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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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2일.

지리산에서 함께 별을 보던 날로부터 931일째 되던 날, 수정은 살해당했다.

열여섯 살의 나이였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지.

우진의 인생에서도 가장 어둡고 긴 밤이었다.(p.38)



딸 수정이 죽은 뒤 그의 세상도 함께 죽었다.

평범하지만 부족함 없던 일상이었다. 사소한 행복으로 채워진 완전하던 세상이 한순간에 박살나버렸다. 수정이 죽은 뒤, 충격으로 쓰러져 식음을 전폐하던 아내를 부축하고 간병하며 간신히 버티고 살았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무릎을 꺾고 있었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았다. 머리 한편에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 계속 맴돌았다.

겉모습은 멀쩡해도 안으로 무섭게 썩어 들어갔다. 생기라고는 사라져버린 고사목처럼 먼지만 푸석이는 빈껍데기로 몇 년을 살아왔다. 그렇게 쩍쩍 갈라져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그의 마음에 또다시 붉은 피가, 아내의 피가 부려졌다.

가족이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상처가 생기고, 그 상처가 아물어 딱지가 앉고, 시간이 지나면 희미한 흔적으로 남는, 언젠가 치유될 수 있는 아픔이 아니다.

몇십 년을 함께 사는 동안 만들어진 익숙한 일상들이 파괴되어 다시는 복구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늘 마주했던 시간의 익숙함은 이제 가족이 없는 일상을 겪으면서 매 시간 그 ‘부재의 자리’를 확인하는 악몽으로 바뀐다. 매일 함께해 온 시간과 일상의 습관들이 오히려 고통으로 다가온다.(p.45-6) 

사람들은 생각한다.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고.

그러면 잘못된 일들을 바꿀 수 있을 것처럼.

하지만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야 모든 것이 전과 같아질까?

잘못된 길로 가기 시작했다고 느끼는 그 순간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한다고 결과가 달라질까? 어느 때로 돌아가든 답은 같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p.377)

 

 

 

안정적인 문장력과 탄탄한 구성으로 흡입력 넘치는 서스펜스로 ‘추리의 여왕’이라 불렸던 서미애 작가님답게 역시 처음부터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보다 더 어떻게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까.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청소년범죄와 마주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는 사건이기도 하거니와 너무 현실감있게 다뤄지는 까닭에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이게 소설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하나밖에 없는 딸 아이 수정이 죽고 난 뒤 우진은 매일매일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 살았다. 오려내듯 딸만 사라진 일상 속에서 그 아픔을 이기는 방법이라고는 자신을 고통에 몰아넣거나 화석처럼 굳어져 무감각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우진이 수정을 저 세상에 보내고도 살아 있었던 것은 아내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있어 그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도 놓치고 아내도 떠나보내고 이제 이 땅에 우진이 지키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전해진 편지 한 통. “진범은 따로 있다.”는 단 한 줄의 메모는 절망에 빠져 아내와 아이가 있는 곳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그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다.


우진이 진범을 찾아내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 치부가 드러날수록 미치도록 화가 끓어오른다. 부모들은 자식이 사고를 쳐서 경찰의 연락을 받고 왔는데도 자기 자식의 허물을 보기보다는 나쁜 친구가 아니었으면 내 자식은 절대 이런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맹신하고 있다. 자기 자식 귀한 줄은 알면서 왜 남의 자식 귀한 줄은 모르는 것인지.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아이들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는 부모들은 자식의 잘못을 탓하기 보다는 하나같이 그 일로 자식들의 앞길이 막힐까싶어 어떻게 해서든 무마시켜보고자 자신의 부와 권력을 휘두르기 바쁘다. 그 결과 사람이 죽은 사건인데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은 고작 봉사활동 150시간 선고받고 훈방 조치되었다. 이런 걸 보면 법이라는게 공평해야 되는데 공평한 것 같지도 않다. 우진은 딸을 잃고 지옥같은 삶을 살아왔는데 그렇게 풀려난 그들은 아무일 없다는 듯이 잘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반성하고 뉘우쳐야 함이 마땅하나 오히려 그들은 자기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정말 인간같지도 않은 그들의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쁜 짓을 한 놈은 따로 있는데 정작 마음의 짐을 지고 밤마다 잠을 못 이루는 것은 엉뚱한 사람이다.


딸과 아내를 잃은 우진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한 상태에서 오로지 하나만을 위해 분투한다.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야하는가? 그가 찾는 것은 진범이 아닌 진실이다. 가슴에 묻어둔 딸의 살인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자 진실을 외면하고 침묵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모두 한 가지 사건에 얽혀있지만 그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자식의 앞가림을 위해, 자신의 가족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 때문에.

 


​이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도 심각하게 다뤄지고 있는 청소년 범죄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청소년범죄를 이렇게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괜찮을까. 최근들어 날이 갈수록 청소년범죄는 그 빈도가 잦아지고 있으며 덩달아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아이들이 멋모르고 저지른 일이라 생각하고 넘어갔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갈수록 청소년범죄가 흉악해지고 그로 인해 피해도 그 만큼 커지고 있기에 소년법을 개정하거나 아니면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끊임없는 국민들의 청원으로 미미하게나마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한참이나 부족하다. 책을 보면서 느끼지만 아직 온전히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이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결코 가벼이 다뤄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처벌이 약하기 때문에 법을 우습게 알고 범죄가 계속되지 않는가. 오히려 처벌을 강화하여 자신이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느끼고 반성하게끔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가족을 잃는다는 것. 그리고 그 빈자리를 매 순간 확인하며 살아가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책을 덮고 나서도 한 동안 그 속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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