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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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의 <열한 계단> /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우연히 두 책을 발견하곤 같이 비교하며 읽으면 재미있겠다 싶어 바로 구매했다.

비교
①두 책은 저자가 살아온 인생과 읽었던 책을 연결하여 인생의 지혜를 들려준다. ②<청춘의 독서>에서는 14권의 책이 등장하고 <열한 계단>에는 책 외에도 철학가와 음악가 등의 이야기가 혼재되어 있다. ③<청춘의 독서>는 ‘유시민 작가의 독후감‘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소개하는 책의 내용에 충실하다. 하지만 그가 설명해주는 뉘앙스를 통해서 어떤 생각을 키우며 살아왔는지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반대로 <열한 계단>은 저자 자신의 내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채사장 일기‘를 읽는 기분이 든다. 이런 느낌은 소개한 책에서도 풍기는데 ④<열한 계단>은 철학, 사상, 인물 저서가 많은 반면에 <청춘의 독서>는 사회과학 저서가 많다. ⑤그런데 두 책에 같이 등장하는 책이 있다. <죄와 벌>과 <공산당 선언>이다. ‘죄와 벌‘은 어렸을 때 읽었던 것 같은데,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어려웠던 기억만 남아있다. 재미있는 점은 두 저자 모두 같은 포인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공산당 선언‘은 각 저자가 설명해주는 내용을 읽다 보니 꼭 읽고 싶어졌다. 사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책을 읽고 싶다. ⑥각 저자가 자신을 표현한 문구가 인상적이다. 채사장은 자신을 ‘지식가게의 사장‘이라고 말했고, 유시민은 ‘지식소매상‘이라고 표현했다. ‘가게‘는 ‘소매점‘이니 결국 두 저자는 ‘지식‘이라는 골목길에 작은 상점을 지키는 주인인 셈이다. 그렇다 두 책 모두 나에게 새로운 지식을 깨우쳐준다.

<청춘의 독서>

#청춘의 독서
3년 전부터였던가? 사회 현상에 관심이 커졌다. 사회의 혼란과 갈등에 관심을 기울일수록 정답을 찾기엔 내 지식의 한계만 실감했다. <청춘의 독서>를 읽고 좋았던 점은 사회과학 분야에 좋은 작품들을 유시민 작가님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소개해 주시는 책의 시대 흐름이나 그 작가에 대한 설명이 함께 서술돼 어려운 사회과학 고전을 좀 더 쉽게 알도록 해주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번역서라도 원서의 내용과 다르면 어떤 점이 다른지도 알려 주었다. 물론 여기에 나온 작가님의 생각이 정답은 아니다. 이 책 마지막에 작가님도 그렇게 적어두셨다. 14권의 책 외에도 다양한 책을 추천해 주신다. 사회, 정치, 언론 등에 관심 많은 독자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한국사
가장 좋았던 점은 14권의 고전과 대한민국의 40년이 ‘유시민‘이라는 고리로 연결되었다는 점이다. 외국의 고전들이 줄줄 소개되지만, 한국사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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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계단 -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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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계단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 세상에 왜 존재하고 있는가? 아주 생뚱맞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롭고도 중요한 질문이다. 난 항상 내 존재의 의미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방향으로 성장해왔다. 그러다 보니 질문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채사장은 그런 점에서 스스로 깨우친 사람이다. 독서를 통해서 말이다. <열한 계단>에서 그가 보여준 자신의 이야기는 공감과 감동과 부러움을 수반한다. ‘이제 난 뭘 할 것인가.‘ ‘독서를 해야지.‘ ‘책을 읽고, 많이 생각하고, 글도 써봐야지.‘ 그의 책을 덮으며 떠올린 생각이다.

바다를 보며 오랜만에 맑은 정신 속에서 생각했다. 수평선의 경계. 선명한 저 경계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경계까지 걸어가면 무엇을 만나게 될까? 고대의 인류는 낭떠러지와 끝도 보이지 않는 절벽을 상상했다고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안다. 어떤 경계에도 닿을 수 없음을. 수면은 모든 곳에서 이어져 있고, 경계라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경계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슬픔이 된다. 경계가 없다는 것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계가 없으면 출구도 없다. 우리는 이 바다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 해수면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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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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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리뷰

#외부세계와_자아의_충돌
현대인들은 지금까지의 인류 중에서 외부 자극이 가장 심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외부에서 말하는 정의나 도덕, 질서가 내 생각과 상충하더라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 고민이 없이 이끌려가고 있지만 그걸 판단할 시간조차 없는 듯하다. 이 소설은 그런 의미에서 개인이 외부 세계와 어떻게 싸워나가며 자신의 자아를 지키는지 잘 표현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는 자신을 둘러싼 외부의 영향들에 수긍하지 않고 고민하는 인물이다. 민족부흥 운동이나 종교문제, 정치문제들은 항상 주인공의 자아와 부딪히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의 부도덕함이나 신의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처지에 놓인 현대인의 모습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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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세계 사회가 만들어 놓은 질서들에 저항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위로가 됐다. 내가 수긍하든 수긍하지 않든 세상은 돌아가겠지만 나라는 존재를 내가 믿기에 삶이 더 빛날 수 있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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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개인적으로 카톨릭에 대한 묘사나 용어들은 다행히 알고 있어서 쉬웠지만, 그 외에 고대 신화나 19, 20세기 철학들 그리고 아일랜드의 시대 상황 등을 미리 알고 봤다면 더 잘 이해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큰 틀에서 주인공의 갈등 상황이나 느낌들은 이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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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알랭 드 보통의 <불안>과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불안에 빠지는 원인을 외부의 불평등에서 보고 분석한 책인데 이 책과 함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읽는다면 현대의 문제와 개인의 저항의식의 흐름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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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불감증 -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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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살인 사건, 정치 비리, 자금 횡령, 파업과 사기 등. 뉴스를 보고 있으면 답답할 때가 많다. 꼭 뉴스가 아니더라도 취업난이나 직장 생활, 성차별, 갑을 관계, 하우스 푸어나 결혼 등 사회생활에서 오는 수많은 고민들과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 붙어 다니고 있음을 느낀다. 모이는 자리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모두가 공감하지만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왜 우리는 이런 난제들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일까? 왜 이렇게 부도덕한 사람과 사건들은 많은 걸까? 왜 민주주의에서 불평등이 계속 존재할까? 그리고 왜 이런 일들은 줄어들지 않고 더 늘어나는 걸까?

<도덕적 불감증>은 사회과학, 정치, 경제, 미디어에 초점을 맞추어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있는 책이다. 소셜 네트워크로 개인화를 넘어 원자화된 사람과 미디어, 정체성을 잃은 국가와 정치, 공포와 무관심으로 단절된 사회 그리고 생명력을 잃어가는 인문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비의 태도
읽으면서 가장 섬뜩했던 이야기는 모든 관계가 ‘소비자‘와 ‘상품‘의 관계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 중 급속히 발전하는 소셜네트워크를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오픈톡으로 누구와도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접근성이 편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 관계는 이야기만 나눌 뿐 우정, 사랑, 충성과 같은 인간적인 유대로 보기 어렵다. 오프라인에서의 관계라면 한 쪽에서 연락을 끊는다고 해서 그 관계가 일시에 무너지진 않는다. 하지만 소셜 네트워크의 세상에선 한쪽의 선택에 따라 그 관계가 바로 끊어질 수 있는 불안정 상태에 놓여있게 된다. 진실함이나 인간적 유대가 사라진 것이다. 저자들은 이것이 ‘소비자‘가 ‘상품‘을 고르는 구조와 닮았다고 이야기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구조는 개인의 관계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인과 국가, 시민과 정치인 사이에서도 나타나며 교수와 대학교와 같은 자본의 논리가 물들지 말아야 할 곳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관료제, 효율과 이익 극대화. 이러한 논리는 기업-소비자의 관계이며 시장의 논리 즉, 자본주의의 논리에서 온 것이다. 효율과 효용 속에서 유대의 가치를 잃고 있다고 그들은 지적한다.

#이마골로기
밀란 쿤데라 <불멸>에 쓰였던 용어. 간단히 말하면 ‘선전선동용 이미지‘를 뜻하며 미디어 시장의 광고와 같다. 대중 매체들은 이 논리를 따라 ‘시청률 싸움‘에만 열을 올리고 정치인들은 ‘정치 연예인‘이라는 새로운 계층으로 둔갑했다. 실체가 없는 이미지만 쫓는 세상. 문제는 우리가 여기에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마골로기에 노출된 사람들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된다. 살인도 더 잔인한 살인 사건이어야 반응하고, 정치 추문도 더 자극적인 추문이어야 반응을 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무감각해진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많은 중요한 사건들을 그렇게 소비한다. 한순간에 넘기도 잊어버린다.

#프레카리아트
불안정한(precarious)과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합성한 말이다. 불안정한 고용 상태의 노동자 계층. 회사의 강제적인 권유나 경기 침체로 인한 퇴사도 있겠지만 경기나 사회적 분위기에 불안해하는 예비 취준생들과 직장을 떠나지 못하는 고령의 구직자까지 모두 아우르는 문제이다. 우리는 일과 생활에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으로 자유경제체제에 있다고 본다. 더 큰 문제는 이 상태가 혁명으로 뒤집힐 여지조차 없어졌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또한 자본주의의 가면을 쓴 민주주의이며 무산계급의 눈과 귀를 유산계급이 막고 있다. 그리고 개인화 원자화로 연대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결국 나약하게 끌려가는 꼴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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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매여 불안과 공포 속에 있는 프레카리아트, 자극적인 기사와 시청률에만 혈안이 된 미디어, 자본가들의 후원으로 정치인이 되는 민주주의의 구조, 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생산적인 공장이 되어버린 대학. 어디에도 이 문제를 타개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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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
저자들은 감수성의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의 문제가 심각한 만큼 이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약해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론 공감도 된다. 기술 문명의 급속한 발전 속에 우리는 점점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잃어가는 중이다. 이전 100년 역사가 급성장했듯 앞으로 한 세대 안에 또 어떤 변화가 다가올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지금보다 더 개인화되고 미흡한 정치와 세상을 장악한 자본주의 속에서 어쩌면 철학적 사고와 감수성만이 우리를 지킬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위의 내용 외에도 많은 고찰과 지적들이 들어가 있는 책이다. 책에 표시도 하고 좋은 부분은 옮겨 쓰기도 하며 몇 번씩 읽어봤지만, 여전히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글이 눈에 띄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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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쓴 한국근대사
강만길 지음 / 창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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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나는 ‘의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일본의 침략에 맞서서 용감히 싸우신 분들. 그분들이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는지 처음으로 자세히 봤던 것 같다. 후반기를 대략 6개월로 잡고 전투 횟수를 생각해보면, 하루에 10번을 싸웠다는 말이다. 전국적으로 여러 조직이 각개전투를 했다는 걸 고려해도 한 집단이 삼시세끼 밥 먹듯이 아니면 하루에 꼭 한 번은 일본과 싸웠다는 뜻인데 이게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이었을까. 나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너무 쉽게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했던과는 달리 전국민이 들고 일어난 대항쟁이었다는 사실에 자랑스러움과 감동을 느꼈다. 비록 결과는 좋지 못했지만 이 정도의 저항정신이라면 우리는 어디서든 살아남을 것이다.


#열강들이 사회진화론
당시 민중을 계몽해야 한다는 계몽운동의 오류를 이 책을 통해 정확히 알게 된 것 같다. 당시의 사람들도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에 경계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사상의 바탕 위에 있는 배움이라면 우리는 철저히 경계했어야 했다. 이걸 깨닫지 못한 자들이 바로 이완용 같은 인간들이다. 열강들의 제국주의 사상에 의해 많은 나라들이 고통을 겪는 역사를 걸었고, 우리도 그릇된 사상으로 나라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던 역사를 만들었다. 앞으로 나도 이런 점을 경계하고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읽겠다고 생각했다.


#국문소설의 발달
한문소설보다 서민층을 대변하는 국문소설의 발달 부분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17세기 말에서 18세기경에 얼마나 많은 소설들이 나왔으면 현재까지도 6백여 종의 작품들이 살아남았을까를 생각하니 가슴 벅찼다. 전에 읽었던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의 <설득>이 1817년 작품이고 그녀의 주요작품들이 대부분 19세기에 쓰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홍길동전(1612) / 구운몽(1687) / 춘향전 (18세기경 판소리형태로 창작)이 그보다 앞선 시기에 쓰였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영국의 문학도 17세기 말부터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고 하는데, 그것과 우리의 문학발전 시기가 다르지 않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책의 유통에서도 방각본(상업적 이윤을 목표로 출간된 소설을 뜻함)이 등장하고 세책집(도서대여점)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조선의 문학 문화가 얼마나 융성했는지 짐작하게 했다.

조선 후기의 소설에는 당시의 야담 · 민담 · 설화 등을 작품화한 것이 많았다. 조선의 역사적 사실들에 근거하여 창작되기도 했지만 그중에는 중국소설의 번안물이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이 시기에 저술된 소설들 가운데 대략 6백여종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것은 다시 소설문학이 풍성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P205)

한일 ‘합방‘이 임박한 1908년에서 1909년 사이에는 의병 참가 인원수가 급증했고 일본군과의 전투 횟수도 많아졌다. 대한제국 정부 경무국의 조사에 의하면 1908년 후반기에만도 의병과 일본군의 접전 횟수는 1900여회나 되었고, 참가 의병 수도 약 8만 3천명에 이르렀다. ‘합방‘ 전해인 1909년 전반기에는 1700여회의 접전에 3만 8천여명이 참가했다.
또한 1906년에서 1911년까지 6년 사이에 일본 경찰을 제외한 정규 일본군과의 접전 횟수만도 2800여회에 이르렀고, 참가 의병의 연인원수는 약 14만명이나 되었다. 해산 당시 대한제국 정부군 총 수가 8800명에 불과했는데 민병인 의병에 참가한 사람의 수는 14만명이나 되었으며, 1907년부터 1909년 사이에 그 가운데 약 5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P288)

1859년 영국 생물학자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한 이후, 이 학설은 곧 사회사상으로 변모했고, 생존경쟁 · 적자생존 · 자연도태에 관한 생물학의 이론이 인간사회에도 적용되기에 이르렀다. (...) 이 시기의 지식인들은 사회진화론을 통해 각 민족이 생존을 경쟁하고 제국주의가 팽배하는 상황에 대한 논리적 설명의 근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사회진화론은 밖으로는 인종주의적 편견과 인종간의 대립을 강조하는 제국주의적 침략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안으로는 민족 내부의 일반 민중을 미개한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일면이 있었다. 이런 논리에 빠진 개화기의 일부 지식인들은 사회진화를 위해 투쟁하는 기본단위를 민족보다 인종 내지 종족에서 찾고자 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과 중국 · 일본 등 세 나라 황인종이 협력하여 백인종과의 투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바로 이런 생각 때문에 사회 진화론은 또 일제 침략의 이론적 도구로 전용되지도 했고, 국내 민중을 약자로만 보거나 계몽의 대상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한 면이 있다. (P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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