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야스, 에도를 세우다
가도이 요시노부 지음, 임경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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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에도의 모습이네.”
회색빛 땅.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에도성의 동쪽과 남쪽은 바다다. 지금은 간조 때라 백사장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그곳에 대나무 막대기 수십 개가 꽂혀 있었다. 막대기에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거나 그곳에 붙은 해초류를 채취하는 듯했다. 어쨌든 연안 곳곳에 초가지붕의 민가가 쓸쓸하게 모여 있는 것을 보면 어촌이 분명했다.

서쪽은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북쪽은 조망이 괜찬은 편이었다. 초록색으로 물든 고지대를 따라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는 농가들이 유일하게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었다.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백 가구나 될까. 기껏해야 칠팔십 가구 정도 있어 보인다. 슨푸나 오다와라의 조카마치와 비교하면 오륙백 년 정도 발달이 멈춘 고대의 마을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이곳을 오사카처럼 만들고 싶네.”

이에야스가 터무니없는 마을 했다.
가신들은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한 묘한 표정을 지었다. 무한한 자원이 모여 있고 수십만 명이 살고 있기에 자연스레
온갖 최신 기술과 문물이 모인 히데요시 정권의 사실상 수도. 세계에서 으뜸가는 국제 도시. 그런 오사카를 목표로 삼다니,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 아닌가.’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p.16-7)

 

 


 

​‘내 도시다.’

이에야스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동쪽으로 나 있는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다음에는 남쪽, 다음에는 북쪽, 통로를 빙 돌면서 몇 번이고 동서남북을 둘러보며 경치를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무수한 지명을 뇌리에 되새겼다. 이에야스에게는 그 지명들 전부가 몸에 착착 붙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도시’

간다의 산을 허물어 바다를 메운 히비야. 주화 공장의 희고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니혼바시의 긴자와 긴자. 혼고와 아타고 아래의 정연한 무가 저택. 저 멀리 나나이노이케에서 끌어온 상수도가 바깥 해자와 입체 교차하는 스이도바시. 그곳을 지나 성 안으로 끌어온 청렬한 물은 지금도 인부들의 갈증을 해소해주고 있을 것이다.

다시 앞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기타하네바시몬 주위의 석벽이 꽤 올라가 있었다. 뒷문이므로 대공사일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에도에서 숨을 쉬고 있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뜨거운 열기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해도 잘해온 것 같군.”

에도에 들어올 당시만 해도 허름한 성과 얼마 안 되는 어민밖에 없던 한촌이 지금은 거대한 개발 현장이 되어 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에도는 영원히 공사 중일 것이고 성장을 멈추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도시가 있는 한 망치소리가 나고 도로가 정비되고 바다가 메워질 것이다.

이에야스는 벅찬 감동을 느꼈다.

뜨거운 뭔가가 눈가에서 흘러내렸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겼을 때도 흘리지 않던 눈물이다.​ (p.360-1)


260년간 지속된 일본 최고 계획도시의 비밀!

지금의 도쿄를 있게 한 에도 막부 탄생의 순간
일본 역사상 최대의경천동지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전국시대의 대혼란기, 불모지에 스스로 발을 디딘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남들은 은퇴를 생각하는 늦은 나이에 그는 황폐하기 그지없는 땅을 바라보며 새 시대를 꿈꿨다.
이야기는 덴쇼 18년(1590) 여름, 소슈 이시가키산 정상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서 호조 가문의 옛 영지를 양도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오다와라 정벌의 공로에 보답하고자 이에야스에게 호도 가문의 영지였던 간토 여덟 개 지역을 주려고 하는 히데요시. 간토 8주를 받기만 하는 거라면 상관없겠지만 그 대신 지금의 영지를 전부 내놓아야 했기에 
즉석에서 대답하기 어려웠던 이에야스는 일단 슨푸성으로 돌아가 가신들과 상의를 하는데 가신들은 하나같이 맹렬히 반대했다. 그 이유인즉 표면상으로는 오다가와 정벌의 공로에 보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주님을 기존의 영지에서 몰아내려는 것이 진짜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에야스는 영지 교체 명령을 받아들이고 오다와라성이 함락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은 8월 초하루, 가신들을 거느리고 처음으로 에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에도성을 보자마자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형편없는 모습에 실망하는 이에야스. 그런 그의 앞에서 가신들은 성주님이 머물기에 이 성은 적당하지 않다며 서로 앞다투어 성의 공사를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하는데 이에야스는 그런 그들을 타이르며 혼마루에 올라 눈 앞에 펼쳐진 풍경 앞에서 이 곳을 오사카처럼 만들고 싶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되돌아보면 모든 것의 시작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한마디였다. “이에야스 그대에게는 간토 8주를 주겠네. 그 대신 현재 영지인 도카이 다섯 개 지역을 전부 내놓게.” 순수한 호의인 것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지만 그 말은 비옥한 땅과 수렁을 교환하자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가신들은 하나같이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에야스 자신도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기도 했지만 결국 영지 교체를 받아들인 것은, 간토에는 무궁한 발전의 여지가 있다는 그의 직감 때문이었다. 무궁한 발전의 여지가 있는 땅!

일본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과 쌀과 흙과 돈을 투입한 거대한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어찌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지만 그 결과는 대단했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가 준 ‘버린 땅’에서 도네 강의 흐름을 동쪽으로 돌려 비옥한 대지를 창출하고, 화폐 주조라는 일을 통해 에도의 환율을 조절하고 무사시노의 맑은 물을 에도 시내로 끌어오는 일, 최고의 에도 성을 쌓기 위한 노력 등 거대 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네 가지 대사업을 천천히 진행한 결과 에도에 들어올 당시만 해도 허름한 성과 얼마 안되는 어민밖에 없던 한촌이 지금은 거대한 개발현장이 되어 있었다.

​책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생각보다 이에야스의 등장이 드물다. 대신 그를 주축으로 1장에서 5장에 이르기까지, 각 장에서는 연령과 성격이 다양한 여러 기술자들이 등장한다. ‘제1화 강줄기를 바꾸다’에서는 겁쟁이라 놀림을 당하던 관리 ‘이나 다다쓰구’가 습지 대책을 위해 도네 강을 총괄하고, ‘제2화 화폐를 주조하다’에서는 야심이 가득한 젊은이 ‘하시모토 쇼자부로’가 화폐 주조를 이룩했으며, ‘제3화 식수를 끌어오다’에서는 식수를 끌어오기 위한 세 장인들의 우정이 드러나기도 하고 ‘제4화 석벽을 쌓다’에서는 채석업자의 생애가 옅은 비애와 함께 그려진다. 그들의 모습은 에도 사람들이라고 하기보다 오히려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기술자들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장인들의 한걸음 뒤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었다. 그의 업적은 대단했다. 척박한 땅을 비옥한 땅으로 만들고 일본 역사상 최초로 화폐에서 천하통일을 달성, 저습지뿐이라 양질의 지하수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는데 상하수도 공사를 통해, 다른 곳에서는 물이 필요하면 멀리 뜨러 가거나 물장수에게 값비싼 돈을 주고 사야 했지만 에도에서는 거꾸로 물이 알아서 와주었다.  

저자는 에도 막부 건설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숨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려준다. 작가의 안내를 따라 관동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강줄기를 바꾸는 대공사, 수도 시설을 위한 놀라운 기술력, 성벽을 제대로 쌓기 위한 노력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직접 공사를 진행했던 이들과 마주하게 되고, 장인들의 마음가짐에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에 마침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장대한 계획과 흰 천수각을 고집했던 이유가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찡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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