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론에 사로잡혀 있으면 정말 중요한 것들이 사소해진다. 결론에 매달려 있으면 속과 결이 복잡한 현실을 억지로 단순하게 조작해서 자기 결론에 끼워 맞추게 된다. 세상은 원래 이러저러하다는 거창한 결론에 심취하면 전혀 그와 관계 없는 상황들을 마음대로 조각내어 이러저러한 결론에 오려 붙인 뒤, 보아라 세상은 이렇게 이러저러하다는 선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정작 소중한 것들을 하찮게 보게 만든다. 이와 같은 생각은 삶을 망친다. (p.23)

 

나는 여태 내 삶이 농담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딱히 성공적이지 못한 농담 말이다. 백 명의 관객 가운데 두 명밖에 웃기지 못한 실패한 농담. 그게 내가 생각하는 내 삶이었다. 그런데 일곱 가지 장면을 꼽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꽤 입체적이다. 이야기 속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때 적어도 애정을 가지게 되는 종류의 캐릭터 말이다. 일곱 가지 장면을 꼽는 일은 내 삶을 이야기로, 나를 캐릭터로 만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지나가던 행인이 아니다. (p.73)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정한 거리감이라는 게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열 보가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반보가 필요하다. 그보다 더하거나 덜하면 둘 사이를 잇고 있는 다리가 붕괴된다. 인간관계란 그 거리감을 셈하는 일이다. (p.106)

 

 

 

 

“그 밤은 여지껏 많은 사람들을 삼켜왔다. 그러나 살기로 결정한 사람을 그 밤은 결코 집어삼킬 수 없다. 이건 나와 여러분 사이의 약속이다. 그러니까, 살아라.” 그가 돌아왔다. 세류에 휩쓸리지 않고 소신껏 할 말은 하고 사는 멋진 남자! 허지웅의 4년 만의 신작 에세이 <살고 싶다는 농담>. 이 책은 2018년 12월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고 죽음과 치열한 사투 끝에 살아 돌아온 그가 전하는 그날의 기록. 오늘도 절망과 싸우는 이들에게 전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

 

Part 1~Part 3까지 자신의 경험과 영화 속 인물과 실존 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불행을 탓하는 일에 몰두하는 인생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스스럼없이 표현한다. “절망이 여러분을 휘두르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피해의식에 점령당해 객관성을 잃는 순간 괴물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평가에 잠식되어서는 안 된다. 평가와 스스로를 분리시켜야 한다. 마음에 평정심을 회복하고 객관성을 유지하자. 그것이 포스가 말하는 균형이다. 언젠가 반드시 여러분의 노력을 알아보고 고맙다고 말할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끊임없이 가다듬고 정진하고 버틴다면 반드시 그날이 온다.” 앞서 크나큰 아픔을 겪은 뒤, 그는 사뭇 달라졌다. 이전에 날카롭게 날을 세웠다면 지금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서려 하고 말 한마디라도 더 정성을 들여 전하려고 노력을 기울인다. 진심 어린 위로에 눈물이 그렁그렁, 한 글자 한 글자 피부로 확연히 느껴진다. 온 마음으로 전해진다. 한 번 읽고 끝내기에는 좀 아쉬운, 곁에 두고 오래오래 보고 싶다. 건강하게 돌아와줘서 고마워요, 허지웅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