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고 체하면 약도 없지
임선경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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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좀 더 나이를 먹고 성숙해지면 감정에 휘둘리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분노, 좌절, 질투로 나를 해치는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몸처럼 마음도 늙어서 감각 수용체의 숫자가 줄어든다면 어쩌면 평화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일들이 다 견딜 만하고 자극이 와도 고통이 덜할 것이다. 그러나 오십이 넘은 지금도 여전한 감정적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기분이 이랬다저랬다 아침저녁으로 변덕스러운 것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감정 변화로도 아프고 상처받는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 것 같다. 그 부조화 때문에 오히려 더 쓸쓸해진다. (p.23)

 

중요한 건 ‘변화’다. 변한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변하지 않음’이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다. ‘영원한 사랑’, ‘변치 않는 우정’, ‘한결같은 마음’, ‘언제나 처음처럼’ 등등의 말을 여기저기다 마구잡이로 갖다 썼다. 좋은 말,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살다 보니 그런 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게다가 변하지 않는 것이 꼭 옳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변하지 않음이 아집과 관성, 무기력의 증거이기도 하다. 알고 보면 귀찮아서 안 변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변하려면 안 쓰던 신경을 써야 하고 모르던 것을 새로 알아야 한다. (p.45)

 

아등바등 산다고 한들 누가 나를 안쓰러워해 줄 것인가. 그래서 무엇을 해낸다 한들 누가 나를 자랑스러워해 줄 것인가. 아무리 좋은 일이 생겨도 예전처럼 뿌듯할 수는 없으리라는 예감.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오히려 더 허전하고 쓸쓸해지리라는 예감. 그것이 오십 대의 고아가 느끼는 진짜 외로움이다. (p.95)

 

내 이후의 삶, 노년기의 삶이 어떤 모습일지 지금 다 예상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겨우 생긴 내 방이 없어지지 않도록 애쓸 것이다. 내 방에서 나의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재미있고 생산적인 일을 만들 것이다. 도움 없이 내 힘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몸을 돌볼 것이다. 식구들과는 적당히 무관심하며 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혼자 지낼 수 있는 내 방을 끝까지 갖겠다. 그리고 그 방에서 기꺼이 외로워하겠다. (p.148)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가장 열심히, 꾸준히 한 일이 바로 나이 먹는 일이었다.”, “이제라도 정신 좀 차리고 잘살아 볼까 하니 나이 오십이다.”, “나이가 든다 해도 쇠락과 비움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롭게 채워지는 내일도 분명 있다.” 장래 희망은 ‘웃긴 할머니’ 마음은 18세 풍랑기, 너희에게 중2가 있다면 우리에겐 중년이 있다. 체하지 않고 가뿐하게 유쾌하게 나로 사는 인생의 기술, 나이 먹는 일에 관한 유쾌 발랄 생활 에세이 <나이 먹고 체하면 약도 없지>. 누구나 일생에서 가장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먹고 있는 나이, 어떻게 하면 체하지 않고 잘 먹을 수 있을까. 「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 「이것이 인생이다」,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극본을 쓴 방송작가 겸 소설가 임선경이 들려주는 경쾌한 일상과 뭉클한 인생사.

 

지금 사는 세상은 젊으나 늙으나 처음 살아보는 세상이다. 오늘도 내일도 내겐 모두 처음이니까. 열심히 살아도, 쉬엄쉬엄 살아도, 너나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나이 먹는 일. 저자는 지금 정신과 신체가 사춘기와 마찬가지로 격변하는 갱년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 폐경, 건강검진, 부당한 편견, 건망증 등등 언젠가는 나에게도 다가올 순간의 모습들. 알게 모르게 피부로 느끼고는 있지만 이렇게까지? 직접 마주한 현실에 마음이 심란하다. 모두 다 같진 않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 틀리지도 않다. 세월은 쏘아놓은 살처럼 흐른다. 일단 쏘았으면 되돌릴 수가 없다. 그 어떤 뛰어난 기술이나 의술도 영원한 젊음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재미있는 게 아닐까. 매일 새로움으로 차곡차곡 채워가는 하루하루. 마음만은 언제나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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