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 - (나에게) 상처 주고도 아닌 척했던 날들에 대해
김소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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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할 수 없는 걸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 불안하다. 확실한 건 자신에게 불행을 암시하면 더 불행해질 거란 점이다. 행복 인증 마크를 따야 할 것 같은 압박 때문에 더 불행하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 내 삶에 의미는 있나? 이런 질문에는 어차피 홀로 답해야 한다. “고독, 회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 불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은 싱글들의 삶에 고유한 것들인가? 아니면 사람 자체에 고유한 정서인가?” (p.64)

 

되돌아보면 나는 40년 넘게 전속력으로 불안으로부터 도망쳤다. 다들 안전을 약속하는 길에 들어서고 싶었다. 많이 속였다. 관계에서 불안이 엄습해오면 가장 눈에 익은 방공호로 숨었다. 자기를 해치는 방식인 줄 알면서도 잠깐은 숨을 돌렸다. 종속변수의 삶은 불안하다. 멈춰 서 보니 보이는 곳마다 폐허 같다. 황무지에서도 자기 손을 놓지 않을 수는 있다. 휘터는 스트레스를 통제 가능한 것으로 느끼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로 함께하는 느낌을 꼽았다. 타인이 없다면 적어도 자신과 동맹을 맺을 수 있지 않을까. 황무지를 토대 삼아 지금까지와 다른 나를 내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존버’는 결국 승리한다고 하지 않나. (p.95)

 

균형을 찾는 방법은 관계의 약자가 상대에게 쏟는 에너지를 자신에게 돌리는 것, 스스로 서는 것밖에 없다. 해봐라, 되나.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방법이 없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당신에게 나는 무슨 의미야’가 아니라 나는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 내 가치를 타인아 아니라 내게 묻는 방법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버티고 서야 ‘건강한 거리’가 생긴다고 저자는 말한다. 궁극의 목표는 관계의 유지가 아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건 ‘나’로 버텨보아야 하는 까닭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다. (p.125)

 

 

 

‘망해도 상관없어.’ 사직서를 내고 첫 주엔 호기로웠다. 대체 ‘안 망하는 인생’이 뭔지도 모르면서 망할까 봐 너무 오래 무서워했다. 안 망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나를 방어하기 위해 힘주느라 관절마다 뻐근했다. 사표를 내고 1년이 넘어가자 불안이 덮쳤다. 흰머리는 쑥대밭이다. 이제까지 싼 똥만 해도 트럭 한 대분은 될 텐데 나는 대체 뭘 했을까? 40대, 빼도 박도 못하는 중년. 나는 나로 살아본 적이 있던가.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싱글에 애도 없지만, 아줌마 혹은 어머니로 불리는 ‘나’는 누구인가.

 

이 책은 40대인 작가가 퇴사 이후 나를, 주변을, 종래엔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로써 '나'라는 한 인간을 다시 키우며 써 내려간 에세이다. 무엇보다 싱글 여성이 온 힘을 다해 자기 자신으로 살아남기 위해 애쓴 기록이다. 타인에게 상처받고 괜찮은 척, 나에게 상처 주고 아닌 척, 세상에 휘둘려 말하지 못한 저자의 진짜 이야기. 한때는 꽤 잘 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40대, 여성, 백수, 싱글. 이 네 가지 타이틀이 모두 붙은 칼럼니스트. 나름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어째서 인생 절반에 받은 성적표가 양가뿐일까. 속상하다 못해 암담하다. 나는 이제껏 뭘 하고 살아온 걸까.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어느새 마음에 상처가 울긋불굿. 이에 저자는 말한다. 맞서야 한다.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며 두려움은 부딪혀야 활활 타올라 재가 된다. ‘나’라는 사람으로 버틴 채 어려운 발걸음을 떼며 주변과 세상을 향해 고개를 들면 그제야 보일 거다. 오답인 줄로만 알았던 나의 이야기가 실은 해답이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의 이야기지만 공감되고 이해되는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다. 그동안 살피지 못한 내면의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 토닥토닥. 괜찮아, 수고했어,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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