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유전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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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돌보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고통은 함께 경험한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p.17)

 

우리는 시련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 말은 미신과 다를 바 없었다. 아무리 없애려 애써도 매번 다시 나타나는 거미를 내몰 방법이 없으니, 그냥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 지네를 영험한 동물이라고 믿고 사는 바로 그런 것처럼. (p.88)

 

이상하게도 낫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더 자주 끝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희망과 의지를 붙잡고 걸어가고는 있지만 사실 끝에는 무엇도 없고,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예감. (p.108)

 

 

 

해인 마을은 이제 지도에서 찾을 수 없다. 2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랬다. 살던 곳이 사라지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들에게 마을은 일종의 유전이었다.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집과 밭, 산과 나무, 그러니까 터전이라고 부르는 것. 아들이 아들에게 물려주고, 딸이 딸에게 전해 받은 것.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다 사라졌다. 처음은 단 한 명이었다. 그 애가 떠난 후, 뒤이어 많은 아이가 하나둘 마을을 떠났다. 꿈꿀 수 없는 일들은 생각보다 쉽게 벌어진다.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

 

이것은 어느 산골마을 소녀들의 이야기다. 스물세 살에 장편 소설 <이명>으로 데뷔하여 대중들의 지나친 관심과 기대, 실망과 비난으로 상당히 고통스러워했던 김지우. 어떻게든 이 마을을 떠나 자신이 선택한 방식대로 살아가고자 백일장을 두고 경쟁을 하던 민영과 진영,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나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전해준 소영이와 민지 그리고 김지우의 제자 이선아까지.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들을 글로 적어내는 소녀들. 현재에서 과거로 또 현재에서 상상 속으로, 종잡을 수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끝이 났다. ‘아, 이야기가 이렇게 이어질 수도 있구나.’ 두런두런 이야기가 밑도 끝도 없이 들쑥날쑥 이어지는 탓에 산만하긴 했지만, 소재 자체는 상당히 신선했다. 사람을 묘하게 잡아당긴다. 명확하게 끝이 나면 깨끗하게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끝이 보일 듯 말 듯 흐지부지 끝나버린 탓인지 잡다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 이후 소녀들은 어찌 되었을까. 해피엔딩? 새드엔딩? 책을 덮고 나서도 속이 개운하지가 않다. 서로에게 다정한 듯 하지만 다정하지 않은, 다정하지 않은 듯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달리해서 보면 서로를 보듬어 안아주는 다정한 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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