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 7인 7색 연작 에세이 <책장 위 고양이> 1집 책장 위 고양이 1
김민섭 외 지음, 북크루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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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크고 작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저마다의 회전교차로에 진입하게 된다. 20대의 내가 마주한 그 교차로는 아주 컸고 갈림길도 많았다. 그게 반드시 취업이나 진학으로의 길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삶의 태도라든가 지향을 선택하는 더욱 중요한 길이 있다. 거기에 어떻게 진입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응당 자기 자신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예를 들어 ‘고양이를 구한다든가’ 하는 일을 한다면, 내가 가야 할 길로 들어설 수 있지 않을까. (p.17)

 

틈을 내주지 않는 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는 이를 무장 해체시키는 단어, 벗.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감싸 줄 것 같은 단어, 벗. 벗이라고 부르자, 곁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옆이 자꾸 다가와 마침내 곁으로 자리 잡은 순간이었다. 친구의 어수선함과 복작거림을 거쳐 뭉근한 어떤 것만 남은 것 같았다. 알고는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단어처럼, ‘벗’은 내게 어떤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신식이 했던, 사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사람은, 사람이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에게 자꾸 기울어진다. 살피는 일은 마침내 보살피는 일이 된다. (p.112)

 

비는 공평하게 내리지만, 그 비가 더욱 적시는 것은 결국 평범함이거나 가난이다. 지하주차장이 있는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비가 새는 작은 방에서 새우잠을 자는 사람이 맞는 비의 총량은 다를 수밖에 없다. (p.203)

 

 

 

 

이 책의 바탕이 된 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구독자에게 보내주던 에세이 새벽 배송 서비스 <책장위고양이>. 이들 독자들의 적극적인 응원과 참여를 통해 만들어지게 된 게 바로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이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김민섭, 김혼비, 남궁인, 문보영, 오은, 이은정, 정지우 일곱 명의 작가들이 들려주는 일곱 빛깔의 이야기들. 언젠가 고양이, 작가, 친구, 방, 뿌팟퐁커리, 비, 결혼, 커피, 쓸데없는 것과 쓸 데 있는 것 이렇게 각양각색의 주제에 맞춰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각자의 개성을 듬뿍 담아 63편의 에세이를 차분히 써내려 간다.

 

과거의 언젠가, 미래의 언젠가, 바로 그 언젠가······. 언젠가에서 느껴지는 추억? 재미? 감동? 그리움? 애틋함? 흥미롭고 특색있는 각각의 이야기들. 잊혀졌던 과거를 함께 추억하고 기억하기에 이만한 게 어디 있을까. 자신의 삶에 새겨져 있던 기억들을 하나씩 불러 모은다. 제일 기억에 남았던 주제는 바로 비. 내기 기억하는 어린 시절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기억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우산을 들고 아이들을 마중 나온 엄마들, 비바람에 격하게 휘청거리던 나무, 쓸쓸히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아 주었던 검게 물든 바다, 비를 맞고 싶다는 내 말에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곁에서 함께 달려준 친구, 신발을 조금씩 적셔오던 빗물, 태풍이 우리 동네를 지나던 날 무서움에 방에 웅크려 옴짝달싹 못했던 아들과 나, 하늘을 온통 회색빛으로 물들이며 하루종일 지치지도 않고 대지를 적셔오는 장맛비까지 정말 다양한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사라져간다. ‘그래,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한 장 두 장, 묵묵히 그 시절을 추억하고 되뇌이는 가슴 뭉클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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