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의 위로 - 밥 한 끼로 채우는 인생의 허기
최지해 지음 / 지식인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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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은 편견을 가장 빠르고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음식 하나를 두고 요리의 난이도를 가늠한다거나 마냥 어려워 보여도 실전을 통해 의외로 쉬운 요리였음을 깨닫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반면, 설탕 한 스푼, 소금 반 스푼이라는 모호한 한끗 차이로도 음식의 맛이 달라진다는 걸 깨닫게 되면 오히려 요리가 쉽다는 생각은 쏙 들어간다. 공을 들인 딱 그 정도만 맛이 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얻어 걸린 맛’이라는 행운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또 바로 이 주방이다. 주방에서 쌓인 경험치는 자신이 선호하는 식재료나 음식 종류, 맛 등으로 축적되면서 먹고 사는 패턴을 그린다. 마치 삶의 축소판과도 같다. 계속해서 주방을 들락날락거리다 보면 잘 먹고 사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것이라는 방치된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p.17)

 

사회적 거리는 듬성듬성해졌지만 가족이나 배우자, 함께 사는 이와는 거리는 더 가까워진 역설 앞에 일상이 주는 소소한 행복을 떠올려 본다. 뿌연 미세 연기가 걷히고 선명해진 파란 하늘, 30년 만에 히말라야 산맥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는 네팔, 에메랄드 물빛을 되찾았다는 이탈리아 베네치아까지.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혼란에 빠트렸지만 헝클어진 무언가를 되돌려 놓기도 했다. 물론 아직 어려운 상황임은 분명하며,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과 경제, 사회적으로도 큰 타격을 받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p.49)

 

No Farm, No Food. 도마 위의 자투리 채소와 싱크대에 널브러진 흙을 보고 있다가, 여행 중 어느 담벼락에서 발견한 문장이 떠올렸다. 접시 너머의 것, 그러니까 사람과 자연의 존재를 가볍게 여기면 이들은 끝내 사라질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가 그토록 열광하는 맛있는 음식도 없어질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인류는 음식 너머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요리라는 행위를 끊임없이 이어 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도 아무리 덥고 귀찮아도 채소를 씻고 다듬는 것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p.66)

 

 

 

 

치유의 식탁, 건강한 식탁, 삶의 식탁, 가치의 식탁, 위로의 식탁, 기억의 식탁, 이렇게 다양하게 식탁 위로 건네지는 작가의 잔잔한 위로. 누군가에게는 김을 솔솔 내뿜어대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주린 배를 대충 때우는 간단한 한 끼 식사에 불과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 밥 한 끼가 기쁨이고, 행복이고 삶의 또 다른 즐거움일 수 있다. 이건 가볍게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는 행위. 근심과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시간.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고! 위로가 필요할 땐 식탁 앞으로!

 

우리밀 스콘, 시끌벅적 잔치국수, 하모니카 옥수수, 삶은 햇땅콩, 빨간 오징어채 무침, 카레, 달달한 밤 조림, 우리밀 빵 등 다양한 음식의 조리법이 소개될 때마다 입안으로 군침이 돈다. 식재료를 선정하고 차근차근 음식을 만들어 식탁 위를 하나둘 채울 때 그 뿌듯함이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진심으로 마음을 기울일 때마다 그 음식의 가치는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그만큼 정성이 가득 깃들었으니까. 작지만 소중한 우리들만의 시간. 한 걸음 또 한 걸음 거닐 때마다 마음이 툭툭툭. 저자가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던지는 말에 마음이 물결치듯이 부드럽게 일렁인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찌개와 반찬, 따뜻한 밥 한 공기와 국. 소중한 한 끼 식사. 식탁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위로의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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