 신이라는 타이틀 자체가 어린 내 눈에 너무 멋있었기 때문이다. 이 아테나의 탄생 설화는 굉장히 신비한데, 대부분이 알고 있듯 제우스의 머리를 쪼개고 나온 것이다. 하지만 저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아테나의 탄생을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제우스는 오케아노스(메티스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크로노스를 내쫓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메티스와 결혼했을 것이다. 이들의 결혼은 두 세력의 정략에 따라 이루어진 것과 같다. 하지만 설화에서는 제우스가 신탁을 두려워한 나머지 임신한 메티스를 자신의 몸속에 가두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결국 제우스가 변심하고 메티스를 어딘가에 가두거나 내쫓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로 유추해볼 때 제우스에게 배신당해 임신한 상태로 쫓겨난 메티스가 홀로 아테나를 낳고, 그 후 성인이 된 아테나가 제우스를 찾아온 것으로 보는 게 현실적으로 합당하다.

이런 식으로 신화를 해석해본 적이 있는가? 아마 대부분은 없을 것이다. 나도 신화를 그냥 받아들이기만 했으니까. 하지만 이 책은 신화 속 인물과 사건을 쉽게 해석해주고 정리해준다. 장담하건대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을 정주행해본 적 있는 독자라면 책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사람들

책 뒷표지에 적혀 있는,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정리해보았다.

  1. 아테나, 헤라클레스, 오이디푸스...... 신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누가 누군지 헷갈리는 사람

  2. 신화 속 일화만 드문드문 떠오르고 신화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힘든 사람

  3. 뻔한 해설 대신 새로운 시각으로 신화를 읽고 싶은 사람

여기에 당연한 소릴 더하자면, 만화책 <그리스 로마 신화>의 광팬이었던 독자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나도 이에 속했고 정말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자신의 최애 신에 대해선 어떤 해석이 나오는지 알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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