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
로런 그로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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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카라반에서 태어났단다. 에이브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가 핸디를 따라다니며 영혼의 양식을 구하던 때였지. 많아야 스물서넛 정도밖에 없었어. 우리는 콘서트에 가고, 공연이 끝난 뒤에도 남아서 모임에 참석했어. 우리가 가는 곳 어디에나 공동체들이 있었어. 성공적인 곳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곳도 있었지. 유르트와 지오데식 돔, 아메리카 원주민식 한증막, 무단으로 점거한 도심의 주택들. 다들 이런저런 방식으로 뭔가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색다른 거였어. 순수한 것. 대지 위에서의 삶이 아니라 대지와 더불어 사는 삶. 우리의 사랑이 세상을 밝히는 횃불이 되게 하는 것이었지. (p.29)

 


때로 세상은 비트에게 너무 벅차다. 너무 많은 두려움과 아름다움으로 가득차 있다. 매일 그는 새로운 놀라움에 짓눌려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우주가 불가능한 속도로 파동을 일으키며 밖으로 팽창한다. 비트는 우주가 무를 향해 회전해나가는 것을 느낀다. 아르카디아 너머에는 그가 꿈꾸었던 것들이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다. 박물관, 철탑, 수영장, 동물원, 극장, 신기한 생명체로 가득한 바다.
그는 바깥세상에 대한 그의 이해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내용이고 걸러진 것들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의 귀에 들어온 것들, 사람들이 가지고 들어온 이야기, 그가 읽은 이야기들이다. 그가 아장아장 걷던 시절 자유민들이 이곳에 도착한 이후, 그는 아르카디아를 단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숲 끝자락에 있는 베르다의 오두막이나 조그만 섬 하나를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수송팀이 그에게 서머턴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한 적도 있었고 해나와 함께 시러큐스의 대학 도서관에 갈 기회도 있었지만, 그는 매번 거절했다. 그는 바깥세상이 겁난다. 바깥세상이 그가 상상하는 전부일까봐, 혹은 상상과는 전혀 다를까봐.(p.151-2)

소설 아르카디아는 1970년대 미국 뉴욕주에 건설된 가상의 공동체 아르카디아와 그곳에서 최초로 태어난 새 생명 꼬마 비트의 이야기다. 다섯 살 난 어린 비트의 시선으로 바라본 아르카디아의 시작과 그의 부모를 비롯한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향하는 삶을 실천하려 애쓰며 살아가는 모습, 십대 소년이 된 비트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과도하게 비대해진 공동체 내부의 갈등과 쇠락, 그 속에서 그가 성장통과 사랑, 그리고 공동체가 와해되고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사진작가 비트가 그의 딸 그레테와 함께 살아내야 하는 뉴욕이라는 현실 세계, 뿔뿔이 흩어진 공동체 사람들의 삶. 그 모든 이야기가 오십 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펼쳐진다. 후반부에 이르면 소설을 발표할 당시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인 2018년의 암울한 세계, 지구 온난화로 인한 각종 자연재해와 유행성 전염병으로 종말이 가까운 디스토피아가 눈 앞에 펼쳐진다.

계속되는 가난과 굶주림, 마약, 범죄, 내부의 갈등과 반목. 그들의 이상향은 가출 청소년들과 마약중독자들과 범죄자들의 피난처로 바뀌어간다. 결국 아르카디아는 크고 작은 사건을 거치며 와해되어 버리고, 비트는 평생을 함께한 사람들과 이별하게 된다.

바깥세상에 적응해 중년의 남자가 되어버린 비트. 그는 그의 첫사랑 아름다운 헬레와의 사이에서 사랑스러운 딸을 얻지만, 어느 날 산책을 나간 헬레는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에게 있어 삶의 유일한 기쁨은 딸 그레테뿐이었다. 비트의 삶에서 아르카디아와의 이별은 잇따른 상실의 시작에 불과했다. 소설 속 2018년에 세상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으로 공포로 물들고 루게릭병을 앓는 해나와 딸 그레테를 데리고 비트는 어린 시절 떠났던 아르카디아로 돌아간다.


읽는 순간 매료되어 실제로 그 곳이 존재한다면 꼭 한 번 가보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롭게 그려지는 아르카디아. 그 곳에서 태어나 평생 동안 쌓인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한 기억의 공간은, 평생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 다시 찾아갈 수 있는 최후의 낙원이 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티끌만큼 작은 소년이었던 비트. 그는 태어나고 자라온 고향을 잃고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가족을 하나둘 떠나보내지만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보란듯이 그의 앞에 주어진 운명에 묵묵히 나아갈 뿐.

그렇게 비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 다시 돌아간 아르카디아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작지만 어쩌면 삶을 지탱해줄 작고 고요한 희망을 발견하고 진심을 다해 또 다른 아르카디아의 삶을 살아간다.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유토피아처럼 아르카디아도 도달하지 못한 이상향이었던 걸까? 아르카디아에 모인 그들 모두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진심으로 행복해지려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비록 만들어지진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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