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유물에 있다 - 고고학자, 시공을 넘어 인연을 발굴하는 사람들 아우름 27
강인욱 지음 / 샘터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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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굴한 유적 중에는 약 4000년 전 만들어진 청동기 시대 마을의 공동묘지도 있었다. 이 유적에선 마주 보고 손을 부여잡은 채 누운 모자의 무덤도 발굴됐다. 가족으로 생각되는 어른의 무릎 위에 아이를 올려놓은 무덤도 같은 시기에 나왔다. 수십개의 인골을 발굴하고 수백 개의 인골을 본 나도 서로 부둥켜안은 자세로 묻혀 있는 어머니와 아들 앞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저세상에서까지 자식을 보듬어 안은 어머니와 그 품의 자식, 그리고 그들의 손을 꼭 쥐게 해서 저세상으로 보내야 했던 가족의 슬픔과 고통이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전해졌기 때문이다. (p.17) 

고고학은 파편만 남은 유물을 매개로 과거와의 인연을 잇는 학문이다. 고고학자가 발굴하는 유물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인연의 끈인 셈이다. 고고학자가 발견하는 유물은 크게 의도적으로 묻힌 것과 우연히 버려진 것으로 나뉜다.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의도적으로 묻힌 것의 대표적인 예이다. 저승 가는 사람이 가져가라고 이런 저런 물건을 넣어 준 것을 현대의 고고학자가 다시 꺼내는 것이다. 반면에 집터나 조개무지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은 사람이 살다 버리고 간 집이나 쓰레기장에서 발견되는 유물이다.

이렇든 저렇든 과거 사람들이 사용했던 유물을 고고학자가 다시 찾을 수 있는 확률은 극히 드물다. 임진왜란 때 남해안 일대에서 조선의 수군은 왜군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그 와중에 수배 척의 배들이 침몰했다. 지난 수십 년간 거북선과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찾기 위해 수많은 탐사대가 남해안을 조사했건만 그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생각해 보자. 내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인형이 어딘가에 묻혀 있고, 그것이 수천 년 뒤에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발견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고고학적 유물은 그러한 제로에 가까운 가능성을 뚫고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러니 기적 같은 인연은 사실 영화뿐 아니라 우리가 흔히 보는 유물 모두에 숨어 있는 것이다.

연인들이 주고받는 사소해 보이는 목걸이나 매듭이 인연을 상징하는 이유는 그 속에 수많은 사연과 기억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고고학 유물도 마찬가지다. 작은 토기 조각 하나하나에서 수많은 과거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사소한 인연의 결과는 결코 작지 않다. (p.131-2)

 


실제 고고학을 전공하게 되면 수많은 유물들을 일일이 씻고 기록한 후에 비슷한 것들끼리 모으는 등 엄청난 노력과 끈기가 필요한 작업들이 이어진다. 고고학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찾아오면 나는 가장 먼저 발굴 현장과 유물을 정리하는 연구실로 보낸다. 고고학은 신나는 모험이 아니라 퍼즐을 이어붙이는 끈기의 학문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소한 단어를 찾는 형사들처럼 고고학자들은 흙구덩이를 비롯한 수많은 발굴 현장에서 토기편들을 찾아내고 있다.(p.139)



상처 입은 조개가 진주를 만든다는 속담이 있다. 고고학도 그러하다. 과거의 유적이 파괴되어 우리에게 그 속살을 보여 줄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인들의 모습을 알게 된다. 지금도 고고학 현장에서는 사소한 증거 하나라도 잃지 않기 위해 사진을 찍고 도면을 그리며, 체질을 해서 흘러나갈 수 있는 유물을 건져 올린다. 하지만 그 상처를 당연시하고 발굴에만 급급하게 된다면 우리 후세들에게 물려 줄 매장 문화재는 더 이상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p.144)





이 책은 흥미로운 물음들로 시작된다. 여러분도 잘 아는 모 록그룹 리드싱어가 조로아스터교가 낳은 최고의 인물이라는 것을 아는지? 최초의 꼬치구이는 언제 누가 먹었을까? 칫솔을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은 누구일까? 흙수저는 무려 신석기 시대에도 있었다? 알타이에는 정말 카펫 옮기는 날이 있을까? 프르제발스키말이라는 요란한 말 이름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그리고 그 물음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예기치 못한 이야기들, 그 이야기를 빚어낸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그 사람들의 모습에는 지금 우리의 고민과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람들은 흔히 고고학이라고 하면 황금을 찾는 보물찾기로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고고학 전공이 있는 대학이 많지 않아 실제 고고학자를 보기가 쉽지 않기에, 대신 영화 속 신나는 모험을 하는 주인공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땅속에서 산산 조각난 토기 조각을 닦고 맞추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이처럼 실제 고고학은 사소한 유물속에서 끈기 있게 과거와의 인연을 찾아내는, 모험심보다는 역사에 대한 탐구와 끈기가 필요한 직업이다.​ 전시실 구석에 초라하게 있는 토기 한 점이라도 그 뒤에는 그 위치를 세심하게 기록하고 연구실로 가져온 후에 흙을 제거하고 일일이 조각을 맞추어서 하나의 그릇으로 복원한 고고학자의 끈기와 노력이 숨어 있다.

고고학의 목적은 황금이 아니며, 다양한 시간과 공간속에서 살았던 과거 사람의 모습을 밝히는 인문학이다. 거대한 건축물의 화려함이 아니라 건물을 만들고 살았던 사람들을 공부하며 자그마한 유물에서 과거와의 인연을 찾고, 또 그 속에서 과거의 사람을 찾아낸다. 발굴장에 가면 고고학자들은 황금도, 제대로 된 유물도 없는 흙 속에서 잔손질을 하면서 유물을 찾고 있다. 바로 그 한 손길 한 손길이 과거와 우리를 잇는 인연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고고학자가 오래된 무덤에서 발견하는 것은 대부분 말라비틀어진 뼛조각, 토기 몇 편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무덤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던 과거 사람의 슬픔, 그리고 사랑이 깃들어 있다. 수천 년간 땅속에 묻혀 있던 유물 속에서 그 사랑의 흔적을 밝혀낸다는 점에서,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옛사람과 소통한다는 점에서 고고학이란 행복하고도 흥미진진한 작업이 아닐까.

찬란한 황금에 혹하지 않고 사소한 토기의 조그마한 변화에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고고학이라는 분야가 소박하게 보여질수도 있지만 실제 발굴 작업에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와 유물 하나 하나에 숨겨진 이야기는 우리의 호기심을 한층 더 끌어올리며 고고학의 인간적인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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