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히말라야는 왜 가?
백운희 지음 / 책구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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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는 까마득한 낭떠러지였다. 안전망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소름 돋게 아름답다’라는 표현이 딱 떠오를 만큼 풍광은 멋졌다. 가파른 산허리를 개간한 다락 논은 능선마다 이어지고 그 뒤에 어김없이 마을이 등장할 때면 사람들이 공간에서 어우러져 있었다. 비로소 이곳이 히말라야의 나라라는 사실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엄청난 것을 보여주려는 걸까? 네팔은, 히말라야는, 랑탕은. (p.77)

 

언제부턴가 길을 잃고 산다고 여겼다. 불안하면서 억울했다. 길을 찾기 위해 악을 쓰며 버텼는데 갑자기 모든 게 사라지고 모르는 길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으니까. 노래는 말했다. 아직 끝이 아니라고, 더 갈 길이 있다고. 그 말이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모두가 함께 울고 있었다. 갑작스레 터져나온 눈물 덕분에 이전의 당혹감도 증발했다. 같이 길을 걸은지 불과 며칠이었다. 여전히 낯설지만 힘든 과정과 위로의 시간 덕분이었을까. ‘그대는 길을 잘 가고 있노라’고 서로가 서로를 다독이는 느낌을 받았다.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거리를 둘 줄 아는 이들에게 노래와 함께 친절한 감정이 스멀스멀 흐르기 시작했다. (p.130)

 

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다. 결과가 달랐을 뿐이다. 정상을 밟지 못했지만, 대신 평온하고 오롯하게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어 더없이 충만했다.

 

기억하려 한다. 어느 날 누군가에게 선의로 무장한 채 “최선을 다하라.”며 섣부른 말을 건네지는 않았는지. 나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는 때때로 응원이 아닌 오만함이요, 상대에겐 고통과 억압의 경구가 될 수 있음을. 그리고 엄마로 살아온 나의 지난날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날들이었음을 말이다. (p.172)

 

 

“엄마는 금방 돌아와. 아빠, 이모, 삼촌, 할머니와 즐겁게 지내다 보면 시간 가는 것도 잊어버릴지 몰라. 엄마가 그때 ‘뿅’하고 돌아올게.” 나의 여행으로 아이 돌봄에 동원된 이들의 숫자를 헤아려 보다가 먹먹함을 느낄 새도 없이 준비를 서둘렀다. 이부자리와 벗어둔 옷가지를 정리하고, A4용지 3장 가득 기록해 둔 전달사항과 냉장고 속 음식들을 다시 확인한 뒤 배낭을 짊어졌다. 출발 준비부터 챙길 것투성이인 서른 중반의 엄마는 그렇게 일곱 살 아이를 두고 히말라야로 떠났다. 엄마가 되고 처음으로 혼자 나선 여행이었다.

 

몇 번을 여닫고서야 채워진 42리터와 70리터짜리 배냥 두개. 가족을 뒤로 하고 홀로 떠난 배낭여행. 이대로 괜찮을까? 건조하고 시리다는 히말라야의 겨울과 고산증세를 혼자서 잘 견뎌 낼 수 있을까? 아니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도대체 왜? 그 많고 많은 나라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히말라야였을까! 그 궁금증은 첫 페이지에서 너무나 쉽게 풀려버렸다. ㅎㅎㅎ 항상 그렇지만 여행은 늘 우리의 생각대로 따라와주지 않는다. 여자라면 더더욱! 홀로 여행하는 여성을 향한 날선 시선, 그로 인한 긴장과 불안은 여행하는 내내 그녀를 따라다녔다. “아이는 어떻게 하고 여행을 가요?” “남편이 허락을 해줘요?” 엄마 혼자 하는 여행이라는 말에 그녀를 색안경을 낀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엄마는 혼자서 여행하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는 건가?! 나도 모르게 욱!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녀도 엄마, 나도 엄마. 서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이성과의 연애, 결혼,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까지. 여자에서 엄마로, 자식에서 부모로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일들. 그래서일까? 여행보다도 그녀의 삶에, 그녀의 속마음에 눈길이 더 오래 머무른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감정이 이입된다. 거세게 숨통을 조여오는 코로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책 여행길에 올라 숨통이나 틔워볼까 했더니만, 생각이 한층 더 깊어져 버렸다. 격하게 공감하면서 동시에 위로가 되는 참 묘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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