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 (완역판) - 그리스도 이야기 현대지성 클래식 10
루 월리스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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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그 안에서 남자의 기개라는 놀라운 것이 발현되기를 기다리며 계속 성장하고 있는 조가비와도 같다. 누군가는 그 발현이 다른 사람보다 빨리 나타날 수도 있다. 아들이 지금 그런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오싹해졌다. 갓난아기들이 어둠을 부여잡듯이 손을 내밀며 울어대는 것처럼 어쩌면 그의 영혼도 캄캄한 가운데 알 수 없는 미래를 잡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소년으로부터, 저는 누군가요, 그리고 무엇이 될까요? 라고 질문을 받는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해야 한다. 그들의 대답 한 마디 한 마디는 진흙을 빚고 있는 예술가의 손놀림처럼 한 사람의 평생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p.158)

 

벤허는 분노했다. 사소한 일에 분개해서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아무것도 아닌 일에 끓어올랐다가 꾸짖음이나 욕설 한 마디에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는 어리석은 자의 분노와도 달랐다. 그것은 지극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꿈과 희망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느끼는 그런 분노였다. 그 강렬한 분노감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그것은 운명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좀 더 깊이 말해 보자면, 만일 운명이 만질 수 있는 것이어서 한 방 후려쳐 없앨 수 있거나 고차원의 언어로 대화가 가능한 상대라면 잘 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불행한 인간이 늘 자신을 벌함으로써 모든 상황을 끝내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p.294)

 

그랬다. 민중의 불행한 처지는 종교 때문에 빚어진 것이 아니라 지배자의 실정과 수탈과 헤아릴 수 없는 폭정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사람들이 도탄에 빠져 벗어가기를 간절히 빌고 있는 지옥 같은 상황은 지독하게도 본질적으로는 정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론디니움, 알렉산드리아, 아테네,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숭배할 신이 아니라 정복자 왕이었다. (p.390)

 

이제껏 그의 삶은 슬픔과 복수심으로 가득 차서 사랑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깨지다니 행복한 변화의 시발점이련가? 그리고 천막으로 들어서는 벤허에게 그 영향력이 아직 남아 있다면 승자는 누구일까? 에스더는 그에게 술잔을 주었다. 그것은 이집트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종려나무 아래에 서 있던 벤허의 마음에 동시에 찾아들었다. 누가 과연 최후의 승자일까? (p.410)

 

 

 

26년 로마 제국 시대. 주인공 유다 벤허는 예루살렘의 제일가는 부호이자 귀족의 아들이다. 어느 날 예루살렘에 신임 총독이 부임하고 벤허의 옛 친구 메살라도 세금징수관인 아버지와 함께 돌아온다. 메살라는 벤허에게 로마에 협력할 것을 요구하며 자신과 한 편이 될 것을 제안하지만, 유대민족의 자부심을 가진 벤허는 이를 거부한다. 다음날 벤허는 집 옥상에서 여동생 티르자와 함께 신임 총독의 부임 행렬을 구경하다가 실수로 기왓장을 떨어뜨려 총독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고를 일으킨다. 메살라는 고의성이 없는 줄 알면서도 유대인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벤허에게 총독 암살 음모죄를 뒤집어씌운다. 이에 벤허는 노예로 팔려가고 저택은 몰수당한 채 어머니와 여동생도 감옥에 보내진다.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갤리선 노예로 고된 삶을 이어가던 중 타고 있던 함선이 해적과 교전을 벌이다 침몰하자 벤허는 로마의 집정관인 아리우스를 구해준다. 그 공로로 그는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되고 아리우스의 양자가 된다. 자유인이 되어 파르티아 원정길에 합류하게 된 벤허는 안티오크에 체류하던 중 가문의 노예였던 시모니데스와 철천지 원수 메살라를 만나게 되고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한 메살라를 향한 복수를 계획한다.

 

 

로마 제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배신과 복수의 대서사시 벤허! 이를 누가 모를 수 있을까? 영화로 또 책으로도 두루두루 명성이 자자하다. 하지만 사실 <벤허>는 지금과는 다르게 1880년 출간되었을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차가운 반응을 받았다. 이 책은 주인공 유다 벤허의 파란만장한 삶에 성서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엮어낸 방대한 역사소설인데, 당시 미국 문학계에서는 역사소설은 한물 건너간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판매량이 부진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점차 판매량이 증가했고 많은 대중이 읽기 시작하면서 결국에는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국 소설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뿐만 아니라 1960년 아카데미 11개 상이라는 역사상 최다 수상을 이루었고 또 소설로서는 최초로 교황 레오 13세의 축성을 받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총 812페이지. 만만치 않은 분량임에도 책을 읽는 시간들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영화를 이미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흥미롭고 또 재미있다. 어찌 보면 책이 기본적으로 역사적 · 종교적 사실에 입각하여 쓰여진 까닭에 자칫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훌륭한 경험이고 추억이다. 그리고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저택의 모습이나 전차경기장, 사막의 풍경, 예루살렘 거리의 모습 등을 세밀하게 표현하여 장면 하나하나가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자는 예루살렘은커녕 로마나 중동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자료에 의거해 작품을 썼다는 거! 정말 스펙터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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