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 - 장애. 비장애 커플의 예측불가 유럽 배낭여행
박윤영.채준우 지음 / 뜨인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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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도 모른 채 뼈가 셀수 없이 부러져 어렸을 때 부터 일 년 열두 달 깁스를 하고, 온 종일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윤영씨. 열여섯이 되어서야 자신의 장애가 뼈가 약해 어디든 쉽게 골절되는 골형성부전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언젠가는 꼭 멀리 떠나보고 싶었다. 그러다 스물세 살이 되던 해에 그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졌고 부모님의 걱정 어린 반대에도 혼자 서울에 올라와 자립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신나서 이곳저곳 돌아다녔지만, 이내 그것도 조금씩 지쳐갔고 꽤 만족적인 삶이었음에도 어쩐지 외로웠다. 그 때 나타난 문제의 남자 준우. “나, 누나가 좋아.” 수줍은 그의 고백에 둘은 연인이 되었고 두 손을 꼭 잡은 채 함께 여행을 떠났다. 그와 함께라면 어디든 좋았다. 그러나 불안했다. 차가 없어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여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는 윤영씨에게 갈 수 있는 곳보다 갈 수 없는 곳이 더 많았다. 어느 날 문득 ‘지금이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이 스쳤고, 오늘을 놓치면 지구 반대편에 발 한번 디뎌보지 못한 채 관 속에 들어가 버릴 것 같아 하루라도 서둘러 떠나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결심을 알리자 한치 망설임도 없이 당연히 함께 하겠다는 준우. 그렇게 그들은 45일간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수많은 여행책이 나와 있지만 그 중에서 휠체어 여행자를 위한 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낯선 여행지 앞에서 누구라도 두려움이 들기 마련인데 이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어떠한 정보도 없이 우선 떠나보기로 한다. 

길이나 숫자는 기가 막히게 잘 외우지만 ​여행을 떠나는 당일 여권과 돈을 집에 두고 나올 정도로 개인 물품을 시도 때도 없이 잃어버리는 준우와 매사 꼼꼼한 척하지만 오른쪽과 왼쪽도 헷갈리는 지독한 길치인 윤영. 허점이 많은 만큼 이들의 여행은 수월하지 않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까지 5개국을 이들이 무사히 잘 여행 할 수 있을까? 책을 읽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 누구에게나 여행은 막막하다. 하지만 특히 장애인의 여행에는 변수가 상당히 많다. 몸이 불편한 윤영씨 역시 마찬가지. 어디를 가든 전동 휠체어를 타야만 하기 때문에 이동 수단과 여행지 그리고 숙박 등 하나에서 열까지 제약이 상당히 많았다. 그 중 숙소는 이들에게 정말 큰 고민거리였다. 방까지는 아니더라도 충전도 하고 도난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어야 했고, 또 식비를 아끼기 위해 부엌이 있는 호스텔을 선택해야했다. 하지만 구조와 옵션, 위치 등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가격이 저렴하면 관광지가 너무 멀었고, 입구가 말끔해도 내부 계단이 있거나 엘리베이터가 계단 위에 있는 곳도 허다했다. 남들에겐 별거 아닌 편의 시설이 그녀에겐 너무나 어려웠다.

연인과 함께 하기 위해 애쓰는 준영에게도 역시나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연인 윤영씨만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윤영씨 때문에 자신이 보지 못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녀와 함께 볼 수 없음을 더 안타까워하고 힘들어한다. 자신의 불편보다 윤영이 더 불편할까 멀리 돌아가는 길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앞장을 서서 그녀를 이끌었다.





여행 끝에서 붉게 타들어가던 아련한 감정이 다시 냉정한 현실로 돌아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이것이 바로 장애인 여행의 현실이었지!’

이해를 구해야 하고, 수많은 설명을 거듭해야 했으며, 순전히 직원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여정이 좌지우지됐다. 불안하다. 불안하고 또 불안해서 피곤한 여정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자주 부딪쳐야 하는 멈출 수 없는 길이다.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타거나 지팡이를 짚거나 호흡기를 차고 있거나, 우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그것이 더 이상 생경한 모습으로 여겨지지 않을 때까지 우린 떠나야한다. (p.252)


이 책은 그들의 솔직담백한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자, 동시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을 위한 여행 안내서이다. 전동 휠체어를 비행기에 실을 때 왜 미리 찍어두어야 하는지, 런던에서는 왜 지하철보다 버스가 편한지 등 어느 책에서도 다루지 않은 휠체어 여행자들을 위한 정보가 아주 상세히 적혀있다. 떠나고 싶지만 자신의 장애 때문에 쉽사리 시도해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한줄기 희망이 되어주지 않을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다양한 모습의 사랑이 있다. 이들처럼.

물리적 제약까지 함께 공유하며 서로를 배려하고 여행하는 동안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은 또 다시 사랑에 빠져버렸다. 장애인 여행의 현실은 생각처럼 만만치 않다. 우리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들은 당연히 누리는 삶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어려웠다. 그래서 많이 속상했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하는 권리임에도 소수 또는 약자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누리지 못하고 눈치를 보며 포기하고 상처를 받는 모습들이 말이다.

그들의 삶을 잠시나마 엿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들이 수근거림이 그들에게는 부담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것을 왜 미쳐 깨닫지 못했던걸까. 우리가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봐서 그렇지 이들도 평범한 커플과 다름이 없었다. 몸이 불편해서 휠체어를 탄다는 것은 제외하고는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기도하고 어느 커플처럼 사소한 문제로 싸우기도 하는 등 우리와 똑같았다. 이들이 진정 바랬던 것은 장애인이라서 받는 무조건적인 배려가 아니었다. 사회구성원으로 당연히 누려야하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그저 평범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유럽인들을 보면서 그들보다 많이 누리고 있음에도 그들을 배려하지 못한 내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다. 변해야 할 것은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말과 행동이 아닐지 이 책으로 장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으면 좋겠다. 곤란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많은 사람일수록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많은 용기와 힘이 필요하다. 물리적 제약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여행을 무사히 마친 그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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