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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평점 :





집은 우리에게 같은 장소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집이 쉼터이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집은 집은 일터가 되었다. 보수도, 출퇴근도, 휴일도 없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가사 노동의 현장. (p.26)
내가 지낼 공간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시간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순간이었다.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이 집이 온전한 나의 집이 되리라 믿었다. 내가 바꾼 공간이 이곳에서 보낼 나의 시간을 바꾸리라 기대했다. 그렇게 일상의 모든 것이 더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아등바등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절박하게 애쓰지 않으면 나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집을 고치며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p.104)
단순함과 간결함이 우리가 원했던 집의 ‘외형’이라면, 아내와 남편이 자기만의 방을 가지는 것은 우리가 바랐던 집의 ‘구성’이었다.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을 바라보았다. 오차 없는 직선, 균형과 비례, 빛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흰색, 짙은 나무결의 바닥 같은 것을. 리모델링의 드라마틱한 효과를 처음 경험해본 나는 그 집의 선, 면, 입체, 질감, 색깔 등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p.128)
이 책은 저자가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이다. 권력, 부동산적 가치, 재테크 수단으로만 바라보던 집을 시선을 달리하여 장소와 공간으로서 집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저자는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집과 방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조곤조곤 문장으로 풀어낸다. 유년시절을 보낸 대구 북성로 양옥집, 범어동 명문 빌라, 스스로의 힘으로 보증금과 월세를 마련했던 고양시 행신동의 주택, 정발산동의 신혼집 등 여러 추억이 깃들어 있는 각각의 장소에 대한 기억들.
집은 나에게 무엇인가?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자연히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과거의 집을 떠올리게 된다. 낯선 곳에서의 정착, 그리움, 즐거움, 행복함, 편안함, 애틋함······. 그동안 잊고 지냈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기억을 스치고 지나간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온 동네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었던 그곳, 할머니와 함께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그곳, 부모님께서 처음으로 집을 장만했던 그곳, 아빠의 직장 이전으로 다 함께 떠났던 그곳, 다시 예전 집으로의 come back. 이 책을 읽으며 시선을 달리하여 집을 바라보니 모든 게 새로워 보인다. 단순히 내가 소유하고 있는 곳만이 아닌, 잠을 자고 밥을 먹고 가족들과 함께했던 시간들, 내 삶을 차곡차곡 담아내는 공간으로 의미가 변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