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유전자가 온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66
안덕훈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다로 말할 것 같으면 엄마인 피일자 씨와는 달리 꿈이 없다.

왜냐고?

그냥.

이다는 ‘보이스 비 엠비셔스’ 따위의 깨는 소리 하는 인간들을 제일 싫어한다. 꿈이란 걸 가졌다는 인간 치고 제대로 된 인간을 보지 못했다. 우선 엄마인 피일자 씨가 그렇지 않은가. 한때 민중해방의 위대한 꿈을 꾸었던 큰삼촌 피일남 씨의 경우는 또 어떤가? 언젠가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꿈을 위해 온몸에 문신을 새기며 피나는 노력을 그치지 않았던 작은삼촌 피이남 씨 역시 지질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 꿈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살았던 이모 피이자 씨가 자식이 없는 것을 빼곤 가족들 중에서 그나마 제 앞가림을 하고 있는 형편이고 보면 누가 봐도 이다에게  꿈을 꿔라 마라 할 상황은 아니다. 그런 이다가 엄마 피일자 씨의 나머지 꿈을 대신하려니 고역도 이런 고역이 없다. 인문놀이방인지 뭔지 하는 고리타분한 공간에 쭈그리고 앉아 두껍고 지루한 책을 읽고 자신의 삶과는 하등의 상관없는 하품 하는 토론을 해야 하는 이유는 오로지 엄마 피일자 씨가 부족한 지적 욕망을 이다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p.32-3)


며칠 뒤 재개발 제2구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모두들 같은 내용의 우편물을 받아 들었다. 주택 및 토지 소유자 84퍼센트의 동의 절차를 거쳐 재개발 사업이 예정대로 확정 승인 되었으며 시공 회사가 선정되는 대로 신속하게 예정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최후통첩이었다. 제안을 수용하고 정해진 보상금을 받고 떠나든지 아니면 제안을 거절하고 싸움을 감수하든지 둘 중 하나의 선택만이 가능한 게임이었다. (p.179)



밤이 오고 있다. 반석연립은 철거 바람이 휩쓸고 간 동네에 홀로 남아 황량한 언덕을 지키고 있다. 골목마다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제 반석연립은 재개발 제2지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멀리 전철역 주변에서도 언덕 위에 덩그러니 외롭게 남은 반석연립이 보였다. 이다의 방 창문을 열면 온 동네가 내려다보였다. 반석연립이 불을 밝혔다. (p.239)



반석연립 302호에는 공통점이라곤 눈곱만치도 없고 차이점은 산더미인 콩가루 집안 피 씨네가 산다. 어느 날 바람 잘 날 없는 반석연립에 재개발 바람이 불어오고 작은 삼촌, 할머니, 엄마 할 것 없이 재개발 문제를 두고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이젠 아파트처럼 편한 집으로 옮길 때가 됐지.” “이다도 공부방이 필요하고.” 다들 말은 번지르르하며 겉으론 서로를 위하는 척하지만  각자 이기적 계산이 빠르게 회전하며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작가는 이런 어른들의 모습을 고등학생 이다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이다는 인문놀이방에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기적 유전자] [장미의 이름] 등의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재개발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삶의 모습들을 요목조목 다시 살펴보게 된다.

 

이 소설은 서울의 한 재개발 지역을 배경으로 반석연립 세입자들의 모습을 통해 소시민들의 삶을 현실감있게 그려낸다. 반석연립을 비롯한 마을 일대에 꿈틀거리던 재개발 열풍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자 신의 삶을 지키내기 위해 생활터전을 허물어대는 재개발에 맞서는 사람들과 반대로 재개발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준다. 재개발 지역에서 하루라도 빨리 철거작업을 완료해야 하는 재개발 조합으로서는 세입자들을 내보내는 일이 급했다. 이에 조합장은 전문 용역 업체를 불러들여  제시한 배상 금액을 거부하고 버티는 상인들의 합의를 억지로 이끌어냈다. 법이라도 그들을 구제해주면 좋으련만 법은 이미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법은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존재했다. 조합장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건설 대기업이, 그 뒤에는 경찰이, 그 뒤에는 국회의원, 장관 등 건설마피아 세력의 손이 있었다. 힘없는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아무런 힘이 없다. 책을 읽으면서 화가 끓어 오르기도 여러 번 하나같이 이기적인 모습들이지만, 이런 이기적인 인간에게도 이타적 유전자는 있다. 건물을 지어 비싸게 팔기 위해 건물을 사는 아빠와 달리 이다를 돕기 위해 손길을 보태는 진우 그리고 SNS를 통해 그들의 상황을 전해준 예은과 순식간에 이 메세지를 퍼나르기 시작하는 수만 명의 사람들까지 그들의 몸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타적 유전자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2009년 서울시 용산구 남일당 빌딩 옥상을 지켰던 영혼들에게 빚을 갚는 심정으로 <이타적 유전자가 온다>를 썼다고 밝힌 저자. 용산 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