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보다 강한 실 - 실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나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안진이 옮김 / 윌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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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천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을 우리 조상들이 봤다면 펄쩍 뛰었을 것이다. 천이 있었기에 인류는 추운 지방에 거주할 수 있었고 여행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천이 없었다면 인류는 일부 지역에서만 거주했을 것이다. 고급스러운 비단과 따뜻한 모직물이 비단길과 같은 교역로를 통해 거래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문명들 사이에 사상과 기술의 교환이 활발해지고 사람들이 오가게 되었다. (p.15)

 

최초의 직물은 식물에서 추출한 섬유 또는 양과 염소에서 뽑은 털로 만들어졌으며, 원시시대 인류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도구였다. 직물은 무기보다도 중요했다. 직물은 몸을 보호하고, 따뜻하게 해주고, 나중에는 지위의 시각적인 상징물이 됐다. 또 직물은 인류의 가장 매력적인 자질 중 하나인 창의력을 발휘하는 통로를 제공했다. 불에 타버린 트로이의 어느 집에서 만들어지고 있었을 윤기 흐르는 천과 줏주아나 동굴의 섬유로 만들어진 물건들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그 물건들을 직접 볼 수 없을 것이고 그 물건들이 제작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다만 그 물건들을 만든 사람이 고민을 하고 정성을 기울였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p.58)

 

오늘날 우리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단의 대표적인 쓰임새는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다. 공자가 편찬했다고 알려진 『예기』에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나온다. “왕의 관은 빨강[비단]으로 안감을 두르고 소뼈로 만든 못을 박는다. 낮은 관리의 관에는 안감을 두르되 못은 박지 않는다.” 상 왕조와 주 왕조 시대에 비취와 비단은 귀족들 사이에서 가장 귀하게 여겨지는 선물이었다. 비취에는 상징적인 문양을 새길 수 있었고, 비단은 상징적인 무늬를 넣어 짤 수도 있고 완성된 비단에 자수를 놓을 수도 있었다. 황허 하류 지방에서 생산된 직물에는 “상서로운 무늬”, “무리지어 있는 4개의 구름”, “거울에 비친 꽃”, “빠르게 치는 파도”와 같은 매력적인 이름이 붙었다. 비단을 짜는 직공들은 사람들의 수요에 부응해 점점 더 정교한 무늬를 만들어냈는데, 그 무늬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p.97)

 

 

청동기, 철기보다 오래된 인류의 유산, 실. 우리 삶에 너무나 익숙하여 그 존재에 소홀했던 실에 대해 탐구한 한 사람이 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복식사를 공부하고, 첫 책 <컬러의 말>에서 색이름의 기원을 밝힌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이제 그는 그동안 누구나 말하지 않았던 직물과 실 뒤에 숨은 인간의 역사를 열어보인다. 리넨으로 시체를 감싸 미라를 만든 이집트인들부터 고대 중국의 비단 제작 비밀과 실크로드 이야기, 왕의 몸값으로 양모를 내놓아야 했던 중세 수도원, 유럽 왕족들의 화려한 레이스 경쟁과 그 레이스를 만들어낸 가난한 여성들의 노동, 에베레스트와 남극대륙에 가기 위해 선택된 특별한 직물들과 인간 한계를 넘기 위한 전신 수영복과 우주복까지. 세상을 움직인 실의 역사!

 

인류의 시작, 산업의 발전, 불평등과 착취, 과학의 진보, 인간 한계의 도전, 그 모든 자리에 있었던 실의 역사. 첫 페이지부터 뭔가 색다르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은 것 같은 기분?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대단히 흥미롭다. 실은 왜 총보다 강력한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책은 실의 역사에 주목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총 13가지. 힘과 권력에 가려졌던 그 뒤에 숨은 인간을 따라가 실과 직물의 흔적을 끝까지 찾아내 그것을 최초로 만들고 사용한 인물과 그들이 움직여온 역사를 담아냈다. 최초의 섬유 흔적이 발견된 동굴부터, 비단길의 흔적, 이집트 미라의 리넨까지, 실이 거쳐 간 역사의 흔적은 상상 이상으로 넓고 깊다. 이걸 보고 누군가는 고작 실이냐고 하찮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 속에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빈말이 아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실과 직물의 역사를 찾는 것은,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찾는 일이다. 주류의 역사 뒤에서 역사를 움직인 진짜 주인공을 찾는 일이다. 실은 통해 역사를 바라보면, 당신이 보는 세계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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