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 과학기술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도나 해러웨이는 1985년, <사이보그 선언>이라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그는 인류 구성원 각자가 기계가 결합하는 사이보그가 되느냐 마느냐는 이제 큰 이슈가 아니며, 우리가 누리는 현대문명 자체가 이미 사이보그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호모사피엔스와 과학기술은 이미 하나로 결합한 거대한 사이보그이며, 21세기로 접어든 현대 인류 문명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의족이나 의수를 달고 일상생활이 가능해진 사람들을 뉴스 기사로 가끕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사이보그 담론에서 주목하는 것은 인공 신체 부품에 AI가 장착되어 있는지의 여부이다.
우리는 <스파이더맨 2>이나 <내가 행복한 이유>라는 소설 등, 꽤 많은 미디어에서 AI와 신체가 결합했을 때의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을 만나고 있다. 특히 <내가 행복한 이유>에서는 두뇌가 인공 부품과 연결됐을 때의 중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물론 불안한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과 AI의 긍정적 결합을 그린 작품으로 <공각기동대>를 들 수 있다. 이 세계 속 캐릭터는 말 그대로 '특이점'에 도달한 인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위 이야기에서 과학적 상상력과 윤리적 상상력을 구분해야 한다. 과연 인간성의 외연이 어디까지 넓어질 것인지를 핵심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미래 인간상을 논의하는 포스트휴먼 담론에서 인간은 더 이상 생물학적 존재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이제 인간은 필요에 따라 신체 일부를, 나아가서는 전부를 교환할 수도 있게 된다.
인간의 사이보그화가 전면적으로 진행된 세상이 언제 본격적으로 펼쳐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상상해보라. 과연 그 미래가 좋기만 할까? 혹은 나쁘기만 할까?
나는 과학기술이 무조건 인간을 중심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의수나 의족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손과 발이 되어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들어줄까. 이렇게 생각하면 이쪽 분야가 더 많이 발전했으면,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AI가 두뇌와 결합한다고 가정해보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든다. 다 떠나서 인간의 두뇌 깊숙이 내재되어 있을 폭력성이나 악함이 AI와 어떤 시너지를 낼지가 가장 무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