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아깝잖아요 - 나의 베란다 정원 일기
야마자키 나오코라 지음, 정인영 옮김 / 샘터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는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아니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것이 있다. 나는 결코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을 모른다. 어느 정도까지는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상청이 태풍의 진로를 예측하고 그 정보를 통해 외출을 피한다. 현관으로 화분을 옮기고 불행으로부터 몸을 숨긴다. 하지만 완벽하게 숨을 수는 없다. 언젠가는 그 영문을 알 수 없는 존재 앞에 엎드려 죽음을 맞이하겠지. 노력해도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는 사실을 태풍이 왔을 때 느낄 수 있다.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무력감이 오히려 나를 안도하게 한다. 나는 한낱 인간에 불과하므로. 태평하게 될 대로 되라 하는 마음이 된다. (p.58)

 

나는 남편이 물을 주는 일이 즐겁다는 사실에 공감했으면 좋겠다. 내가 매일 물을 주는 이유는 식물에 대한 애정 때문만이 아니라 나 자신이 즐겁기 때문이다. 베란다에 있으면 기분이 좋다. 물뿌리개를 식물에 향할 때마다 그 식물을 생각하면서 고요해진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식물을 보면 새삼 시간이 빠르다는 걸 실감하며 더욱더 소중하게 그 시간을 통과해내고 싶어진다. 꽃이 피거나 열매를 발견했을 때는 한 생명이 내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에 두근거린다. 그래서 남편 역시 물 주는 일을 즐거워할 수 있도록 베란다를 자주 정리하고 씨앗도 더 뿌린다. 싹이 트는 것을 직접 보면 그 재미를 알아주겠지, 하고. (p.72)

 

힘들 때는 잎을 떨구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거다. 인간에게도 괴로운 시기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절대 죽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다독여보는 건 어떨까. 언젠가 다시 따뜻한 볕이 들고 선선한 바람이 다정하게 찾아올테니,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손에 쥐었던 욕심을 내려놓고 조용히 지내면 된다. (p.95)

 

 

 

이 책은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달에 출간되었다. 그래서 책 홍보 스케줄을 소화하기가 꽤 힘들었다. 일은 계속하는데 돈과 시간은 점점 없어지고 식물은 자라기만 했다. 이런 그녀에게 식물들은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올리브 나무, 여주, 바질, 장미, 아보카도, 드래곤프루트······. 많은 채소와 꽃들에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다. 그녀는 식물을 통해 꽤 많은 것을 배웠다. 일을 하면서 좁아졌던 시야도 식물들 덕분에 다시 넓어졌다. 사람과 장소, 일 사이의 모든 관계는 시간과 함께 계속 변한다. 다정한 시기도 있고, 거리가 생기는 시기도 있다.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고. 관계도 파도처럼 출렁인다. 지금은 가드닝과 멀어졌지만, 어느 순간 다시 가까워질 수 있겠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처럼 한 번 맺어진 관계는 가늘어지기는 해도 끊어지지는 않는다.

 

 

베란다는 세계의 축소판. 그 작은 공간에 우주가 있다. “무언가를 길러본 사람들은 안다. 식물이 가진 본래의 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 ‘인생 밭’도 자생의 힘을 믿어야 하는 것처럼.”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작품으로 등단한 이래, 솔직하고 대담한 문체로 큰 인기를 얻으며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된 야마자키 나오코라. 그녀가 들려주는 베란다 정원 일기 <햇볕이 아깝잖아요>. 식물을 기르면서 그녀의 마음도 한 뼘씩 성장했다. 조급하고 초조한 일상에 서늘한 바람을 쐬고, 그늘진 마음에 따뜻한 볕을 쬐었다. 베란다 정원에서 드래곤프루트, 나팔꽃, 장미 등 다양한 식물을 기르며 다양한 감정들을 경험한다. 힘들었던 시간을 좁은 베란다에서 식물들을 가꾸며 작가로서 느끼는 사명감과 삶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으며 스스로를 치유해가는 저자의 성장기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