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명 '줏대 있는' 여자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소속된 집단에 따라 의견을 정하는 것보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믿고 목소리를 낸다고 말이다. (물론 이것도 남이 보기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다른 사람들도 다 '줏대 있게' 살고 있을까? 위 대목을 읽으며 우리 현시대 사람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명예ㅇㅇ', 'ㅇㅇ호소인'이라는 말을 한번쯤 인터넷에서 접한 적 있을 것이다. 주로 조롱의 의미로 쓰이는 신조어다. 마치 내가 ㅇㅇ이 된 것처럼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의견과 처지에 공감하고, 동질감을 느끼며 내가 그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고 믿는 이들을 말한다.
'명예백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보자. 예컨대, 나는 동양인이지만 '명예백인'이다.
뉴스에서는 한 백인 남성 경찰이 과잉진압으로 흑인 남성을 사살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다음 뉴스에서는 한 흑인 여성이 동양인 여성을 지하철에서 조롱하고 인종차별했다는 내용을 들려준다. 이때 '명예백인'은 뭐라고 이야기할까?
"저것 좀 봐. 흑인들은 자기들이 차별 받는 건 못 참으면서 동양인은 아무렇지 않게 차별해. 저러니까 노예로 살았겠지. 내로남불의 전형이야. 동양인을 차별한 대가라고 생각하라구. 흑인들이 차별 받는 건 정당해."
...라고 이야기할 것이다.(실제로 내가 인터넷 뉴스 댓글에서 본 말들을 종합한 것이다)
실제 백인이 저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명예백인'이라는 게 아니다. '명예백인'의 말에서 중요한 핵심 포인트는 '흑인들이 차별 받는 건 정당해'이다. 동양인으로서 같은 동양인이 인종차별 당했다는 것 자체보다 흑인 차별의 정당화가 더 중요한 거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저 말들이 얼마나 어이없고 비논리적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과잉진압으로 사살된 흑인남성은 동양인을 조롱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당한' 이유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왜냐하면 같은 인종인 사람이 동양인을 차별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위치를 백인과 동일시하면서 흑인 차별을 정당화하는 건 백인들 사이에서도 '폐급' 취급 받을 일이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네이버 뉴스 기사에서, 유튜브 뉴스 댓글에서.
여기서 책 속의 대목을 끌어올 수 있다.
우리는 속하고 싶은 집단에 의거해 확신을 선택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의 확신은 한편으론 속한 집단과 동질감을 느끼고, 한편으로는 타자를 배제하는 데 기여하는 게 아닐까.
'명예백인'들의 '흑인이 차별 받는 건 정당하다.'라는 확신은 백인 집단과 동질감을 느끼고, 타 인종을 배제하는 데 기여한다. 그들이 백인이라는 집단에 속하고 싶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사고방식으로 타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물론 내 말이 완벽하게 맞는 예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독자들이 이해할 거라고 믿는다. 자매품으로 '재벌호소인'이나, '명예일본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