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페소아를 만나다 - 나를 묻는 밤의 독서
김운하 지음 / 필로소픽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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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책은, 특히 소설은 세상의 모든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 첫 번째 주인공 개츠비뿐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소설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런 거울들이다.

 나는 이 글의 첫 문장을 쓰기 전에 그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열정의 남자 개츠비를, 지독한 사랑의 열병으로 번민하는 키티를, 우아하지만 고독한 댈러웨이 부인을, 자의식 과잉에 시달리는 지하생활자를, 자기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잃어버린 과거 속에서 헤매는 기억상실자 기 롤랑을, 삶의 의미를 고민하며 방황하는 청춘 필립과 래리를.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 누구와도 닮지 않았으면서도 동시에 너무 많이 닮은 나 자신의 삶을 떠올려 보았다. 이상하게도 깊이 생각할수록, 그들 모두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생각마저 드는 건 왜 일까.

 그들 자신의 분열상, 복잡하고 뒤틀린 자의식,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 저지르게 되는 무수한 헛발질과 우스꽝스런 착오, 이 기묘하고 복잡한 생의 한가운데서 맞닥뜨리게 되는 덫과 함정, 상처와 고통이 모두 나 자신의 것인 양 생각되는 것이다.

 하긴 사람의 몸과 마음을 걸치고 있는 한 그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인간인 한, 갖지 않을 수 없고 겪지 않을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 (p.17)

 

 

 

 

 

 

 그는 두 팔을 어두운 바다를 향해 뻗었는데, 멀리 떨어져 있긴 했지만, 분명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할 수 없이 나도 바다를 바라보았다. 부두의 맨 끝에서 조그맣게 반짝이는 초록 불빛을 제외하곤 특별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p.24)

 개츠비가 캄캄한 밤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 두 팔을 뻗어 거기에 가닿으려고 했던 그것, 멀리서 조그맣게 반짝이는 초록 불빛, 그 불빛이야말로 개츠비의 열정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이며, 자신의 모든 것, 재산과 목숨까지 바쳐서라도 가 닿고자 했던 꿈이다. 그리고 그 꿈은 다름 아닌 잃어버린 옛 연인 데이지와의 사랑을 되찾는 것, 그들이 사랑했던 5년 전으로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이다. 과거에는 가난뱅이였지만 이제는 비록 불법적인 수단을 통해서일지언정 남부럽지 않은 부자가 된 개츠비가,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이루고자 하는 그 목표를, 그 초록 불빛이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 초록 불빛은 그저 개츠비가 사는 저택 반대편, 웨스트에그 지역에 사는 데이지와 톰 부부의 저택 끄트머리 잔교에 켜 놓은 등에서 나는 불빛에 불과하다.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초라한 녹색등에 불과하지만 개츠비의 환상속에서는 무지개처럼 먼 곳에서 아른거리는, 치명적인 매혹으로 개츠비를 유혹하는 희망의 불빛인 것이다.

​개츠비의 희망이자 열정의 목표인 초록 불빛은 데이지였다. 순수한 개츠비의 마음과 달리 값비싼 고급셔츠에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는 돈과 욕망으로 가득찬 여인. 어리석은 개츠비 그는 사랑이 주는 달콤한 환상에 빠져 돈으로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꺼라 생각한다. 그렇게 순정을 바쳐 사랑과 열정을 바칠 만한 가치가 없는 속된 여자에게 미쳐 재산과 목숨을 잃어버리게 되는 개츠비. 낭만은 달콤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리만치 차갑다. 개츠비가 바라는대로 이루어진다고 한들 그 사랑이 지속될 수 있었을까. 이미 탐욕으로 가득찬 여자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것인가. 결국 그 사랑은 머지않아 절망으로 끝나 버릴 것이다.

 

 

 

 

 

 

 

 

억압적인 가족관계로 인한 잘못된 결혼, 자신도 통제하기 어려운 육체적인 열정이 빚어낸 불륜의 사랑, 자존심과 질투,, 허영심, 그리고 무서운 질병과 남편의 죽음 등. 여주인공 키티는 그런 시행착오와 고통스런 경험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 즉 자신이 누구인지, 삶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성숙해가는 것이다.


​키티의 정신적 성숙과정을 지켜보며 많은 생각에 머리속이 복잡해진다. 성숙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

키티의 전반부 삶은 천진한 어리석음과 무지, 영혼과 육체의 분열과 갈등으로 인한 고통과 고뇌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채 어머니와 같은 외부의 영향에 이끌려 사는 의존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후반부에서는 본인의 세계에 빠져 절대 변할 것 같지 않았던 키티가 죽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보는 남편 월터를 통해, 가난하고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보살피는 수녀원 수녀들을 보면서 자신이 정말 무가치한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고 자신도 무언가 쓸모있는 일을 하고 싶어 수녀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하며 조금씩 변화해간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빠져있을 때 자기의 고통, 고뇌, 아픔, 슬픔, 상처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큰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 객관적으로 자신을 쳐다보면 그 순간 겪은 모든 감정들이 얼마나 작고 사소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당장 불어닥친 크나큰 불행에 죽을 것 같이 힘들고 괴롭지만 세월이 흘러 그 시간을 다시 떠올려보면 별거 아니게 생각되듯이 말이다.  인생에 성공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인생을 살아가며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조금씩 성장해간다. 결국 이 또한 지나간다. 인생에 성공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인생을 살아가며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조금씩 성장해간다.

 

 

 

 

 

 

이렇게 스스로 고백하듯 우리의 주인공은 불행한 외톨이다. 이 세상은 위선과 거짓으로 부패하여 썩었고, 인간들은 하나같이 멍청하기 짝이 없는 속물들이고, 이런 세상에서 교양과 자의식이 강한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그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한다. 이 세상도, 자신이 사는 도시도, 자신이 섞여 살아가야 하는 타인들도,, 심지어는 세상에서 외톨이인 자기 자신조차도.

 

 

 

 

 

이 책의 주제는 ‘나’ 그리고 ‘내가 삶과 세계와 맺는 관계’이다.

이야기의 중심은 바로 나 혹은 나의 삶에 있다. 이는 결국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과 관련되어 있다. 저자는 <카프카의 서재>때와 마찬가지로 거의 문학작품들을 활용하여 각 장의 주제를 재미있게 풀어보려 했다.

14권의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소개하며 소설 속에서 살아 숨쉬는 인물들을 통해 삶의 총체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우리는 책을 통해서 참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현실에서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책을 읽으면서 감정을 이입하여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되어 함께 그 고통을 느껴보기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을 눈으로 뒤쫒으며 재미와 감동에 울고 웃으며 그들과 함께 호흡한다. 그들보다 좀 더 나은 내 삶에 만족감을 느끼기도 하고 부러움에 질투도 하며 현실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값진 경험들을 얻는다.

 

​여러 인물의 다양한 삶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는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생각을 하게 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을 통해서 결국 내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처 주지 않고 내가 상처 받지 않으려 자기의 속내를 감추면서 상황에 따라 필요한 가면을 쓰고 자기 속내를 감추며 살아가기도 한다. 세상과 적절히 타협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가면을 쓰고 사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냉혹한 삶에 좌절한 채 마냥 주저앉아 포기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것, 꿈꾸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그것을 의미로 받아들이면서 열심히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 각자 추구하는 생의 목표나 목적이 어떤 보편적인 가치에 부합하고 거기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때 우리는 그 생이 아름답다고, 의미 있다고 간주할 뿐이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결국 각자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것이 아닐까. 영원히 지속되는 삶은 없다. 성공한 삶이든 실패한 삶이든 모든 삶은 결국 죽음으로 끝난다. 과거는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맞서 나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의 의미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 당신의 생의 의미는 바로 당신이 창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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