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불감증 -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수많은 살인 사건, 정치 비리, 자금 횡령, 파업과 사기 등. 뉴스를 보고 있으면 답답할 때가 많다. 꼭 뉴스가 아니더라도 취업난이나 직장 생활, 성차별, 갑을 관계, 하우스 푸어나 결혼 등 사회생활에서 오는 수많은 고민들과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 붙어 다니고 있음을 느낀다. 모이는 자리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모두가 공감하지만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왜 우리는 이런 난제들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일까? 왜 이렇게 부도덕한 사람과 사건들은 많은 걸까? 왜 민주주의에서 불평등이 계속 존재할까? 그리고 왜 이런 일들은 줄어들지 않고 더 늘어나는 걸까?

<도덕적 불감증>은 사회과학, 정치, 경제, 미디어에 초점을 맞추어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있는 책이다. 소셜 네트워크로 개인화를 넘어 원자화된 사람과 미디어, 정체성을 잃은 국가와 정치, 공포와 무관심으로 단절된 사회 그리고 생명력을 잃어가는 인문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비의 태도
읽으면서 가장 섬뜩했던 이야기는 모든 관계가 ‘소비자‘와 ‘상품‘의 관계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 중 급속히 발전하는 소셜네트워크를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오픈톡으로 누구와도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접근성이 편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 관계는 이야기만 나눌 뿐 우정, 사랑, 충성과 같은 인간적인 유대로 보기 어렵다. 오프라인에서의 관계라면 한 쪽에서 연락을 끊는다고 해서 그 관계가 일시에 무너지진 않는다. 하지만 소셜 네트워크의 세상에선 한쪽의 선택에 따라 그 관계가 바로 끊어질 수 있는 불안정 상태에 놓여있게 된다. 진실함이나 인간적 유대가 사라진 것이다. 저자들은 이것이 ‘소비자‘가 ‘상품‘을 고르는 구조와 닮았다고 이야기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구조는 개인의 관계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인과 국가, 시민과 정치인 사이에서도 나타나며 교수와 대학교와 같은 자본의 논리가 물들지 말아야 할 곳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관료제, 효율과 이익 극대화. 이러한 논리는 기업-소비자의 관계이며 시장의 논리 즉, 자본주의의 논리에서 온 것이다. 효율과 효용 속에서 유대의 가치를 잃고 있다고 그들은 지적한다.

#이마골로기
밀란 쿤데라 <불멸>에 쓰였던 용어. 간단히 말하면 ‘선전선동용 이미지‘를 뜻하며 미디어 시장의 광고와 같다. 대중 매체들은 이 논리를 따라 ‘시청률 싸움‘에만 열을 올리고 정치인들은 ‘정치 연예인‘이라는 새로운 계층으로 둔갑했다. 실체가 없는 이미지만 쫓는 세상. 문제는 우리가 여기에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마골로기에 노출된 사람들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된다. 살인도 더 잔인한 살인 사건이어야 반응하고, 정치 추문도 더 자극적인 추문이어야 반응을 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무감각해진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많은 중요한 사건들을 그렇게 소비한다. 한순간에 넘기도 잊어버린다.

#프레카리아트
불안정한(precarious)과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합성한 말이다. 불안정한 고용 상태의 노동자 계층. 회사의 강제적인 권유나 경기 침체로 인한 퇴사도 있겠지만 경기나 사회적 분위기에 불안해하는 예비 취준생들과 직장을 떠나지 못하는 고령의 구직자까지 모두 아우르는 문제이다. 우리는 일과 생활에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으로 자유경제체제에 있다고 본다. 더 큰 문제는 이 상태가 혁명으로 뒤집힐 여지조차 없어졌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또한 자본주의의 가면을 쓴 민주주의이며 무산계급의 눈과 귀를 유산계급이 막고 있다. 그리고 개인화 원자화로 연대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결국 나약하게 끌려가는 꼴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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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매여 불안과 공포 속에 있는 프레카리아트, 자극적인 기사와 시청률에만 혈안이 된 미디어, 자본가들의 후원으로 정치인이 되는 민주주의의 구조, 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생산적인 공장이 되어버린 대학. 어디에도 이 문제를 타개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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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
저자들은 감수성의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의 문제가 심각한 만큼 이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약해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론 공감도 된다. 기술 문명의 급속한 발전 속에 우리는 점점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잃어가는 중이다. 이전 100년 역사가 급성장했듯 앞으로 한 세대 안에 또 어떤 변화가 다가올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지금보다 더 개인화되고 미흡한 정치와 세상을 장악한 자본주의 속에서 어쩌면 철학적 사고와 감수성만이 우리를 지킬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위의 내용 외에도 많은 고찰과 지적들이 들어가 있는 책이다. 책에 표시도 하고 좋은 부분은 옮겨 쓰기도 하며 몇 번씩 읽어봤지만, 여전히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글이 눈에 띄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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