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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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울하건 화가 나건, 사람들은 세상에 비일비재한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꾸역꾸역 잘도 잊어버렸다. 그래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잊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아니, 살아지지 않는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그저, 모든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행동 하고 있을 뿐이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을 선택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고, 통용되는 것들에 대부분 고개를 주억거리거나 자신 없게, 네, 라고 말해버리는.

 그런 내가 규옥의 제안에 동의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규옥에 대한 이끌림 때문은 아니었다. 한 번쯤은, 정말 한 번쯤은 자신 있게 외쳐보고 싶어서였을 거다.

 나는 너희와 다르다고.      (p.91)

지혜에게는 용기가 없다. 규옥은 박교수님과 일을 겪으며 용기내어 옮지 못한 것을 보고맞서려는 반면 지혜는 잘못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게 절대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것.

안하니까 못하는 것이다. 나조차도 지혜와 별만 다르지 않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라고 가르치면서도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가는데 나만 떨어져 반대 방향으로 간다면 모든 사람이 나를 탓한다. 그래서 속으로는 이 길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몸은 다수가 이끄는대로 나도 모르게 이끌려간다. 나 홀로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누군가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 머뭇거리기만 할 뿐 아무도 그 누군가가 되려하지 않는다.

너무 견고해서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지혜의 삶이 규옥으로 인해서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속으로만 담아두었던 말들을 하나둘씩 꺼내어 보이며 말이다.

은행나무에서 모집한 <서른의 반격> 가제본 서평단에 선정되어 책이 정식 출간되기 전에 미리 읽어 볼 기회를 얻었다. 받아본 책은 가제본인데도 알록달록 책이 너무 이뻐서 자꾸 눈길이 간다.
우연한 기회에 서평단에 지원하면서 알게 된 손원평 작가님.
기자 출신 소설가, 장강명의 <댓글부대>를 배출한 제주 4.3 평화문학상을 아시나요? 제주 4.3 문학상은 평화와 인권에 기여한 문학작품에 수여하는 상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영화감독 출신의 핫한 소설가가 이 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아몬드>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이미 화제가 된 이 책의 저자 손원평 작가님이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부터 기대가 높아졌다.

​이번 소설은 1988년생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시아버지는 엄마의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태어날 달을 계산하여 추봉이라는 이름을 유언처럼 남기고 세상을 떠나셨다. 이름을 받아든 엄마는 뱃속의 아이가 추봉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미래를 상상하며 비탄에 빠져 며칠을 눈물로 지새웠다.
 출산의 진통을 느끼고 도착한 병원에서 꼬박 이틀 동안 진통을 겪으며 초췌해져 가면서도 그 이름이 끝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엄마는 위험한 상황이라 수술을 권하는 의사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혼미한 와중에 죽어도 추봉이는 안된다며 아빠에게 최후통첩으로 각서를 들이밀었다. 이미 죽은 아버지와 곧 죽을지도 모르는 마누라 사이에서 고민하던 아빠는 살사람은 살아야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각서를 썼고 그렇게 그 이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눈물 겨운 투쟁을 거쳐, 산후 조리를 마치지도 못한 채 엄마가 밤을 새우며 옥편을 뒤져 고민한 끝에 새로 지은 이름은 그 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여자아이들 중 가장 흔한 이름인 김지혜. 평범한 이름으로 지어지긴 했지만 눈물겨운 엄마의 노력이 없었다면 김추봉으로 살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주인공은 지금도 회자되는 전국이 호돌이 마크로 도배되고 굴렁쇠 소년이 굴렁쇠를 굴렸던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태어났다. 

지금 그녀는 시멘트 회사에서부터 출발해서 아파트, 식품, 미용 등 각 분야에 손을 뻗어 성공을 이루어낸 DM의 문화산업 중 차별성이란 이름을 내걸고 홀로 유별난 행보를 걷고 있는 디아망 아카데미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자신이 가고싶어 했던 DM그룹의 공식채용에서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들어오긴 했지만 그래도 운이 좋아 여기서 정직원이 되어 일하다보면 경력을 인정받아 본사로 들어갈 기회도 얻지 않을까 희망하며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다.

그녀가 하는 일은 커다란 구식 복사기 앞에 서서 종이 뭉치를 안아들고 강좌에 필요한 자료를 종일 복사하고,강의실 의자를 배치하고, 같이 일하는 유팀장의 지시를 따르며 상사들의 비유를 맞추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를 상징하듯 그녀가 살던 집은 점점 층수가 낮아지더니 어느덧 반지하. 낮아진 층수 만큼이나 기대도 희망도 낮아져버리고 더 늦기 전에 무언가 해결하고 싶지만 불안감만 더 커져간다.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다.

지인의 소개로 교수님 연구보조로 알바하며 심부름이란 심부름은 다하고 책도 대신 써준 후 알바비도 못받고 버림받은 규옥씨,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지만 현실은 문화백수에 본인의 작품을 빼앗기고 따지지도 못한 채 속으로 삭히며 현실과 타협하는 무인씨, 결혼 후 직장에서 살아남으려 잘못된 것을 따지지도 못하고 상사의 비유 맞추어가는 유팀장 등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들의 이야기가 현실에서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더 공감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프다.

이 시대의 청춘들의 삶을 그려낸 소설은 다양하게 많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그들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소설은 내가 읽어본 것 중엔 없는 것 같다. 그들의 아픔만 그려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반격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잘못되었다는 걸 잘못됐다고 말하기만 해도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뀌어질까? 답은 말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은 모르겠지만 조금씩이라도 부딪히다보면 적어도 내 자신에게 만큼은 떳떳해질 수 있지 않을까.

8090세대의 젊은이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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