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 -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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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 적막하기만 했다. 이 적막한 분위기를 누가 깰 수 있을까? 로멜리가 보기엔, 당연히 트랑블레였다. 프랑스계 캐나다인답게 북미 특유의 조급함이 있기 때문인데,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길고도 극적인 한숨, 황홀경에라도 이른 듯한 사람의 발산. “교황 성하께서는 이제 하느님과 함께 계십니다.” 그가 이렇게 내뱉으며 두 팔을 양옆으로 뻗었다. 축복을 할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그저 조수를 부르는 신호에 불과했다. 사도궁무처 조수 둘이 침실로 들어와 주교가 일어나도록 도와주었다. 한 조수의 손에는 은제 상자가 들려 있었다.

 “보지니아크 대주교, 미안하지만 교황 성하의 반지를 빼주시겠소?” 트랑블레가 부탁했다. 다른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로멜리도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70년간 궤배를 반복한 탓에 두 무릎이 삐걱거렸지만, 그래도 벽에 바짝 붙어 사도궁내원장이 지나가게 해주었다. 반지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불쌍한 보지니아크. 당혹감에 땀까지 흘리며 반지와 씨름하고 있지 않을까. 아무큰 반지가 빠졌다. 보지니아크가 반지를 건내자 트랑블레가 은제 상자에서 가위를 꺼냈다. 로멜리가 보기엔 장미 꺾꽂이에나 쓸 법한 종류였다. 트랑블레는 반지의 인장 부분을 가위 사이에 넣고 인상까지 써가며 힘껏 눌렀다. 순간 딱 소리와 함께 금속 원반이 반으로 잘렸다. 베드로가 어망을 던지는 문양도 반 동강 났다.

세데 바칸테(Sede Vacante). 이제 교황 자리는 공석입니다.” 트랑블레가 선언했다. (p.21-2)

 

 

카톨릭교회의 최고 지도자 교황이 선거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곳곳에서 118명의 추기경들이 시스티나 예배당에 모여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회의에 들어간다. 그들은 모두 성인이다. 동시에 야망있는 남자들이다. 그들은 서로 경쟁 관계에 놓여 있다. 이들 중 차기 교황으로 가장 유력시되는 추기경은 4명.


알도 벨리니 추기경 현재 국무원장을 지내고 있으며, 그레고리오 대학 총장과 밀라노 대주교를 역임했다. 성정이 차갑기로 소문났으며, 늘 초연하고 냉정하고 지적이어서 아주 오래전부터 진보주의자들의 위대한 지적 희망으로 군림하고 있다.키가 크고 바싹 마른 외모로, 책과 서류가 많아 잘 닫히지도 않는 검은색 서류가방을 들고 콘클라베에 나타난다.

 

조슈아 아데예미 추기경 나이지리아 출신의 추기경이자 바티칸 시국 내사원장. 금테 안경을 썼으며 거한인 까닭에 존재감도 압도적이다. 60대 초반의 나이에 몸놀림이 신중하고 늘 품위를 챙겨 사람들로부터 ‘교회의 왕자’라 불린다. 늘 혁명의 가능성을 신성의 불꽃처럼 품고 다니는데, 이 때문에 언론 매체의 주목을 받기에 언젠가는 ‘최초의 흑인 교황’이 될 것이라 예견되고 있다.

 

조지프 트랑블레 추기경 사도궁무처장과 인류복음화성 장관을 동시에 맡고 있으며, 제 3세계와 관련해 후보 자격이 있다. 단정한 짙은 은발에 날씬한 몸, 가벼운 몸놀림으로 은퇴 후 TV스포츠 해설가로 변신에 성공한 운동선수처럼 보이는 외모. 방송 매체에 관해 잘 알아 십분 활용할 줄 아는 프랑스계 캐나다인으로, 교황이 선종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기도 하다.

고프레도 테데스코 추기경 베네치아 총대주교로, 신학 학위가 두 개이고 5개국어를 유창하게 하여 전통주의자 사이에서 추종자가 적지 않다. 그 때문에 유망한 승계 후보로 떠오르는 인물. 바실리카타의 농가 출신으로 열두 남매 중 막내로 자랐으며, 누구보다 추기경처럼 생기지 않은 외모를 지녔다. 생전에 교황과 벨리나를 상대로 비난을 서슴치 않은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72시간이 지나면, 오직 한 명만이 이 땅 위의 가장 영향력있는 종교 지도자가 될 것이다. 통합과 관용이 필요한 위기의 시대, 신의 성배가 선택할 자는 누구인가?




 

​콘클라베. 라틴어로 콘 클라비스. ‘열쇠를 지니다’는 뜻이다. 13세기부터 교회는 이런 식으로 추기경들이 결정을 내리도록 보안책을 마련했다. 식사와 잠을 제외하고, 교황을 선택하기 이전에 추기경들은 이곳 성당을 벗어날 수 없다. (p.145)

이 자리에 모인 추기경 118명 모두가 후보이다.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있다. 교황을 뽑으러 왔다가 교황으로 뽑힐 수도 있다.

밖에서는 누가 차기 교황을 될 것인지를 두고 온갖 예측이 오고가는 가운데 전 세계의 눈이 향하는 이곳에서는 교황이 되려는 싸움으로 치열하다. 서로를 조롱하고 죽은 교황을 의도적으로 모욕하며 무기만 안들었을뿐이지 그 곳은 전쟁터와 다름이 없었다. 종교 최고 지위를 가진 그들이었지만 그들의 입에서 상대를 비난하고 헐뜯는 말들이 대수롭지 않게 흘러나온다. 서로를 비방하며 권력 앞에서 자신의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물밑 작전을 펼치며 서로를 깎아내는 등 신성하게 진행되어야 될 콘클라베는 갈수록 추하게 얼룩져간다. 당선을 놓고 매 순간마다 숨 가쁜 접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다. 투표는 거듭 진행되고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마다 긴장감은 한층 더 고조된다. 후보군의 범위가 좁아지는 듯하다가 뜻하지않게 돌발변수가 터져 나오고 순위와 득표수는 회의가 거듭될수록 겉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친다. 권력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는 가운데 다음 차기 교황으로 선정될 자는 누구일지 손에 땀을 쥐며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전개에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군더더기 없이 치밀하게 짜여진 이야기에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소설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정도.

선거는 결국 숫자싸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예측할 수 없이 흘러가던 교황위 승계 전쟁도 이제 그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전으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우리 주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청하오니, 부디 내 인도자가 되시어, 내 표가 반드시 교황이 되어야 할 분께 가도록 이끄소서.”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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