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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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명만 있었으면, 은정은 종종 생각했다. 친구가, 마음을 터놓을 곳이 딱 한 군데만 있었으면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라도, 자기가 누군지조차 잊은 채 요양원에 계신 엄마에게라도 전화를 걸어 말을 하고 싶었다. (p.20)

 

아이는 아직 모른다. 달착지근한 마카롱 몇 개나 갑작스럽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 같은 것으로는 괜찮아지지 않는 일들이 세상에 아주 많다는 것을.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일이 점점 더 겁나는 모험처럼 느껴진다. 결과가 안 좋을 때가 더 많기 때문에. 그러나 나는 그녀를 걱정하고 있었고, 그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굳이 물어보았다. 나 역시 누군가가 그렇게 물어주기를, 종종 장마가 비를 기다리듯이 기다리게 되므로. (p.56)

 

세상이 변해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 흐름의 중심을 향해 헤엄쳐 갈 나이는 지났다. 뒤로 물러나 물결에 실려 간다. 퇴적된 지층의 일부가 되어. 별다른 기여를 할 수 없으니 목소리를 높여 지분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윤슬에게도 치열하던 시간이 있었고, 이제는 힘주어 살기보다는 영화처럼 삶을 볼 시간이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을. (p.95)

 

 

 

2019년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윤이형의 신작 소설 <붕대 감기>. 우정이라는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들. “이해하고 싶었어, 너의 그 단호함을. 너의 편협함까지도.” 서로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서 바톤터치 하듯 이어지는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이야기. 소설에서는 계층, 학력, 나이, 직업 등이 모두 다른 다양한 여성들의 개별적인 서사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불법촬영 동영상 피해자였던 친구를 보고도 도움을 주지 못했던 미용사 지현, 영화 홍보기획사에 다니는 워킹맘이자 의식불명에 빠진 아들 서균을 둔 은정, 그런 서균과 한반인 딸 율아의 엄마 진경, 진경의 절친한 친구이자 출판기획자인 세연 등 바톤터치를 하듯 연결되는 이들 각자의 사연으로 저자는 개인의 상처에서 나아가 사각지대에 자리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스스럼없이 담아낸다.

 

 

나이, 직업, 취향, 기질 등이 서로 다른 여성들의 우정은 과연 가능할까? 누군가의 동료이거나 동지이거나 친구인, 이해관계 너머에 있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나도 모르게 슬며시 바라게 되는 기대와 허상, 실망과 환멸 그리고 그것을 다시 회복하려는 마음들.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얽히고설킨 다양한 상황들은 실제 우리의 모습과 다름이 없다. 현실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던, 아니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마주할지도 모를 이면의 모습들. 이를 보면서 생각이 깊어진다. 상황이나 마음 같은 건 접어두고 그저 머리로만 판단하면 누가 옳고 그른가를 쉽게 분간할 수 있지겠만, 막상 그런 상황이 주어진다면 개인의 마음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쉽게 말을 꺼내놓을 수 없다. 내면의 갈등과 날선 대립, 그렇기 때문에 상호 간의 이해와 의사소통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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