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 산들의 꼭대기
츠쯔졘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안핑은 할 수 없이 직업을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상의하자 전혀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미 사람을 총살해놓고, 앞으로 안 한다고 해봤자야. 하여튼 나는 당신 손에 치가 떨려. 당신 손은 더러워! ”

 안핑은 말할 수 없이 참담했다. 더러운 건 죄지. 그 죄를 없애 세상을 맑히고 밝히는 자신의 두 손은 무엇보다 깨끗하다고 생각했다.    (p.39)

 

 



안핑은 신신라이를 잡지는 못했지만, 독수리가 토끼를 낚아채는 것을, 뱀이 두더지를 집어삼키는 것을, 작은 새가 벌레를 포위해서 섬멸하는 것을, 개미가 소나무 껍질을 갉아먹는 것을, 벌이 들꽃의 심방에 침입해 탐욕스럽게 꽃가루를 빨아먹는 것을 목격했다. 만물 사이에도 학살과 능욕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것은 아름다운 명분을 지닌 채 이루어지고 있었다. (p.159)



 

라오웨이가 단얼둥의 말투를 따라 했다.

“인간 세상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p.229)


 

등장인물만 무려 40명에 이르는 대륙적 스케일에 주눅이 들어 차일피일 미루다 책을 펼쳤다. 읽기 전에 미리 주요 등장 인물 소개를 여러번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눈에 익기까지 여러 번 책장이 앞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자 우려했던바와 달리1장에서부터 17장까지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이 촘촘하게 하나로 이어진 이야기는 금새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장 한장 지루함 없이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저자는 가상의 소도시 룽잔진을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냈다. 작가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들은 이야기들을 소재로 그려낸 도살업자 신치짜, 수명을 점치며 비석을 새기는 난쟁이 안쉐얼, 사형을 집행하는 사법경찰 안핑, 룽잔진 보건소에서 근무하며  장애인이 된 대학친구를 돌보는 탕메이 등 개성 강한 인물들은 살아 숨쉬는듯 페이지를 가득 체운다. 인물간의 갈등이나 모순들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서술 해 놓은 까닭에 모두 각자 개성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이야기 하나하나 현대 사람들이 모습들이 여과없이 담겨있다. 책 속에서는 도시화와 환경 파괴, 사형집행 방식이 변화하는 모습, 장례제 개혁, 불임수술, 사법기관의 가혹 행위, 불법 장기 매매, 역사 청산 문제, 매관매직, 사람의 죄악과 양심, 도덕과 인간의 존엄성 문제 등 현재 중국이 직면한 다양한 사회문제가 제기된다. 우리가 몰랐던 중국 사회의 모습이 보다 생생하게 보여졌다. 빠르고 치밀하게 이어지는 소설은 다 읽고 난 후 470여 장의 페이지가 오히려 적게 느껴질 정도였다.  보통사람들의 선한 마음도 있지만 분노와 격정을 유발하는 장면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그대로 직면하게 만들었다. 사람들 속에 내제되어 있는 선과 악의 모습을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