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난민 - 제10회 권정생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3
표명희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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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난민이 뭐야?

아이가 차장에서 눈을 돌려 해나를 쳐다보았다.

ㅡ글쎄, 일단 어디 먼 데서 온 사람이겠지?

해나는 자신의 대답이 충분치 않음을 아이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ㅡ그러니까, 낯선 곳에 와서는 쉽게 자리 잡지 못하고 떠도는······.

해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ㅡ우리도 난민이야?

아이 목소리가 너무도 진지해 해나는 주춤했다.

ㅡ아냐. 그냥 넌, 민이야. (p.28)




캠프는 다시 고요하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음악 소리도 악기 연습 소리도 사람들 웃음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활기차게 돌아갔던 분위기가 실은, 칙칙한 현실을 잊기 위해 과장되게 행동함으로써 빚어 낸 착시 효과였음을 다들 깨달은 것 같았다. 찬드라 사건은 캠프 식구들 각자 꼭꼭 숨겨 두었던 가슴 속 응어리를 다시 들추어냈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었을 때처럼, 이제는 난민 인정이라는 엄청난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처지라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게다가 실제로 난민 인정을 받는 건 극히 낮은 확률에 불과하다는 냉정한 현실까지 마주한 것 같았다. (p.237)




ㅡ이 지구별 위에서 인간은 이래저래 난민일 수밖에 없어.

털보 선생이 소장의 생각에 동조하듯 받았다.

ㅡ난민 유전자를 나눈 사람들의 미세한 연대로 이루어진 게 인류 아닐까요.

미셸은 특유의 언어 감각으로 덧붙였다.

ㅡ이 난민 캠프야말로 힘든 여행지의 게스트 하우스 같은 곳이지. 누구도 영원히 머물 수는 없다고. 이미 새로운 여행자들이 몰려올 준비를 하고 있거든. (p.279)



공항 근처 섬에 위치한 신도시. 새 아파트만 즐비하고 입주자는 보이지 않아 ‘유령 도시’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이곳에 ‘해나’와 어린아이 ‘민’이 떠돌고 있다. 작가의 시선은 이 두 사람의 정처 없는 일상에서 어느덧 인천 공항으로 향한다. 입국하지 못한 자들이 머무는 곳이자 대한민국 영토에 속하지 못해 ‘유령 공간’이라 불리는 인천 공항 내 송환 대기실.

그 곳에는 피부색도 말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같이 국적을 가지기 위해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채 기약없는 기다림을 이어 가고 있다. 목숨을 걸고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온 뚜앙도 마찬가지. 십중팔구는 그곳에 머물다 자기 나라로 추방된다고 했다.

송환 대기실에 이어 복도 하나 건너에 있는 난민 신청자 대기실. 그 곳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식사와 잠자리부터 달랐다. 송환 대기실이 어느 나라의 영토에도 속하지 못하는, 허공에 붕 뜬 장소였다면 그 곳은 안락한 임시 거주지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법의 보호를 받는 곳.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난민 인정을 받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조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작가는 이 땅에서 태어나 살고 있어도 머물 곳이 없어 이곳 저곳을 떠도는 해나와 민, 그리고 집을 찾아 한국에 왔지만 기다리는 일밖에 할 수 없는 난민들의 처지를 절묘하게 그려내며 한국의 난민 문제를 깊숙히 파고든다. 가문에서 정한 남자와 결혼하지 않아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오빠들로부터 죽임을 당할 뻔한 찬드라와 캄보디아 톤레사프 호수 위에서 나고 자란 보트피플 뚜앙, 독립 운동을 하다 쫓겨온 샤샤네 가족, 아프리카 어느 부족장의 딸로 백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살해 위협을 받아 국경을 두 번이나 넘으며 도망쳐 온 웅가와 미셸 커플까지 이들의 유일한 희망은 난민으로 인정받아 한국에 정착하는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각자가 가진 어둡고 아픈 사연을 품은 채 심사를 거쳐 하나 둘 외국인 지원캠프로 들어오는 사람들. 생활 환경이 쫗다는 것만 빼면 대기실과 마찬가지인 이 곳에서 난민으로 정식 허가가 내려질 때까지 또다시 기약없는 기다림을 이어간다. 처음에는 다들 힘들게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을 감행해 저마다 상처를 떠안은 채로 이 곳까지 온 터라 어수선하고 침묵만이 흐르지만 진소장과 김주임 그리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뿜는 웅가, 미셸 커플의 노력까지 더해져 캠프에도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난민자격을 얻기 위해,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희망을 가지고 긴 기다림의 시간도 마다하지 않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간절함. 누구는 난민으로 인정 받고 누구는 통과가 되지 않아 다시 자기 나라로 되돌아 가야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희망의 끈을 붙들고 최소 삼 개월에서 몇 년이 걸릴수도 있는 기다림의 시간을 이어간다. 가족에게서 주변인들에게서 억울하게 내동댕이쳐졌지만 새로운 곳에서의 삶을 꿈꾸며 한국 땅을 밟은 사람들. 저마다 트라우마로 괴로워하고 서로를 경계하지만 점차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를 보듬고 치유해간다. 기다림 끝에 모두가 행복해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희망을 끈을 끝까지 놓지 않기를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그들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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