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의 빛을 따라서 아우름 30
엄정순 지음 / 샘터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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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시각적 표현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있을까?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인데 이들도 우리와 같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 왜 놀라운 발견처럼 느껴졌을까? 나는 시각장애의 세계에 대해 편견이 있고 잘 모르는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나뿐 아니라 우리 대부분은 그 세계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앞이 안보이는 이들이 어떻게 이미지를 만들게 될지 궁금했다. 궁금한 이가 나뿐만은 아니었다. 그들고 그리기와 만들기로 하는 시각적 표현에 관심이 있지만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서 주저한다. 그들과 미술 수업을 하면서 앞이 안 보이는 이들이 대체적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말로 하는 소통에 의존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시각의 부재로 예민해진 다른 감각으로 몸에 저장한 기억과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을 어휘로 잘 풀어 놓는다. 처음에는 그들의 저장고에 무엇이 어떻게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곳에 다가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질문뿐이었다. 나의 질문은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맘껏 하도록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그들의 질문 또한 나의 마음에 파문을 던진다. (p.58-9)



나의 상상이 맞든 틀리든 그것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이렇게 얼굴을 본 적이 있었던가! 시각 중심의 세계에 익숙한 나에게 시각 외 다른 감각들의 세계가 던지는 질문은 충격이었다. 그들의 거침없는 호기심은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의심하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들을 흔들어 놓고 다시금 보게 하는 설렘을 안겨 주었다. 또한 이들의 궁금함은 보는 것을 믿고 그것에 안심하고 있는 우리가 미처 가져 보지 못한 어떤 것, 그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휩싸이게 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엉뚱함이라고 일축하기에는 무척 창의적이고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자꾸 생각이 났다. 사소한 것도 궁금해하고 감탄하는 그들의 멋진 질문들. 그래서 예술가로서 같이 궁금해하고 그 호기심의 답을 찾아 보기로 했다. (p.57)


나는 진정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앞이 안 보여서 기본의 코끼리 이미지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감각에 충실해서 만든 아이들의 코끼리 작품은 거꾸로 코끼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상상하게 만들어 주었다. 동시에 ‘시각장애가 시각적 표현을 하는 데 정말 치명적인 결함인가’ 하고 기존 생각에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가짜 코끼리를 만져 보고도 이런 창의력이 나왔을까?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작업 없이 가능한 일일까? 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선사해 주고 싶었던 건 이런 게 아닐까?

나는 시각장애의 세계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게 많지만, 아이들과 작업을 하면서 앞이 안 보인다는 것이 단지 결핍이나 무능력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p.146-7)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인문교양 시리즈 아우름 서른 번째 주제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화가인 저자는 어릴 때부터 참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20년 전 저자는 한 프로젝트를 계기로 시각장애의 세계를 만나게 되었고 본다는 것에 관한 질문을 품고 작업하고 있던 저자에게 시각장애의 세계는 좀 다르게 보였다. 시각이 너무 중요한 감각이라서 시각이 부재한 아이들이 오히려 귀하게 보였던 것이다.

시각예술과 시각장애의 세계는 겉으로는 전혀 다른 세계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서로 무관하지 않고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교감할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어렴풋한 느낌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안 보이는 사람과 미술 작업이라니? 무모하다. 쓸데없는 짓이다. 뜬구름 잡는다 등이 주변의 한결 같은 반응이었다. 지금껏 이런 작업이 없었기에 그러한 반응도 당연한 것이었다. 저자는 이 프로젝트가 정말 쓸데없고 무모한 짓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인류가 갖고 있는 오래된 우화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모티브로 한 아트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이는 우화 속에서 코끼리 만지기로 비유되는 ‘보다’에 대한 의문을 미술로 질문하는 것이다. 우화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가 본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는 앞이 안 보이는 아이들이 지상에서 가장 큰 동물 코끼리를 만져 보고 이미지로 만드는 세계 최초의 시각예술과 시각장애와 코끼리의 콜라보 프로젝트이다.


예술가로서 이들과 하는 작업은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정신 차리고 다시 하게 만들었다. 너무 익숙해져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 물음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것이 무엇인지 저자는 모르고 있었고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앞이 안보이는 아이들과 미술 작업을 하면서 이제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질문들이 생겨났다. 안 보인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학문적 상상과 업적들은 실제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는 아무 연관도 없는 것인가? 장애는 과연 뭘까? 인간은 이미지 없이도 살 수 있나? 우리는 이미지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 이미지에 약한 이들은 어떻게 존재감을 가질까? 안 보이는데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하나의 감각이 약하면 다른 감각들이 그것을 보완해 준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일까? 안 보이는 이들도 꿈을 꾸나? 그렇다면 우리는 영화를 보듯이  꿈을 바라보지만 이들은 어떻게 꿈을 보나?

이들도 늘 본다고 말한다. ‘먹어 본다, 입어 보았다, 만져 보다······.’ 그런데 어떻게 보는 걸까?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그녀의 질문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그럼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도데체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일상에서 별로 생각해 볼 기회가 없던 ‘보다’라는 것에 대해 시각장애 아동의 미술 수업이라는 낯선 상황을 통해 돌아보게 된다.
안 보이는 아이들의 미술 수업은 질문 수업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반짝인다는 건 어떤 거예요? 선생님은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누구 보고는 예쁘다고 하고 누구는 밉다고 하는데 왜 그런 거예요? 바람도 찍을 수 있나요? 동물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나요?

보이지 않아서 궁금한 것이 많은 아이들의 질문은 타성에 굳어 있던 우리의 머리와 가슴을 거세게 뒤흔들며, 너무나 익숙해서 조금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본다는 것’에 대해 새롭게 돌아보게 만든다. 앞이 잘 보이는 사람이든 희미하게 보이는 사람이든 뿌연 분홍색으로만 보이는 사람이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며, 그 마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른다.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당연한 듯 내 눈 앞에 보여지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만 익숙해져 있다 보니 내가 보는 방식, 내게 익숙한 세상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이 던진 질문은 틀에 박혀 있던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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