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 우리는 일요일마다 그림을 그리는 것뿐인데
아방(신혜원) 지음 / 상상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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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그림은 장점이 있다. 못 그리는 게 아니고 장점을 발견하지 못한 거다. 자기 그림의 장점을. 하도 사람들 그림을 많이 봐서 그런지 남의 그림의 무수한 장점과 특징은 잘도 알아낸다. 문제는 내 그림의 장점을 찾는 게 어렵다. 아니, 웬만큼 뭔지 알고는 있으나 수시로 잊어버린다. 다 그런가 보다. 내 건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다. 그것이 사람들이 클래스에 오는 이유다. 스스로 알기 힘든 걸 누군가 알려주니까. (p.73)


우리는 각자 어떠한 모습이기를 염원하지만 주로 그 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염원은 실현할 수 없기도 하다. 또한 가져본 적 없는 공간을 상상하며 그곳에 있기를 소원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곳이 펼쳐지면 그럴 리 없다며 제풀에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혀 가질 수 없는 건 아니다. 염원하는 모습이 될 수도, 현실에서 원하는 식탁이 차려졌을 때 냅다 즐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뭉치면! 혼자서 해내려면 여러모로 피곤한 것이 사실이다. 피곤하기만 하면 양반이지, 끝끝내 완결짓지 못하는 만화책과 완주하지 못하는 마라톤 경기가 수두룩할 것이다. 앞바퀴, 뒷바퀴 최소한 바퀴 두 개는 있어야 차가 끝까지 굴러가는 법이다. (p.112)


지금까지 한 가지를 착실하게 해온 이유는 그만두고 다른 걸 할 용기가 없다는 것 외에 하나 더 있었다. 열정이 남아있어서다. 그림에 10년간 정성을 쏟고 기꺼이 소중한 것을 내어주며, 무언가를 아끼지 않았던 건 열정 때문이었다. 열정이란 게 있기 때문에 시간과 돈의 굴레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열정은 청춘을 대표하는, 불같이 활활 타오르는 빨간색 에너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어쩔 수 없이 움직이게 하는 작은 불씨, 최소한의 연료랄까? 용기를 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불씨 말이다. 그래, 열정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약간 피곤해지는 어감을 띠니 불씨라고 해야겠다. 톡 던져서 꺼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p.143)




“초보도 괜찮나요?” “그림에 문외한인데 괜찮나요?” “저 정말 그림 하나도 모르는데 괜찮나요?” “나이가 많은데 괜찮을까요?” “똥손인데 가능할까요?” “남자인데 괜찮나요?” “소질이 없는 것 같은데 괜찮나요?” “주부도 들을 수 있나요?” “따라갈 수 있을까요?” “이런 저도 할 수 있을까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네, 다 괜찮습니다!” 모여서 그리는 게 좋아 시작한 그림 클래스 ‘아방이와 얼굴들’이 어느덧 11년째, 누적 수강생만 천여 명. 이 그림 클래스는 이론을 몰라도 기초가 없어도 누구나 쉽게 그림을 평생 취미로 즐기게 된다고 입소문이 나있다. 왜 그럴까?

우선 ‘아방이와 얼굴들’은 그림 잘 그리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수업이 아니다.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릴 수 있게 연습시켜 줄 뿐이다. 스무 장이든 백 장이든, 마음에 들 때까지 각자 알아서! 여기에 정답은 없다. 일단 와서 그리면 된다. 각자 눈치 보지 않고 본능에 몸을 맡기는 시간, 본인의 속도에 맞추어 자기가 어떤 색깔을 좋아하고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할지 알아가는 시간이다. 여기에 저자 아방은 이제껏 그림을 그리며 쌓아온 경험치, 실패를 거듭하며 생긴 노하우를 전해줄 뿐이다. 그렇게 그녀가 이끄는 대로 멤버들은 여기서 가장 자기다운 시간을 보내고 진짜 자기를 찾아간다.

”일단 그리고 봅시다!“ 하루하루 이어지는 아방이 사랑하는 일과 인연, 그렇게 돌고 도는 그녀의 일상! 잘난 것보다 재밌는 것이 좋고, 잘난 사람이나 삶보다, 재밌는 사람과의 재미난 삶을 추구하는 그녀. 특유의 독특한 시각과 표현법으로 젊은 층으로부터 큰 공감과 인기를 얻고 있는 그녀의 삶은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낭만과 위트를 사랑하는 그녀답다랄까. SNS에서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에서 그려지는 에피소드 하나하나 다 참 솔직하고 또 유쾌하다. “역시 그림은 배우는 것이 아니다. 배우면 쪼그라들 뿐이다. 고로 나는 사람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고 돈을 받지 않는다.” 의지가 참 확고한 그녀.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참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녀. 기회가 된다면 나도 그녀의 클래스를 꼭 한 번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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