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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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는 죽어야 한다. 왜? 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관절이 망가져 아프기 때문이다. 왜? 너무 빠르게 달렸기 때문이다. 왜? 인간이 원했다. 왜? 빠른 말만이 인간에게 쾌락을 주기 때문이다. 왜? ···. 투데이를 치료할 수는 없는가? 현재 인간의 의료기술로는 닳기 이전의 완벽한 관절로 되돌릴 수 없다. 또 다른 방법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프기 전으로.- 과거로 돌아가는 것만큼 완벽한 해결방법은 없을 것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세상에는 어떤 고통이나 슬픔도 존재할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누구도 현재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되겠지. (p.232)

 

 

나는 세상을 처음 마주쳤을 때 천 개의 단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천 개의 단어로 다 표현하지 못할, 천 개의 단어보다 더 무겁고 커다란 몇 사람의 이름을 알았다. 더 많은 단어를 알았더라면 나는 마지막 순간 그들을 무엇으로 표현했을까. 그리움, 따뜻함, 서글픔 정도를 적절히 섞은 단어가 세상에 있던가. 천 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짧은 삶을 살았지만 처음 세상을 바라보며 단어를 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천 개의 단어는 모두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 좌절이나 시련, 슬픔, 당신도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이 전부 다 천 개의 파랑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파랑파랑하고 눈부신 하늘이다. (p.354)

 

 

 

신장 150센티미터, 몸무게 40킬로그램 나는 오직 경주마를 타기 위해 만들어진 휴머노이드 기수. 그리고 나와 호흡을 맞춘 파트너, 투데이. 휴머노이드 기수는 인간보다 훨씬 가볍기 때문에 경주마는 빠르고 날쌔게 달려야 했다. 시속 80km! 한국 신기록!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투데이! 빠르게, 좀 더 빠르게 달리라고!" 함성이 커질수록 투데이는 속력을 높였다. 그렇게 쉼 없이 질주하던 투데이는 연골이 다 닳아버려, 더는 뛸 수 없게 되었다. 혹사당하는 내 파트너를 지키기 위해서는 경기 도중 실격당하는 방법밖엔 없었다. 나는 낙마를 결심했다. 투데이와 주로가 아닌 초원 위를 달리고 싶었다. 천천히,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때 한 소녀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가와 부서진 내 하반신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소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확신했다. 소녀의 눈동자와 떨리는 호흡이 나와 투데이를 구해내리라는 것을.

 

이야기 하나하나 정말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다. 신장 150센티미터, 몸무게 40킬로그램의 휴머노이드 기수 C-27. 만들어지는 마지막 과정에서 일어난 말도 안되는 사고로 칩이 잘못 삽입되어 탄생한 기계 인간 콜리. 인지와 학습 능력이 들어있는 칩 덕분일까. 콜리는 언뜻 보면 인간과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는 인간이 아닌 휴머노이드. 하지만 마음 씀씀이나 하는 말과 행동은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면을 내보인다. 이런 콜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건 로봇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소녀 우연재. 그리고 그녀의 언니 은혜는 투데이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떠올리는 사람, 한 사람의 몫을 아직 책임질 수가 없는 사람. 저자는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혼자 다니기 위험한 은혜를 통해 지금의 세태를 아주 날카롭게 꼬집어낸다. 미래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세상. 함께여서 더 행복했던 순간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 콜리의 선택. 각 인물들이 건네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들. 읽다 보면 마음 한 켠이 절로 따스해지는 <천 개의 파랑>! 폐기를 앞둔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그의 파트너 투데이, 그들의 구원자 연재 그리고 수지와 보경까지 눈앞으로 또 하나의 세상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고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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